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① “아직 베테랑이 아니라서 불편하면 상대 배우와의 연기에 집중을 잘 못 한다”

2017.02.16
알던 얼굴인데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만들 때가 있다. 데뷔작인 KBS [학교 2013]를 포함한 8편의 드라마와 KBS [우리동네 예체능] 등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며 서글서글한 인상을 보여준 이지훈은 SBS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악역 허치현을 연기하며 자신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증명했다. 때문에 허지현에 대해서는 비난이 있을지언정, 이지훈은 스스로도 “거의 대부분 응원글이었다”고 말할 만큼 시청자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받은 배우가 됐다. [푸른 바다의 전설] 종영 후,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이지훈을 만났다.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허치현은 화장실 안에서 독극물을 먹고 자살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 장면은 어떻게 준비했나.
이지훈
: 촬영에 쫓기다 보니 수면 시간이 부족할 때였다. 집에서 2시간 잘 수 있게 됐는데, 그 장면을 생각하다 보니 그냥 밤을 새우게 됐다. 촬영장에 가서 밥도 먹지 않았다. 그 전에 한 달에 걸쳐 체중도 80kg에서 68kg로 빠진 상태였다.

계획된 체중 감량이었나. 그러고 보니 드라마 초반에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이지훈
: 작품 들어가기 전에는 회장님 아들이고 재벌이니까, 시청자들이 봤을 때 착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일부러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73kg에서 80kg까지 살을 찌웠다. 시놉시스에서부터 치현은 감정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고돼 있었기 때문에, 후반부가 되면 다시 체중을 감량해야겠다는 식으로 준비를 한 거지. 흰밥 대신 발아현미로 밥을 지어 먹고, 하루에 한 끼, 많이 먹어봐야 두 끼 정도 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를 거의 하지 않은 것도 있고, 계속 움직이고 무언가를 보고 날씨는 춥고 신경은 예민해지다 보니까 살이 계속 빠지더라. 원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면 살이 빠지는데, 촬영 들어가면서 운동을 못 한 것도 있고.

비주얼 외에 연기적으로 신경 쓴 부분도 있나.
이지훈
: 심경이 변화한다고 해서 눈을 어떻게 한다든지 목소리를 바꾼다든지 하는 건 오히려 없었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의상 색깔에 변화를 주면 치현의 감정에 기폭제가 돼줄 거라는 계산은 있었지만 오히려 연기적으로는 다른 포인트를 잡지 않았다. 그저 내가 느낀 감정 때문에 상대와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만 생각했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현장에서 상대와 같이 하는 거니까, 상대가 반을 주고 나도 반을 주는 거다. 오히려 이런저런 포인트를 만들면 그건 진짜가 아니다.

허치현이라는 캐릭터와 그 가족사는 섬뜩한 부분이 있지만, 현장 분위기는 꽤 훈훈했던 것 같다. 황신혜 씨를 ‘누나’라고 불렀다고 들었다.
이지훈
: 난 불편하면 상대 배우와의 연기에 집중을 잘 못 한다. 불편하고 어색한데 갑자기 몰입해서 연기하는 건, 아직 베테랑이 아니라서 할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가까워지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다른 배우들에게 나 자신을 많이 오픈하며 다가갔다. ‘난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경계하지 말라’ (웃음) 같은 거지. 장난기가 많아서 선배들에게 호칭도 편하게 하고 애교도 부리고 나의 아주 사적인, 부끄러운 이야기도 다 했다. “아, 얘가 나한테 솔직하게 다가오는구나”라고 생각해주시도록 말이다. 다들 귀엽게 봐주시더라. (웃음)

친해진 만큼 현장에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이지훈
: 허일중 형님이 가장 연장자이고 선배이신데도 불구하고 소년 같으시고 분위기를 많이 띄워주신다.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하시다가 재미없는 개그가 나오면 황신혜 누나가 [푸른 바다의 전설] 속 대사를 인용해서 “여보, 투구꽃 좀 달여서 먹여줄까?” 같은 농담을 하시고 그랬다. 두 분과 많은 촬영을 함께 했는데 배운 게 많다. 허일중 형님은 내가 혼자 샷을 받는 촬영에서도 나와 눈을 맞춰주려 하고, 황신혜 누나는 한 시대를 풍비했던 미녀 배우였는데도 많이 도와주셔서 연기를 대하는 태도를 많이 배웠다. 내가 나중에 선배가 되더라도 연기에 있어서만큼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 헌신적으로 해야겠다는 것을 배웠다.

