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잠]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성혐오 끊기

2017.02.15
지난 1월 25, 26일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 사무실에는 종일 전화가 빗발쳤다. 24일 저녁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발표한 ‘표창원 의원의 시국풍자 전시회 관련 입장문에 대한 첨삭지도’에 대한 항의였다. 사건의 발단은 1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불이익을 당한 작가들이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시국 풍자 전시회 [곧, BYE! 展]을 열었다. 이들의 요청으로 주최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사무처를 설득해 전시공간을 대관했다. 며칠 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속 비너스의 나체에 합성하고 마네의 [올랭피아]와 섞어 패러디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부패하고 무능력한 권력자로서의 박 대통령을 풍자하기 위해 굳이 벌거벗은 여성의 신체를 부각시키는 방식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지적이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월 24일 페이스북을 통해 “작품은 예술가 자유이고 존중돼야 하지만 그 작품이 국회에서 정치인 주최로 전시된 것은 적절치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표창원 의원은 [더러운 잠]이 자신의 취향은 아니지만 ‘예술의 자유’ 영역에 포함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통령이나 권력자, 정치인 등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과 풍자 등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주십사 요청 드린다”는 입장문을 올렸다. 명백한 젠더 이슈임에도 ‘여성’이라는 단어 한 번 등장하지 않는 이 글에 대해 민우회는 틀린 것과 빠진 것, 불분명한 것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첨삭했다. 업무를 마비시키다시피 할 정도로 항의 전화가 쏟아진 것은 이튿날 아침부터다. “어떻게 이런 시국에 ‘박사모’처럼 민주당 때리기에 동참하느냐”, “나도 여자지만 박근혜를 같은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뭐가 여성혐오라는 건지 모르겠다”, “진보 단체인 줄 알았는데 여자 대통령이라고 옹호하다니 실망스럽다”. 민우회의 제이 활동가는 “항의 전화를 하신 분들 대다수가 여성혐오 문제라는 사안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박근혜 정권에 대한 찬반 구도로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여성 문제를 진영 논리로 ‘밀어버리는’ 과정에서 여성 의원들에 대한 공격도 이어졌다. 1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위원장 양향자)는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젠더적 관점에서 문제가 있음을 직시했고, 당 차원의 신속한 대처를 주문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사안을 윤리심판원에서 신속하고 엄격한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며 열두 명의 여성 의원들이 서명한 별도의 성명서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피해망상’, ‘한국식 꼴페미’ 등의 비난에 휩싸였다.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 출연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전 청와대 홍보수석)는 “보수들의 전형적인 물타기에 페미니즘을 추구한다는 의원들이 동조한 것은 유교적 페미니즘, 가짜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 의원은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 회원들이 시위에 들고 나온 “더러운 잠에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는 팻말에 대해서도 비판했지만 ‘내부 총질’이라는 조롱은 계속됐고, 여성에 대한 수많은 비하와 혐오표현들이 또 다시 남 의원과 박 대통령을 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민주당 윤리규범 제5조 ‘품위 유지’ 항목에는 “당원은 여성·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거나 지역·세대 등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언행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2월 2일,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이 표창원 의원에게 당직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리자 또 다시 논란이 일었다. 2012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트위터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그년’이라 지칭했다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징계안이 회부되었지만 계류 끝에 흐지부지된 데 비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러한 결과가 ‘반 문재인’ 정파 문제라는 주장이 득세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 공식 팟캐스트 [서당캐]에 출연한 김영호, 박주민, 황희 의원과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 역시 표 의원에 대한 징계를 안타까워하며 [더러운 잠]은 ‘여성 비하 목적이 아니라 대통령을 풍자했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충분히 엄정하지 않았던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논하는 것이 ‘진보’의 길이 되어야 할까. 올해 초 표창원 의원의 ‘병신년’과 ‘정유년’에 대한 말장난을 비롯해, 그동안 남성 정치인들의 젠더감수성이나 인권 의식 부족이 지적될 때마다 그를 옹호하며 쏟아져 나온 반응들은 애초의 문제제기 자체를 부정하거나 사안을 축소하는 쪽이었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혐오 발언이 재생산됐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이 [더러운 잠] 논란에 대해 던졌던 “이게 정말 여성혐오인가요?”라는 질문 또한 의문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의미는 명백하다. ‘이까짓 게 무슨 여성혐오라고 난리냐’. 하지만 비록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 유기와 비리 혐의에 대해 ‘여성의 사생활’ 운운하는 저열한 방식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해도,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를 지닌 새누리당이 이번 기회에 과도한 정치공세를 펴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야권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비판을 망설이거나 멈춰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어떠한 경위에서든 정치인이 누군가의 소수자성을 비하하는 행위에 힘을 실어주었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한 사회의 개선이자 진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표창원 의원에 대한 징계가 결정된 2월 2일,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제 자신이 더 부끄럽다”며 “국민들이나 우리 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하소연했다. 그가 지칭하는 ‘국민’과 ‘우리 당 지지자’가 서로 완전히 겹치는 범주는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성평등을 지향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에 반대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 수가 ‘국민’의 다수는 아닐지라도,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바라는 것이 유권자의 지나친 요구일까. 어쩌면 정권교체만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가 이루어질 거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지나친 낙관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떻게 지금보다 한 발 더 나아갈 것인가, 현 정권 퇴진 이후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이 질문들은 결코 진보의 걸림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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