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수 양복점 신사들]│②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로 보는 주말드라마의 설정들

2017.02.07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주말 저녁 8시에 방영되는 드라마다. 주말드라마는 전통적으로 ‘고된 한주를 보낸 가족들이 모처럼 둘러앉아 보는 드라마’로 기획됐다. 뜻대로라면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한다는 것을 전제로 만드는 드라마지만, 이는 사실상 드라마를 보다 높은 연령대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의미다. 물론 그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이것이 2017년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는 상황과 설정들이 나오곤 한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한 편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은 무조건 한집에 산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이만술(신구), 최곡지(김영애) 부부의 집은 겉보기엔 평범한 이층집이다. 하지만 이곳의 인구밀도는 끝없이 높아지고 있다. 본래 이 집에는 만술 부부와 이동숙(오현경), 김다정(표예진) 모녀 네 명이 살았는데 이혼한 장남 이동진(이동건)이 1층에, 배삼도(차인표), 복선녀(라미란) 부부와 성태평(최원영)이 2층으로 들어오며 거주자가 두 배로 늘었다. 이후 장녀 동숙이 태평과 결혼하며 이 집에 사는 부부만 셋이 됐다. 여기에 동진과 나연실(조윤희)이 결혼하며 드디어 ‘한 지붕 네 가족’을 달성했다. 재벌가로 묘사되는 고은숙(박준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친자인 민효상(박은석), 민효원(이세영) 외에도 배다른 자식인 민효주(구재이)와 그의 전남편 동진까지 데리고 살았다. 그 후 은숙이 탐탁지 않아 하는 최지연(차주영)마저 효상과 결혼하게 되며 한집에 살게 됐다. 며느리는 그렇다 쳐도, 다른 이들과 마주치기만 해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원룸이 아니라 펜트하우스를 얻을 수도 있을 법한 효주는 왜인지 은숙의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주말드라마에서 가족 구성원은 주요 등장인물이며, 집은 중심 무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동선이 겹치며 등장인물이 자주 부딪힐수록 에피소드는 풍성해진다. 한정된 평수에서 자꾸만 튀어나오는 빈방과 좀처럼 분가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자식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주자.

세트와 소품은 요즘 것이 아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1회에는 시대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1953년에서 출발해 1970년을 지나 2016년의 서울을 비춰주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드라마 속 세트와 소품은 마치 tvN [응답하라 1988]처럼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을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 극 중 만술의 집은 낮은 담장과 삐걱대는 대문, 마당이 있는 옛날 단독 주택의 형태다. 물론 집은 옛날에 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당 수돗가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김치 속을 버무리거나, 평상 위에서 고추, 마늘, 콩나물 등을 다듬는 모습은 확실히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이를 배경으로 놓인 소품들에서도 예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극 중반까지 동진의 방 한쪽 벽면은 끈에 묶인 두꺼운 책 뭉치로 가득해 고학생이 사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곡지는 ‘애호박을 숭숭 썰어 넣은 칼국수’를 양은냄비째로 스테인리스 쟁반에 올려 보자기에 싸서 들고 간다(별로 보온효과가 없어 보이지만 보자기를 풀자 칼국수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만술은 제과점에서 산 게 분명한 개별 포장 양갱을 굳이 흰 종이봉투에 담아 곡지의 품에 안긴다. 드라마의 중심 커플인 동진과 연실이 결혼하게 되며 벌어지는 ‘가족행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잠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곡지는 ‘액을 면하고 찰떡같이 부부금술이 좋아지라는 의미’에서 직접 팥과 밤을 올린 떡을 만들고, ‘월계수 양복점 신사 일동’은 오징어 가면과 박 바가지까지 구해와 함을 파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이러한 세트와 소품은 2016년의 시대상을 반영했다기보다 현재 중장년층이 기억하는 청년기의 풍경을 옮겨놓은 것에 가깝다. 