좋은 선배를 만나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푸른 바다의 전설]이라는 작품을 만나기까지 경쟁이 치열했을 것 같다.
이지훈
: 작가님과 감독님이 JTBC [마녀보감]을 보고 내가 인상 깊었다며 만나자고 하셨다. 원래 연기를 시키려고 부른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온 김에 이거 해봐라”고 하시며 대본을 주시더라.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의 남궁민 씨 대사를 연기했다. [딴따라],  [쓰리 데이즈]의 대본도 있었다. 사실 내 작품 촬영 때문에 바빠서 이 드라마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디션장에서 한 장의 대본을 받고 그 안에서 해석해야 했다. 대본에서 알 수 있는 상황과 그 상황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 서로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고 얻고 싶어 하는가, 서브 텍스트는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며 대본을 분석하고 연기를 했지만, 사실 15분 안에 연기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투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서 했다. 나중에 감독님께 저를 왜 뽑았냐고 물어보니 그냥 내가 하고 싶었다는 게 눈에 보였다고 하더라. 그걸 좋게 봐주신 것 같다.

[푸른 바다의 전설] 직전에 방송됐던 KBS [드라마 스페셜 - 전설의 셔틀]에서는 타이틀롤 이었다. 그 오디션도 상당히 치열했을 텐데.
이지훈
: 내가 연기한 강찬 역에 200명이 오디션을 봤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이 역을 맡을 만한 배우는 거의 다 보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마지막 오디션 자였다. 당시 다른 스케줄 갔다가 바로 오는 길이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생뚱맞은 애드리브가 너무 하고 싶더라. 대사 몇 마디 하는 걸로 이 사람 연기가 평가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간다고 생각해서, 내가 이만큼 하고 싶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대사 한 줄 말고도 애드리브로 나오는 대로 막 말했다. 대사를 쳐준 분께 다가가서 “야, 이 새끼야, 너 뭐하는 새끼야?”라고 말하고 장난도 치고 툭툭 치면서 연기를 했는데, 그분이 감독님이었다. “내가 감독인데 참 막하네”라고 해서 너무 당황했다. 내가 감독과 작가라고 생각한 분들은 감독님 밑에 있는 후배들이었다.

어떻게 상황을 무마했나. (웃음)
이지훈
: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되게 잘생기셨어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감독님이 “늦었다”고 말하더라.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봐라”고 하셔서, “죄송하고요. 이 캐릭터는 제가 하면 참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연이 닿아야 하는 거니까요. 또 뵀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팀장님에게 “모르겠어요. 안 될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바로 다음 날 연락이 왔다.

그렇게 발탁된 단막극 주연으로서 이끈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이지훈
: [전설의 셔틀] 외의 모든 작품은 선배님들이 주변을 신경 써주셔서 내가 숟가락을 얹었지만, [전설의 셔틀]은 달랐다. 내가 주가 돼서 이끌어가야만 했다. 감독님이 “애들이 경험이 많이 없으니까 대화를 많이 해보고 그들의 생각도 많이 들어봐라”고 하셔서, 집에 후배들을 불러 4일 정도 합숙을 했다. 후배들이 대부분 20~21살이었다. 우선 미스터피자 포테이토 피자를 시켜서 아이들의 환심을 사고, 그들이 경계심을 풀 때쯤 대본 리딩을 시작하며 동생들의 생각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각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더라.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다고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니까, 나도 아이들 얘기를 듣다가 내 생각을 고친 것도 있다. 4일 동안 함께하다 보니 나도 21살이 된 것 같고 프레쉬한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는 어땠나.
이지훈
: 분석한 내용을 머리에 최대한 많이 집어넣지만, 집에서 준비한 걸 현장에서도 똑같이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은 하면 된다. 분명히 머리에 있다. 날 믿고 던지면 된다. 동생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고, 감독님과도 대화를 많이 나누고, 서로를 믿고 연기를 던지며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드라마 반응도 좋았다. 드라마 스페셜 10편 중 시청률도 가장 잘 나왔다. 사실 그래서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웃음)

그래도 좋은 인연을 얻은 것 같다.
이지훈
: 원래 이쪽 계통에 아는 동생들이 없었는데,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됐다. 김진우가 출연한 MBC [행복을 주는 사람]을 보고 모니터링해주기도 하고, JTBC [솔로몬의 위증]에 나온 서지훈에게는 전화를 걸어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봤을 때 넌 마스크도 잘생겼고 눈빛도 멋지다”고 조언을 해줬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서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 관계다. 그들이 내가 [푸른 바다의 전설]에 나오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와, 연예인이다”라고 연락을 해오기도 한다. 이런 인연이 생긴 거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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