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이야기 속 강간 피해자는 어디로 가는가

2017.02.13
* 영화 [더 킹]과 [조작된 도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여성이 강간당한다. 그 사건으로 주인공의 인생은 크게 바뀐다. [더 킹]의 검사 박태수(조인성)는 제자를 성폭행한 교사 송백호(오대환)가 턱없이 적은 합의금에 풀려나게 된 데 분개해 증언과 증거를 확충하고 구속 영장을 신청한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검찰 권력의 중추인 전략부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오자 합의금을 10배 올리는 대신 기소를 포기한다. [조작된 도시]의 백수 청년 권유(지창욱)는 하루아침에 여고생 강간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중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강간범 아들 두기 싫다”는 어머니(김호정)를 위해, 그리고 교도소 내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마덕수(김상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준비한다. 한 사람은 권력을, 한 사람은 진실을 좇는 두 남자의 이야기는 각각 그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강간당한 피해자, 그 여성에게는 다음 장이 없다. [더 킹]의 피해자 지민(신류진)은 최악의 상황에 갇혀 있다. 미성년자인 그의 유일한 보호자는 노점상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리는 지체장애인 엄마(소희정)뿐이다. 가해자 처벌을 약속했던 박태수의 변심은 강간과 폭행에 시달리던 피해자 앞에 또다시 가해자를 풀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전략부 부장 한강식(정우성)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해진 송백호는 박태수 앞에서 피해자에 대한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재범을 예고한다. 그러자 영화는 갑자기 등장한 최두일(류준열)이 고향 친구 박태수를 대신해 송백호를 구타하게 하고, 그의 고환이 파열되었다는 후일담을 통쾌한 듯 전하며 박태수의 죄의식을 덜어준다. [조작된 도시]의 피해자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들 만큼 희미한 존재다. 영화는 ‘폭력적인 게임에 중독되어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누명을 쓴 청년’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믿는 대중의 우매함을 강조한다. ‘여성이 안전하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모임의 대표 격으로 방송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흥분해 극단적인 발언을 내뱉고, 일부 행인은 아들을 구명하려 노력하는 권유의 어머니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이후 관객이 살해당한 여고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그가 늦은 시간까지 클럽에서 놀다 만난 남자를 경계심 없이 따라 나갔다 범행을 당했다는, 즉 순수하고 무고한 피해자 상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는 것뿐이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진짜’ 피해자의 자리는 권유의 몫이 된다.

한국 영화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많은 경우 남성 주인공의 각성이나 복수에의 동기부여, 서사의 터닝 포인트를 위한 장치로 쓰인다. 심지어 가해자의 악행을 고발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전달하려는 의도라 해도, 창작물이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끊임없는 질문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한공주]의 일부 장면은 ‘엑기스 영상’이라는 이름으로 P2P 사이트에 공유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은 한 IPTV 서비스에서 ‘성폭행 영화’라는 키워드로 자동 완성된 카테고리에 검색될 만큼, 한국 사회에서 강간은 일종의 포르노처럼 소비된다. 노골적인 강간 신을 등장시키지 않고, ‘현실적’인 소재를 그럴 듯하게 재현한다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다. [더 킹]의 ‘차미련(이주연) 비디오’는 한강식 무리의 냉혹한 비윤리성을 드러내는 증거인 동시에 박태수를 향한 유혹의 도구였다가, 한강식이 펼치는 여론전의 무기로 쓰인 뒤 깨끗이 사라진다. 이른바 ‘X양 비디오’부터 소라넷, 무수히 많은 ‘일반인 야동’ 등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한 사회임에도 피해자의 서사는 편의적으로 지워지거나 무신경하게 다루어진다. [조작된 도시]에서 권유를 돕는 해커 여울(심은경)이 중년 남성 네티즌을 가장해 퍼뜨린 ‘사건의 진실’ 동영상 역시, 피해자가 당한 두 차례의 강간과 십수 차례의 흉기 난도질을 생생한 동작의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다. 영화는 여고생을 강간 살해한 진범이 국회의원의 아들, 즉 ‘거악’의 일부인 부유한 권력층이었음을 폭로하는 것으로 사건에 대해 마무리한다.

“내가 그때 그놈을 구속했다면 어땠을까?” [더 킹]의 후반, 박태수는 한강식 무리로부터 버림받고 모든 권력을 잃은 뒤에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것은 피해자가 그에게 수백 번 던지고 싶었을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박태수는, 영화는 그에 대해 깊이 신경 쓰지 않는다. 정치판에 뛰어들어 한강식을 나락에 떨어뜨리는 데 성공하며 제법 효과적으로 노선을 변경한 그는 마지막 순간 상쾌한 얼굴로 ‘투표하라’는 메시지를 던질 뿐이다. [더 킹]과 [조작된 도시]는 기득권층과 공생하는 악을 파헤쳐 짐짓 비판하거나 속 시원히 한 방 먹이는 데서 쾌락을 제공한다. 주인공들은 강간을 저지르지도, 옹호하지도 않는다. 이 남자들이 겪는 파란만장한 사건들 속에서 성폭력 사건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바깥의 세계가 성폭력이라는 사안에 대해 충분히 심각하게 인식하거나 대처하지 않는 사회에서, 영화 속 세계에서도 드러나는 성찰 없음을 단지 ‘현실적’인 태도로 수용해도 되는 것일까. 실존하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지워지고 짓눌리는 세상에서 어떠한 서사가, 마치 주인공이 딛고 가는 징검다리처럼 쓰이고 거리낌 없이 잊히는 데 익숙해지는 것은 괜찮은 일일까. 어쩌면 지금 정말 두려워할 문제는 거대한 악보다도 지민의, 차미련의, 한 여고생의 이야기에 스스로 무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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