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셀러브리티│① ‘지식 셀럽’과 방송의 공모, 괜찮은 걸까

2017.02.14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의 면접관은 총 다섯 명이다. 허지웅, 강신주, 진중권, 전여옥, 김진명. 고대사 및 현대사를 왜곡하는 판타지 작가 김진명을 아예 논외로 치면 딱 채널A [외부자들] 출연자 반, tvN [대학토론배틀 7] 출연자 반이다. 이것은 기존에 방영 중이던 JTBC [썰전] 같은 정치 토크쇼에 대선주자가 출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상파에서 국민을 대표해 대통령이 될 사람을 검증하겠다며 만든 자리에 정치, 경제, 행정, 안보 등 분야별 전문가는 한 명도 없고 그 모든 분야에 한마디씩 얹을 수 있는 대중 친화적인 지식인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대통령의 영화 취향이나 미적 감각을 확인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허지웅, 진중권), 대통령이 꿈이면 무조건 그 꿈을 이룬 뒤 포기하라는 하나마나한 조언을 들을 목적이 아니라면(강신주), 이 구성은 지상파로서 너무나 무책임하다. 이것은 케이블 교양 프로그램이나 종합편성채널의 정치 토크쇼 등을 통해 대중적인 지식 중개인이 된 지식인 셀러브리티(이하 ‘지식 셀럽’)에 대한 방송의 활용이 도를 넘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최근 방송과 출판, 강연 시장에서 활약하는 ‘지식 셀럽’의 양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설민석, 최진기, 채사장처럼 좁든 넓든 자기 분야 안에서 해당 분야의 지식을 대중적인 언어로 쉽게 전달해주는 지식소매상 계열과 진중권, 허지웅처럼 자기 분야 바깥에서도 날카롭게 설전을 벌이는 논객 계열이 있다. 물론 대중적 지식인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최근처럼 이들의 발언권이 힘을 얻고 주목을 끈 적은 별로 없었다. 어른들의 지식 채널이 된 O tvN [어쩌다 어른] 최다 출연 강사인 설민석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한국사 전문가가 되었다. 역시 [어쩌다 어른]의 단골 멤버였던 최진기는 하차하기 전, 채사장과 함께 최근 1, 2년 사이에 부는 인문학 열풍의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또한 2년 전부터 자주 쓰이기 시작한 ‘뇌섹남’이란 어휘의 유행의 중심에 허지웅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들은 혜민 스님이나 김미경처럼 모티베이션 자극에 집중하는 기존의 멘토 타입 스타 강사와는 달리 본인들의 지식과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 시장에서 이들의 강점은 명확하다. 대중이 원하는 지식에의 욕구를 대중적인 어휘로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줄 수 있으며, 넓은 관심사 덕에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 가령 언어에 조예가 깊은 조승연 작가는 [어쩌다 어른]에서 영어 공부에 대해 강의를 하는 동시에 예능인 JTBC [비정상회담] ‘광복절 특집’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조리 있는 토론을 펼치기도 한다.

그것이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역할이든 여러 첨예한 이슈에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든 그 자체로만 보면 ‘지식 셀럽’은 순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방송에서 종종 만능 키처럼 활용된다는 것이다. 생전에 TV 권력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날을 세웠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렇게 질문했다. 어제는 보스니아 문제를 이야기하고 오늘은 이민법안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내일은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알제리 문제를 다루는 학자에게서 어떤 깊은 성찰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앞의 순기능은 자기 제한의 미덕을 갖추지 않는 순간 그대로 역기능이 되어버린다. 수능 스타 강사인 설민석에게서 몰랐던 역사 이야기를 듣는 건 좋지만, 그의 강의의 뼈대를 이루는 민족주의적이고 영웅 중심적인 스토리텔링에서 역사관까지 습득하는 건 ‘국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강신주는 [철학 VS 철학] 개정증보판을 내며 한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적인 입장을 다루나, 인간 보편까지는 수준이 안 올라갔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바로 그 인간 보편이라는 개념에 어떤 불의한 권력이 개입했는지 드러내고 해체하는 작업에 페미니즘의 성과가 있다는 것을 성찰하지 못하는 이가 “50년 후에는 나만 남는다”고 자신하는 건 자의식 과잉이다. 조선미술사 강의에서 팩트 오류를 저지르며 방송에서 하차한 최진기의 사례는 자기 제한 없는 ‘지식 셀럽’의 자신감이 어떻게 지식 체계를 교란하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지식 셀럽’ 본인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지식을 필터링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지식 셀럽’의 발언들에 권위를 더해주는 방송의 잘못이기도 하다. 유명해지고 싶은 개인과 쉽고 빠르게 다양한 이슈에 대해 지적으로 보이면서도 재밌는 콘텐츠를 유통하고 싶은 방송이 공모를 한 셈이다.

