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마지막까지 존엄하기 위하여 [잘 먹고 갑니다]

2017.02.10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의학의 발전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만 몰두하던 시대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일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도 있지만,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호스피스는 연명 치료를 거부한 말기 암 환자가 남은 시간을 평온하게 보내도록 돕는 제도다. 이 책은 일본 요도가와 기독교 병원의 호스피스 환자 14명과 관계자 4명(영양사, 간호사, 조리사, 의사)의 인터뷰를 모았다. 이 병원에서는 주 1회 환자가 요청하는 메뉴를 제공한다. 금요일마다 영양사가 병실을 돌며 환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인다. 대답을 재촉하는 일 없이 느긋하게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기에 질 나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네, 내 인생은 이게 전부예요. 어머, 식사 이야기가 아닌데 괜찮아요?” 산다는 것은 결국 먹는다는 것이고,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살아온 세월이 펼쳐진다. 꽁치 소금구이를 요청하다 보니 생선 장수의 딸로 태어나 숯불고기 가게를 하게 된 사연이 이어지고, 따끈한 튀김을 부탁한 환자에게는 알고 보니 아이들이 집을 떠난 후 손이 가는 요리는 하지 않게 된 사정이 있다. 환자가 문득 털어놓는 한마디에 동석한 가족이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며 놀라는 일도 많다. 

말기 암 환자는 식사가 어렵다. 영양사와 요리사, 간호사와 의사가 긴밀하게 공조하며, 환자의 입맛은 물론 몸 상태 등 음식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정보도 공유한다. 연명 치료는 안 하지만 증상 완화나 고통 억제를 위한 투약 등의 치료는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회는 겉모양이 손상되지 않게 주의하면서 자잘하게 칼집을 넣고, 돈가스는 얇게 썬 고기를 여러 장 겹치고 한입 크기로 튀긴다. 매주 같은 요리를 부탁하는 환자에게는 맛이 바뀌지 않도록 주의한다. 식판이 아닌 제대로 된 식기에 정성껏 모양내어 담는 것도 중요하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영양을 섭취하는 작업이 아니고 존엄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치료만을 위해 효율적으로 체계화된 병원 시스템에 몸을 맡기고 획일적 사물처럼 다루어지다 보면 ‘나’라는 개인은 사라지게 된다. 요청식은 단순히 마지막 한풀이가 아니라 ‘암 환자’라는 얼굴 없는 존재가 자신만의 개성을 되찾는 계기를 제공한다. 가까운 미래에 죽음이 손짓한다고 해도 살아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환자들은 모두 다음 날의 식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야말로 죽지 못해 먹던 환자들이 식욕을 갖고 적극적으로 먹고 싶은 것을 요청하면서 표정이 밝아지고 머리를 손질하는가 하면 아들의 생일 파티까지 궁리하는 것이다. 어차피 마지막이니 대충 넘기면 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존엄한 삶이 중요하다면 존엄한 죽음도 마찬가지다. “평생 절약만 하다가 지금은 세 끼를 먹고 낮잠을 자는 호사를 누립니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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