그와 그녀의 책장

[스타워즈] 시리즈, 아빠하고 나하고 놀던 데스스타에서

2017.02.03
다스 베이더가 주인공인 동화책이 있다. 제프리 브라운의 [스타워즈] 시리즈 [다스 베이더와 아들], [베이더의 꼬마 공주님], [잘 자요 다스 베이더] 그리고 [다스 베이더와 친구들], 이 네 권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연작은 그 자체로도 다스 베이더의 포근한 부성애에 폭 빠질 만한 이야기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박장대소를 하며 구를 패러디와 변주로 가득한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스 베이더는 AT-AT로 꼬마 레아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꼬마 루크에게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지 말고 “Use The Fork”하라 타이른다. 따스한 필치의 귀여운 삽화로 가득한 이 육아일기는 스페이스 오페라 버전의 [피너츠]라고 할 수 있겠다. 다스 베이더는 성실한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하면서도 찰리 브라운처럼 소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꼬마 레아와 꼬마 루크는 루시와 라이너스 남매가 떠오를 정도로 귀여운 장난꾸러기들이다.

다스 베이더는 언제부터 이렇게 친숙하면서도 어수룩한 캐릭터로 소비되기 시작했을까? 다크 사이드를 대표하는 제국의 권력자임에도 반란군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아버지라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은 세월이 지나면서 페스티벌용으로 편곡된 임페리얼 마치에 맞춰 디즈니랜드를 돌아다니거나 오렌지 통신사의 임원들 앞에서 굴욕을 당하고 라이트세이버에 카이버 크리스탈 대신 필립스 형광등을 꽂는 코믹한 광고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마 영화 내에서 항상 반란군에게 당하는 역할만 배당받은 탓도, 프리퀄 시리즈의 개봉 덕에 초원에서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던 사춘기 시절을 폭로당한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덤의 애정 덕분이 가장 큰 듯하다. 다스 베이더의 귀여움이 부각되는 과정은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에게 일어난 일과 진배없다. 고길동이 얄미우면 어린아이고 둘리가 얄미우면 어른이라는 농담처럼,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들은 작품에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는 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 어느새 압도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던 다스 베이더처럼, 혹은 그보다도 어른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꿈을 품은 시골 출신 소년도, 제국에 맞서 정의를 지키는 반란군의 소녀도 아닌, 제국 정부에 반쯤 낙하산으로 꽂혀서 위로는 황제에게 아래로는 부하들에게 옆으로는 라이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어떻게든 가족이라도 챙겨보겠다지만 정작 자식들에게는 외면받는 외로운 가장에게 이입하게 되어버렸다. 아이고. 겔포스라도 함께하길.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작품임에도 몇몇 장면에서는 잠깐 손이 멈추고는 한다. 다스 베이더가 미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으로 딸을 통제하려는 모습(레아와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한 솔로를 탄소냉동 시켜버린다든지)을 보일 때나 나치에서 여러 요소를 따온 제국을 이렇게 귀엽게 그려내고 있는 걸 보면서는 의문이 들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앙증맞음에 굴복하고 마는 것은 다스 베이더라는 캐릭터가 가진 서사 덕분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클래식과 프리퀄을 합치면 다스 베이더가 철이 드는 과정을 담은 일대기가 된다는 농담처럼, 불안정 속에서 방황하던 소년이 무수한 죄를 저질렀어도 종국에는 기어코 다시 올바른 길로 되돌아왔다는 그 구원의 서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편에서 서로 죽일 듯이 싸워야만 했던 스카이워커 가문이 이렇게 애정을 담아 서로를 포옹하고 미소 짓는 제프리 브라운의 이 동화책 시리즈가 고맙기까지 하다. 이는 단 한 번이라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dcdc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작가. 장편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단편집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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