주말드라마가 가족 중 누구를 적극적으로 공략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가까운 이웃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인심 좋기로 소문난 만술이 운영하는 ‘월계수 양복점’에는 이웃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폐지 줍는 할머니,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새댁, 만술보다 아우로 보이는 영감 등은 수시로 양복점에 드나들며 때로는 곡지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들이 양복점의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하릴없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가족처럼 그려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끔 찢어진 옷을 들고 와 “재봉틀로 둘둘 박아줘”라고 요구하거나, 면접 보러 온 사람 앞에서 난데없이 LP를 틀고 왈츠를 추는 행동도 용인된다. 가족과 이웃의 경계가 가장 모호한 사람은 연실이다. 만술의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연실은 옥탑방에서 홀로 생활하는데, 그의 독립적인 공간을 존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곡지와 금촌댁(이정은)은 옥탑방 평상에서 고추를 말리며 그를 기다리고, 기표 모(정경순)는 수시로 집에 드나들며 참견한다. 또한 곡지는 며느리 효주가 어렵다는 이유로 양복점 직원인 연실에게 손님상 준비를 시키기도 한다. 고시원에 혼자 사는 강태양(현우) 역시 비슷한 이유로 자기 공간을 침해당하거나, ‘월계수 가족’의 일에 동원되곤 한다. 이처럼 ‘혼자 사는 청년’은 가족들이 돌봐줘야 할 대상, 혹은 언제든 가족에 편입될 수 있는 후보군처럼 그려진다. 다시 말해, 주말드라마에서 이웃은 제2의 가족, 혹은 잠재적 가족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가족’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하는 행동이야말로 지극히 ‘주말드라마적 표현’인 것이다.

부잣집 막내딸은 사랑밖에 모른다
주말드라마에는 높은 확률로 철없는 부잣집 막내딸이 존재한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이전에 방영한 KBS 주말드라마에서도 이러한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가 다섯]의 장진주(임수향), [부탁해요 엄마]의 장채리(조보아), [가족끼리 왜 이래]의 권효진(손담비), [최고다 이순신]의 신이정(배그린) 등이 여기 해당되며, [내 딸 서영이]의 강성재(이정신)는 남성임에도 ‘막내딸’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은 대부분 티 없이 해맑은 성격으로 묘사되며, 자신과 대조적인 위치에 있는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효원 역시 ‘흙수저’ 태양에게 반해 우여곡절 끝에 연인이 된다. 극 중에서 ‘7포 세대’로 설정된 태양의 삶은 팍팍하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직을 준비하지만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함께 의지하며 고생하던 옛 연인은 취직이 되자마자 떠나버린다. 사고를 당하자 합의금으로 대출이자를 낼 수 있겠다며 안심하는 남자. 반면 효원의 삶에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다. 선친의 회사에서 어린 나이에 팀장 직함을 달고 있으며, 아웃도어 브랜드 패딩을 한 번에 네다섯 개씩 사거나 매일같이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감을 정도로 풍족하다. 사실상 이들의 격차는 메인 커플인 동진-연실보다도 크다. 하지만 태양이 지연과 연인 사이었다는 것이 발각되기 직전까지, 은숙은 이들의 사이를 반대하기보다 서포트하는 쪽에 가까웠다. 사실이 밝혀진 후 은숙은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하지만, 여전히 태양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한다. 효원 역시 은숙이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리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태양의 손을 놓지 않는다. 결국 태양-효원 커플이 시련을 이겨내고 이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 가능한 일이다. ‘강태양이를 사위 삼고, 최지연이를 커트시켰어야 했는데’라며 남몰래 후회하는 은숙의 모습은 어리고 순수한 선남선녀를 맺어주고픈 시청자의 욕망 그 자체다. 주말드라마에서 부잣집 막내딸은 누구나 응원하고 싶은 연애담의 주연으로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머니는 문제가 생기면 드러눕는다
만약 주말드라마에서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드러누워 있다면, 극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건이 생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곡지는 첫 회부터 48회까지 11번을 드러누웠다. 그를 드러눕게 만든 원인은 남편의 가출, 아들의 이혼, 사돈 간 불화 등 주로 가족 안에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은숙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10번 드러누웠으며, 이들보다 훨씬 젊은 동숙도 가족 내 불화가 생기자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드러누워 “꽤 효과가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몸져누웠다는 소식은 뿔뿔이 흩어져있던 자식들을 안방으로 불러 모으는 긴급소집령이다. 주로 딸들이 물이나 죽, 약 등을 먹이는 정성을 보이지만 그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보통 어머니의 두통은 아들이나 남편이 등장함으로써 해소된다. 이들은 문제 해결에 앞서 일단 신세 한탄을 하며, 이를 받아주거나 해결하는 것은 남성구성원들이다. 곡지는 끙끙 앓다가도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잔칫상을 차려냈다. 내내 병수발을 들던 동숙은 남동생이 좋아하는 차돌박이를 사러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잡혀 사는 남편은 뒤통수를 친다
