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기르는 법] 김정연 작가 “원하는 걸 말하는 것만큼이나, 더는 하고 싶지 않은 게 무엇인지 말하는 게 중요하다”

2017.02.20
혼자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일까. 자존감일까. 아니면 됐고 월급이나 주세요? 최근 시즌 3으로 돌아온 동시에 지난 두 개 시즌을 단행본으로 묶은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은 동시대 서울을 사는 이십 대 여성 이시다가, 동시대 서울을 사는 이십 대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지난한 삶의 풍경을 담아낸다. 동시대 서울은 제 몸 하나 누일 작은 공간을 마련하기도 벅찰 만큼 공간의 가격이 비싸지만, 중장비보다 오래 일해도 그 공간을 유지하기 빠듯할 만큼 시간의 가격은 싸다. 다들 먼저 빽빽이 자리 잡은 대도시에 후발주자인 이십 대는 자리를 잡지 못해 밀려나지 않으려 애를 써야 하고, 그 와중에 여성은 개인의 작은 안전마저 보장되지 않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자조적인 코미디이면서도 볼 때마다 서늘한 이 풍경을 그려낸 동시대 서울을 사는 이십 대 여성 김정연 작가와의 대화는,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이십 대 여성으로서 사는 것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낸 [혼자를 기르는 법] 단행본 자기소개에 ‘이유가 있는 것들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김정연
: 납득이 되어야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을 그리면서 분명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서사를 풀어나가거나 설정을 만들 땐 최대한 나름의 근거나 납득할 이유를 찾아내려 한다. 가령 작품 안에서 해수의 이야기가 그랬던 것 같다.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도 낚시 바늘이 박힌 물고기 이야기를 생각하며 해수 입술에 피어싱을 했다. 이유 없이 피어싱 하는 걸 피하려고.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으려 ‘~하지 않기’라는 룰을 지키려 한다. 가령 동물 사육을 권장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쓸데없는 말 더 넣지 않기 등등. 집에 ‘안 돼’와 ‘하지 마’를 작게 프린트해서 여기저기 붙여놓았는데, ‘열심히 하자’는 메모보다 그게 내겐 더 도움이 된다.

그럼 본인이 이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정연
: 일단 내가 경험하는 서울이라는 채널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 경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불만족’이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삶의 다양한 모양새 중 내가 좋아하는 걸 골라서 살면 되는 건 줄 알았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불만족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다가 당시 키우던 햄스터 윤발이에게 내가 채워주지 못해 생기는 불만족과도 연계해서 생각하다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 처음 텍스트로만 썼을 땐 어떤 매체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우선 당시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일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시기라 만화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글로 안 되는 건 그림으로, 그림으로 안 되는 건 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지금도 내가 만화가로서 만화를 그린다는 생각보다는 만화라는 형식을 사용한 장기 프로젝트를 하는 느낌이다.

당장 작품에서 그리는 서울의 불만족이라면 독립과 주거 문제가 떠오르는데.
김정연
: 여성의 경우 집을 구할 때 안전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구해야 하니까 더 어려움이 있지. CCTV는 어디 있는지, 대로변은 얼마나 가까운지, 심지어 이웃은 어떤 분위기인지. 여성들만 있는 원룸도 소개받았는데 정말 CCTV로 둘러싸여 있고 깔끔하긴 한데 침대 매트리스 크기만큼 작고 굉장히 비쌌다. 그래서 그나마 건물 현관에 비밀번호 패드 있는 곳을 찾아서 들어가긴 했는데 워낙 배달 음식을 많이 시키다 보니 주위 사람들도 다 비밀번호를 알고 들어오더라. 그러다가 한번은 새벽에 문 쪽에서 소리가 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도 불러봤다. 그 이후로는 이웃 발소리만 들려도 확 쪼는 게 있다. 사실 안전이라는 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건데, 거기에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로선 양보하기 어려운 삶의 질에 관한 문제인데 여자 혼자 살면서 이 정도는 투자해야지, 라고 말하니까.

안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문제니까.
김정연
: 독립한 게 그러지 않은 것보단 낫지만 분명 주거 공간에 대한 욕구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이것보단 더 나은 삶의 모양새여야 하지 않은가 싶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좋아하긴 하는데 공간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양보하는 것들도 있다. 책장을 하나 더 사고 싶은데 가구를 놓을 공간이 없어서 그냥 책을 쌓아놓는다거나. 그래도 최소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로 집을 채우진 않으려고 엄청 노력하는 편이다. 가령 나무 색상 하나랑 솔리드 컬러 하나 정해두고 어느 정도 일정 부피를 차지하는 물건들 중 그게 아닌 건 안 들고 오려고 한다. 특히 뭔가 프린트되어 있거나 요철이 있는 물건을 안 들여놓으려 한다.

