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수 양복점 신사들]│① 가부장제의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

2017.02.07
KBS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양복점은 동네에서 사랑방 역할을 한다. 근처 미용실에서 펌을 하고 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는 여성, 일 때문에 아이를 잠깐 맡겨야 하는 여성, 딱히 할 일이 없는 중년 남성 등 양복점의 주인 만술(신구)은 누구든 흔쾌히 불러들여 수박이나 차를 내어준다. 그리고 만술이 잠시 사라졌을 때, 양복점으로 줄줄이 찾아온 동네 사람들은 만술의 아내 곡지(김영애)에게 밭에서 직접 기른 애호박을 건네며 감사의 표시를 하거나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양복점 사장님이랑 우리는 한식구 같이 지내는데요, 뭐”, “(사장님은) 꼭 친정아버지 같아요”. 이것은 만술과 월계수 양복점이 만드는 공동체, 즉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한 가족에 관한 비유이기도 하다. 부모를 잃고 오랫동안 양복점에서 근무한 연실(조윤희)은 “양복점 안은 유난히 따뜻하고, 포근했고, 왠지 모르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며, 아내의 치킨 장사를 돕다 양복점으로 다시 돌아온 만술의 수제자 삼도(차인표)는 ‘월계수 양복점은 고아원에서 도망 나온 내게 집이 되어주었고 내 청춘과 꿈, 낭만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회상한다. 그리고, 처가에서 운영하는 의류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만술의 아들 동진(이동건)은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월계수 양복점으로 돌아올 결심을 한다. ‘행복을 찾아서 아버지 곁을 떠났는데, 그 행복은 여전히 아버지 곁에 있는 게 아닐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남성은 집안의 중심이자 가장으로서 권위를 회복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곳.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논리를 통해 가족주의를 노골적으로 설파한다. 집안 계급도의 꼭대기에 있는 가장, 만술의 지휘 아래에서 남성과 여성은 고정적인 역할을 부여받는다. 동진은 은근히 무시당하던 처가를 떠나 월계수 양복점의 후계자가 되어 사업가로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삼도는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양복점의 프로페셔널한 재단사로서 자리를 굳힌다.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다시금 공고히 하며 가족주의의 이익을 가장 크게 누리는 사람은 만술이다. 자신의 아들과 유사 아들을 집안으로 불러 모은 것은 그 자신이며, 덕분에 무너질 뻔한 양복점은 재건되고 만술은 단순히 은퇴하고 힘없어진 노인이 아니라 집안의 최고 권력자로 남는다. 그사이 여성들의 존재는 오로지 남성들과의 혼인을 통해서만, 말하자면 남편에게 고분고분한 아내의 모습으로만 설명된다. 만술의 아내 곡지는 설거지와 요리 등의 집안일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라 여기고, 동진과 맺어지는 연실은 양복점 안에서도 차를 나르는 역할을 맡거나 온갖 집안일을 하면서도 더없이 순한 표정으로 웃으며 당연히 자신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상대 남성들에게 각각 넘치도록 사랑받는 곡지와 연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남성이 이끄는 가족 안에 기꺼이 편입돼라, 그러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 특히 드라마 안에서 유일하게 남편도, 아버지도 없던 연실이 당하는 사건들은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들에게 간접적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구해줬다고 믿고 있었던 건달 기표(지승현)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받거나 마음에도 없는 결혼식을 올릴 처지에 놓이고, 심지어 납치되어 협박을 당하기까지 한다. 이때 그를 구해주는 것은 동진을 중심으로 한 삼도, 태평(최원영) 등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삼도)이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은 또 다른 남성의 등장을 통해서 저지될 수 있으며, 따라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그리는 가부장제는 얼핏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동숙(오현경)에게 ‘아들을 낳을 시 축하금 1억 지급, 딸은 없음, 아침밥을 해주지 않으면 매일 벌금 6천 원 지급’ 등의 성차별적인 조항을 직접적으로 들먹이다 파혼당한 대섭(최성국), 사랑을 핑계로 연실에게 집착하는 기표 등과 진정한 가부장제는 다르며, 도리어 이런 폭력에서 여성을 보호해줄 거라고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단, 불평 없이 고정적인 성 역할을 받아들여 남성을 잘 내조하고 감히 남성의 조건을 따지지 않는 여성만.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며 아내는 성실하게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내용은 누군가에게는 평화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로 느껴질 수도 있다. 연실의 납치 에피소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드라마가 ‘막장’류와는 달리 우리네 소박한 삶을 잘 반영해낸 작품으로 평가된 이유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해체가 점점 더 가속화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남성 중심의 가족주의를 고수하자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태도는 평범하거나 소소한 것일 수 없다. 영화 [국제시장]이 그랬듯, 또한 tvN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랬듯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과거로의 회귀는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남성이 집안의 권력을 독점하고 여성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일은 정말로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이지 않은가. 여성의 행복은 남성에게 고분고분하게 굴어 사랑받는 데 있는가. 남성은 반드시 권위 있는 가장이 되어야만 하는가. 중요한 질문들을 모른 체하고,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오래전 그랬듯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래야만 한다고 뻔뻔한 얼굴로 말한다. 그리고 2017년 현재, 이 드라마는 32.1%(닐슨코리아 기즌)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것은 어쩌면 TV 앞을 지키고 앉은 사람들 중 대다수의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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