주말드라마에서 대부분의 남편은 부인에게 잡혀 산다. KBS에서 방영했던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에서 이동출(김갑수)은 임산옥(고두심)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였으며, [가족끼리 왜 이래]의 서중백(김정민)은 도박 빚을 진 아내 노영설(김정난)에게도 곧잘 기가 죽는 ‘허허실실맨’으로 나왔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유준상)은 완벽한 남자지만 차윤희(김남주)에게는 한없이 약한 ‘사랑꾼’이었다. 잡혀 사는 남편은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는 필수요소’처럼 주말드라마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남편들도 마찬가지다. 만술은 타고난 애처가로 그려지며 삼도와 태평은 다소 생활력이 없어 아내에게 한 수 접어주는 모습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만술은 곡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나갔으며, 삼도는 선녀와 함께 운영하던 닭집을 내팽개치고 멋대로 양복점에 합류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잡혀 살던 남편은 무소불위의 독재자로 변신하곤 한다. 여기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건만,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삼도나 [부탁해요 엄마]의 동출은 한눈까지 팔았다. 주말드라마에서 ‘잡혀 사는 남편’은 뜻밖의 반전 캐릭터다.

아내는 가족 혹은 남편에게 헌신한다
연실은 동진과의 결혼 후 한층 더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다. 결혼을 준비하던 중 연실은 반지를 사러 가자는 동진에게 “나한테는 동진 씨가 다이아보다 귀한 사람인데 뭐하러 생돈을 버려요”라며 자랑스럽게 커플링을 낀 손을 들어 보인다. 신혼여행은 만술, 곡지와 함께하는 온천여행을, 웨딩촬영은 생략하기를 원하는 그에게 동진은 “아니 70년대도 아니고 누가 요즘 신혼여행을 온천으로 가요”, “남들 하는 건 다 필요 없다고 하면 우린 뭘 하면 되죠?”라고 물으면서도 연실을 ‘순둥이’라 부르며 기특해한다. 또한 동숙은 “사랑하지만 반지 하나 못 사준다”며 결혼을 망설이는 태평에게 반지는 손에 낀 것 중 하나를 빼주면 되고, 돈은 자신이 벌 것이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고 말한다. 또한 결혼 후에는 태평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그의 인기에 악영향을 끼칠까 봐 자진해서 아내라는 사실을 숨기기까지 한다. 시종일관 남편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던 선녀 역시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고 착각한 후부터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는 머리채까지 잡았던 남편의 첫사랑 오영은(최지나)과 아들을 집에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삼도가 좋아하는 닭볶음탕 레시피를 전수해주겠다거나 세 사람이 참 잘 어울린다는 말 따위를 하는 등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주말드라마 속 아내들에게 가족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지켜야 할 최우선의 가치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가치나 욕구는 종종 뒤로 미뤄지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옛날 사람처럼 말한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말들은 70대인 곡지의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양복 재킷은 부인이 받아줘야 하는데”, “내가 데리고 사는 남자는 딱 미운 일곱 살이라고 생각 혀”, “사내는 쥐려고 하지 말고 풀어야 하네”와 같은 대사들이 전 세대에 거쳐 반복된다. 예를 들어 40대인 선녀는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데”, “당신 닮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고 싶어”라고 말하고, 30대인 효주마저 퇴근한 남편을 맞이하며 “목욕물 받아줄까?”라고 묻는다. 그보다 더 어린 지연은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대가족 이루어 사는 게 꿈이었어요. 아들딸 많이 낳고요”라고 말한다. 마치 먼 훗날, ‘20세기의 연애관과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쓰일 것 같은 대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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