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스 플랜]의 그레타 거윅, 여성을 격려하는 여성

2017.02.09
“남자가 도와줄 필요는 없었어요. 어차피 제가 했을 일이니까요.” 창작 파트너이자 실제 연인이기도 한 감독 노아 바움백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그레타 거윅은 단호하게 답했다. 이렇게까지 그림자 속에 남기를 딱 잘라 거부하는 여배우가 또 있었던가. 재능 있는 젊은 배우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레타 거윅에게 제대로 반한 순간이었다. 노아 바움백도 인정하듯, 두 사람이 함께 만든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그레타 거윅이 이끌어간 작품들이었다. 이토록 공들여 만들어낸 창작물을 두고 그저 뮤즈로서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군들 발끈하지 않을까. 스크린 위에서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그레타 거윅은 오랜 구상과 긴 수정을 거쳐 대본을 완성했고, 촬영이 시작된 후에는 배우의 입장에서 대본을 철저하게 따랐다. 작가 그레타 거윅과 배우 그레타 거윅을 분리하기. 극도의 자연스러움과 즉흥성을 추구하는 멈블코어(저예산 제작, 유명하지 않은 배우, 지속적인 로우키(low-key) 조명 사용, 반(半) 즉흥적인 대화를 특징으로 하는 독립 영화 장르) 운동의 일원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며 힘들게 배운 교훈이었다.

[프란시스 하] 속 프란시스의 대책 없는 느슨함이 스크린 밖으로까지 이어지리라 기대했다면 그레타 거윅의 연기 실력에 대한 칭찬인 셈이다. 야심 차기에는 너무 태평한 프란시스와는 달리 어린 시절의 자신을 리사 심슨에 빗대는 그는 넘치는 의욕에 비해 제대로 된 성취는 없는 사람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던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린 시절 내내 꿈꾸었던 발레리나로서의 미래는 갑자기 키가 껑충 크면서 사라졌고, 대학 시절에 힘겹게 찾은 극작가의 꿈마저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면서 막혀버렸다.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한 후에도 길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멈블코어 활동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지만 그만큼을 앗아갔고 호평받은 인디 영화 [그린버그]나 [방황하는 소녀들]도 기대만큼 많은 문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할리우드 코미디 [아서]에 출연하며 메인스트림으로의 진출도 마지못해 시도해보았던 그레타 거윅은 [프란시스 하]를 쓸 때조차도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실망과 혼란으로 점철된 20대를 버텨내고 30대가 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레타 거윅은 지금이 가장 편안해 보인다. 우회를 거듭하며 방황했던 기억은 보람이 없지 않아 깊어진 이해력과 관대함으로 되돌아왔다. 작가로서 그는 누구보다 영리하지만 결코 가혹하지 않고, 비웃기보다는 함께 웃기를 택한다. 그가 여성들의 우정과 삶에 집중하는 창작자임을 생각해볼 때 여성 관객들이 그레타 거윅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가 그려내는 여성들은 날카롭게 풍자되기보다는 지나온 시기를 되돌아보는 사람의 너그러움으로 이해받으며, 응석이 용납되지는 않지만 벌을 받기보다는 성장을 격려받는다. [프란시스 하]의 공감 가는 프란시스는 비틀대지만 끝내 쓰러지지 않고,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의 어린 트레이시(롤라 커크)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뼈아프게 경험하며 작가로 성장한다. 운이 다한 뮤즈 브룩마저도 자기기만이 불러온 파멸을 피하고 대신 낭만적 가능성의 여지를 선물받는다. [매기스 플랜]의 선한 의도로 가득하지만 무방비한 매기처럼 직접 창조하지 않은 인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 그레타 거윅은 결점과 장점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이 입체적인 여성들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며 관객들도 그렇게 해주기를 겸손하게, 그러나 심지 굳게 제안한다. 모두 나름의 사정이 있잖아요? 라고 말하듯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20세기 여인들]과 각색을 맡은 [작은 아씨들] 리메이크 역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 그레타 거윅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레타 거윅은 등장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엉뚱하게 정의되곤 했다. 대학원을 갈 나이에 처음 배우를 시작해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잇 걸’이라 불리더니, 정확한 뜻도 없는 ‘힙스터 여신’이 슬그머니 추가되었고,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노아 바움백의 뮤즈’는 본인이 몇 번이고 반박해도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런 꼬리표들로는 그레타 거윅을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준다. 여전히 여성들은 ‘걸’과 ‘여신’, ‘뮤즈’로만 존재하기를 기대하는 세상에서 그레타 거윅은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여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여성인 것이다. ‘잇 걸’이나 ‘뮤즈’에 비해 너무 길다고? 줄여서는 ‘페미니스트’라고도 한다. 세 글자만 더 쓰면 되는데 게으름을 떨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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