작품 속 이시다는 그런 요철에 대해 ‘왜 굳이 공정을 추가하면서까지 자꾸 뭘 박아내는 거냐’고 투덜댄다.
김정연
: 비어 있는 것에 대해 해야 할 걸 안 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게 진짜 필요한 것인지 계속 질문하지 않으면 과잉으로 간다. 서울이란 도시의 기본적인 태도가 그런 것 같다. 도시의 생김새만이 아니라 일상이나 사회생활에서도 그렇다. 안 해도 될 말을 하거나 필요 없는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그걸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으로 여길까 봐 두려움이 든다. 어떤 면에서 앞서 말한 자기소개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안 하겠다는 다짐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선 뭘 안 하는 개인을 탓할 때가 더 많은데.
김정연
: 내가 문제인가 싶을 때도 분명 있었다. 자신감이 미친 듯이 떨어졌을 때가 있다.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내가 왜 이렇게 적응을 못하지? 왜 전체 중 부분으로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지? 그렇게 자책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잘 안 됐던 문제들을 모아놓고 보면 이건 할 만큼 했는데 지금 이것보다는 나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괜찮게 다듬어나가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들이 있지 않나. 이 정도면 됐어, 라는 말도 이상하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라는 말도 이상하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라는 말도 이상하고, 그거는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말도 이상하다. 그런데 모두가 그걸 당연한 듯이 이야기를 하니까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것을 개인의 예민함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부조리로 언제 인식하게 됐나.
김정연
: 여자애가, 또는 젊은 애가, 라고 시작되는 말에 화를 내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요구되는 기준들에 대해 정말로 그런 줄 알고 저지른 실수가 많다. 그러다 페미니즘 이슈를 접하고 또 친구들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나 보편이라 이야기되는 것들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됐다. 화를 내도 되는 문제에 조금씩 화를 낼 줄도 알게 됐고 안 들어도 될 말들을 구분해내기 시작했다. 불만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원하는 걸 말하는 것만큼이나, 더는 하고 싶지 않은 게 무엇인지 말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낀다.

이 모든 이야기가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제의식이기도 할 텐데, 이것을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독자들과 공유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김정연
: 단지 이게 나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가 계란으로 느껴질 만큼 바위 같은 문제를 마주해서 벌어지는 일 아닌가. 그런 문제에 대해선 밖으로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 연재 중인 다음에선 불특정 다수가 우연히 접근할 수 있고 나도 보여주고 싶은 걸 많은 사람에게 노출할 수 있다. 이것도 나에게 일종의 힘이 된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서 조심하고 또 잘해내고 싶다.

이 이야기를 일상툰으로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 기존에 이미 있는 일상툰이란 장르를 피한 까닭이 있을까.
김정연
: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이란 게, 내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을 때 그 포인트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계정을 새로 파는 거랑 비슷하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을 이야기할 때 어떤 설정이면 이 주제를 전달하기에 더 효과적이겠다 싶으면서도 실제 상황을 따라가기 위해 양보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가상의 시다라는 계정을 파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더 효과적인 설정 안에서 풀어낼 수 있다. 실제로 경험하진 않았지만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사건이나 인물로 재구성할 수 있고. 그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고백이 목표인 건 아니니까.

혹 시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본인이 경험하는 상황들을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도 있나.
김정연
: 내가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시다를 통해 서사를 구성하려 할 때는 한 번 더 정리된 상태로 내 일을 인계한다고 할까. 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시다에게 준 다음에 “시다야, 너는 어떤 상황이야?”라고 물어보고. (웃음) 그러다 보니 시다가 나보다 더 냉철한 건 아니지만 한 스텝 더 일찍 냉철한 것 같긴 하다. 나도 힘겹지만 그걸 따라가고 있고.

이야기를 위한 수단이지만 시다라는 캐릭터와의 감정적 유대가 두꺼워질 수도 있겠다.
김정연
: 시다는 잘 모르겠지만 윤발이 캐릭터와의 관계는 분명히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만화는 윤발이에 대한 사과의 의미가 있어서. 혼자 나가 살면 바로 뭔가를 키울 줄 알았다. 그런데 윤발이는 세상을 떠났고. 개나 고양이가 아닌 이런 작은 동물들은 정서적인 교감이나 사인을 주는 게 많이 떨어져서 결국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얘가 어디서 왔으니까 뭘 좋아할 것이고 뭘 해주면 좋아한다더라. 그런 것에 욕심내면서도 그냥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 몇몇 에피소드에서 특히 마음 아팠던 게 있다. 가령 [인터스텔라]를 패러디한 ‘특수상대성 햄스터’ 같은 것들. 윤발이가 죽었을 때 내 수명을 나눠 주고 싶단 생각을 엄청 했었는데, 좀 다른 방법으로 그걸 하고 있는 느낌도 든다. 만나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고 실제로 작업을 통해 그러고 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미안함이 있다. 그래도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윤발이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 기분이 좋다.

그렇다면 이번 단행본처럼 눈에 보이고 물성이 있는 걸 남기는 것도 뿌듯할 것 같다.
김정연
: 윤발이를 포함해 다들 갑자기 사라지니까. 나도 덜컥 겁이 났던 시기가 있었다. 스스로 뭘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고.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오천 원짜리 일회용 카메라를 몇 개 사서 친구들이랑 이상한 우정사진들을 엄청 찍었는데, 서울에 올라와 현상소를 가니 사기당했다고, 필름 없는 카메라라고 해서 충격받은 일이 있다. 분명히 있었던 일인데도 없었던 것처럼 허무해서 그때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작업하는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걸 하고 싶단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행본이 출간됐을 때 이번엔 제대로 인화까지 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작업이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면, 그래도 이 만화를 그리는 걸 통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 무엇이라고 보나.
김정연
: 원하는 게 제대로 되지는 않았을지언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고 갔다는 것? 내가 원하는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 욕심내려는 것. 이만하면 괜찮아, 라고 말하지 않으려는 것. 윤발이가 반짝하며 사라지는 걸 보며 나 역시 조바심이 생긴 게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꽤 오래 느낀 시기도 있었고. 뭐하러 이 세상에 나와서 만족하지 못한 상태로 사라지겠구나, 라는 공포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과 필요했지만 가지기 쉽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이야기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혹 삶의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있나.
김정연
: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건 없다. 사는 이유가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는 거지, 어떤 이유가 구체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단지 내가 어떤 삶의 모양새를 원하는지에 대해 항상 자각하고 있으면 좋겠다. 사는 방식에 대해, 계획에 대해, 온전히 내가 내린 선택인지에 대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말한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시기에 죽기 무섭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나를 뒤로 미루는 걸 멈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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