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선언 사십춘기], 이유 없는 가출

2017.02.13
MBC [가출선언 사십춘기]에서 권상우는 함께 출연하는 정준하에게 “솔직히 이거 방송 못 나가고 우리 둘만의 추억여행이 될 것 같아”라고 말한다. 사적으로 친하다고 알려진 두 사람이 1주일 동안 하는 여행을 담은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은 ‘무계획, 무섭외, 무대본, 노답예능’을 콘셉트로 내세웠고, 덕분에 두 사람은 여행 내내 갈팡질팡한다. 여행 첫날에는 여행지도 정하지 못해 밤늦게 출발했고, 여행지로 결정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뒤에도 어찌할 바를 몰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들이 큰 의미도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에 의미부여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두 사람이 반야(러시아식 사우나)에 나란히 앉아 “20대 때는 매일같이 사우나에 다녔었지”라며 함께 보낸 시간들을 추억하는 동안 화면에는 그들의 전성기 시절을 담은 영상과 사진이 펼쳐진다. 그리고 회상 후 어린아이로 돌변해 눈 쌓인 해변을 나뒹구는 두 사람의 모습을 ‘해맑’, ‘순수’라는 자막으로 설명한다. 이름 모를 야산에서 눈썰매를 타는 정준하와 권상우에게 ‘얘들아 아빠도 사실은 눈썰매 좋아해’라는 자막을 붙인 것처럼, 제작진은 ‘사십춘기’라는 제목 그대로 두 사람을 ‘아빠’지만 동시에 아이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남자들로 표현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아이 같은 면모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또한 두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직업과 가정으로부터 느끼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조차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여행을 ‘사십춘기’를 맞은 ‘가장’의 이야기로 풀어내려 하면서, [가출선언 사십춘기]는 두 사람의 모든 행동을 가장으로서의 삶과 연결한다. “40대가 되니 저절로 몸을 사리게 된다”는 정준하의 말은 ‘지켜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라는 자막으로 설명되며, 데뷔 초부터 일찍 결혼하고 싶었다던 권상우에게는 ‘33살 최고의 전성기였던 배우에서 한 여자의 남편이 될 것을 약속했다’라는 자막이 붙는다. [가출선언 사십춘기]는 이들이 결혼으로 인해 뭔가를 포기하거나 잃은 것처럼 애처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가족보다는 오히려 직업적 특성에 있다. 그들은 인기 연예인이고, 정준하의 말처럼 ‘주말에도 아들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서 성공도 거뒀다. 이런 과정에서 가족에게 공헌한 것도 당연히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출선언 사십춘기]는 이들의 성공을 가족에게 돌아가는 보상으로 놓고, 그 대가로 가족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가출선언 사십춘기]는 역설적이게도 안정기에 접어든 40대 기혼 남성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우나밖에 갈 곳이 없었던 20대를 지나 40대가 됐고, 3세부터 9세까지 한참 손이 많이 갈 나잇대의 아이 아빠면서도 촬영을 통해 걱정 없이 일주일씩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딱히 ‘질풍노도의 사십춘기’도 ‘가출선언’을 할 이유도 없지만, [가출선언 사십춘기]는 ‘도합 89세’의 남성들에게 가장의 짐을 벗으라며 있는 힘껏 유치해지라고 한다. 하지만 분량에 대한 사명감으로 눈밭을 뒹구는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해방감이나 대리만족이 아닌 꼬리뼈에 대한 깊은 우려와 밥벌이의 고단함이다. 여행 마지막 날, 두 사람은 루스키 섬의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을 그리워한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패닉의 ‘로시난테’다. ‘40대 가장’은 돈키호테가 아니다. 여행 중간, 한국에 들렀을 때 아들의 배웅을 받으며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던 정준하와 딸에게 줄 인형을 사며 환한 웃음을 짓던 권상우는 돈키호테와 달리 마땅히 돌아가야 할 곳을 알고 있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연예인으로 사는 것은 즐거움뿐 아니라 의무도 동반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벗어버리는 방법이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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