방송이 출연자에게 제공하는 무대는 다채로운 의견이 교환되고 논박될 수 있는 평등한 빈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식인의 권위가 제공되는 연단이다. 강사를 응시하는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이 무수히 교차 편집되는 강연 프로그램뿐 아니라, 질문을 통해 상대의 권위를 확보해주는 시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지식 셀럽’으로서의 허지웅이 실수한 게 있다면 MBC [PD 수첩]에서 여성혐오 문제를 다룰 때 인터뷰에 응해 “성(차별) 문제의 근간에는 부동산 문제와 계급 문제가 있으며 왜 그걸 안 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그의 말에선 젠더 차별은 부동산과 계급 이전에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가장 근본적 부조리이자 구조적 모순 하나라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이 마이크를 주고 질문할 때, 그에게는 해당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대중에게 한 수 가르칠 권위와 권력이 생긴다. 이것은 한 명의 자유인으로서의 그가 해당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성찰이 필요한 자리조차 조커로서의 ‘지식 셀럽’이 차지하고 발언을 독점하는 것은 공론장을 퇴보시킨다.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교란되고 퇴보한 공론장의 가시적인 현현이다.

하지만 ‘지식 셀럽’과 방송의 공모가 이뤄낸 최악의 풍경이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아니다. 남자아이미술교육전문가를 표방하는 최민준 소장은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남아와 여아 사이의 학습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하며 기존 남아 교육의 문제점을 어머니와 아들의 성별 차 문제로 환원한다. 남아와 여아 사이에 성차가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남아를 위한 학습방식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명확한 근거는 없다. 논거를 대신하는 건 그럴싸한 가정들이다. 그는 뭐든 예쁘게 하길 강요하는 엄마의 미술 교육이 남아를 억압하는 건 아닌지 반문한다. 육아 노동이 엄마에게만 할당되는 것이 온당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현실에서 유아용 스케치북만 봐도 핑크빛 여아용과 파워레인저가 그려진 남아용으로 구분되어 성역할을 공고히 하는 현실에서 그가 비판하는 남아 차별적 미술 교육이라는 것은 실체부터 모호하다. 그가 직접 인용하기도 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육아 버전인 이 유사 지식은 말 안 듣는 아이 때문에 지친 엄마들에게 당장 우리 아이에겐 문제가 없다는 위로를 줄지언정, 문제의 책임을 엄마 본인에게 돌리게 만든다. 이 거대한 기만에 엄마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는 건 비극이다.

정보에 무제한적으로 노출되는 현대 사회에서 유사 지식을 걸러내는 것은 공부 그 이상으로 중요해졌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처럼 해당 문제의 중요 당사자인 방송에서 이 문제를 책임 있게 다루는 것 같지는 않다. 최민준이 [어쩌다 어른]에서 청중과 시청자를 상대로 자기 주장을 펼칠 위치에 오른 건 스타 강사의 등용문이 된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출연과 그 이후 그에게 육아 관련 코멘트를 딴 일간지들 때문이다. 지식을 전달하겠다는 방송에 필요한 건 연출을 통한 시선의 결집이 아니라 지식 검증을 위한 논거의 교환이다. 최치원 같은 신라 시대 지식인들에겐 딱히 한민족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설민석의 강한 민족주의 서사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되어야 하며, 경제적 문제로 이혼하는 부부의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라 말하는 강신주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포함한 현실적 제반사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과 관계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지적 필터링 없는 미디어의 장은 자유로운 공론장이 아닌 아무 말 대잔치가 될 뿐이다. 심지어 아무 말 대잔치에 권위와 신뢰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이 카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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