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vs 딸들, 여성예능의 현재

2017.02.22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 2]와 [하숙집 딸들]은 방송 3사를 통틀어 보기 드문 ‘여성 중심 예능’이다. 여성들만의 시너지를 확인시켜준 [언니들의 슬램덩크] 종영 이후 같은 채널에서 비슷한 시기에 방영을 시작한 두 프로그램은 ‘여성 중심 예능’이 조금씩이나마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방송된 [언니들의 슬램덩크 2]와 [하숙집 딸들]에는 여성 출연자가 주축이 된다는 공통점 외에는 차이점이 더 많았다. 같은 뿌리에서 다른 가지로 뻗어 나간 두 프로그램을 비교했다.

걸 그룹 vs 하숙집
지난 10일 방영을 시작한 [언니들의 슬램덩크 2](이하 [언니들])는 ‘걸 그룹 데뷔’라는 목표 아래 굴러가는 프로젝트다. 2016년 12월 종영된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여섯 명의 출연자가 ‘꿈계’를 결성해 순서대로 계주가 되어 꿈에 도전하고, 나머지 계원들은 이를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즌 2에서는 개인의 꿈 대신 하나의 목표에 집중한다. 다양한 변수를 포함했던 지난 시즌에 비해, 걸 그룹 육성 과정이라는 명확한 포맷을 갖췄고 이를 통해 음원, 무대 등의 결과물도 보여줄 수 있다. [언니들]과 함께 새로운 ‘여성예능’으로 주목받고 있는 [하숙집 딸들](이하 [딸들])은 지난 14일 처음 방송됐다. ‘하숙집’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운 버라이어티 쇼로, 그간 예능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여배우’ 5인이 주축이 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남자전용’이라는 하숙집의 설정이다. 매주 다른 남성 게스트가 출연해 ‘하숙생 테스트’를 받고, 배우들은 그를 검증하기 위해 ‘성북동 마당 너른 이층집’의 실내와 야외를 오가며 토크와 게임을 한다. [언니들]이 ‘목표’를 두고 여성 출연자의 성장기를 그린다면, [딸들]은 ‘상황’을 주고 여성 출연자들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캐릭터 vs 서열
[언니들] 1회에서는 출연자들과 김형석 PD의 면담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강예원은 음악에 대한 트라우마를, 한채영은 아이 엄마로서의 삶을 고백했다. 홍진영은 과거 걸 그룹으로 데뷔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으며, 공민지와 전소미는 소속되어 있던 그룹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참이다. 여기에 시즌 1의 멤버였던 김숙과 홍진경은 걸 그룹 활동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을 지닌 상태. 이처럼 [언니들]에서는 출연자들의 지원 계기와 사연을 자세히 밝힘으로써 캐릭터를 형성했고, 이를 공유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출연자들은 자연스러운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딸들] 1회에서도 역시 출연 계기를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원래 허당”,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두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출연자들의 목소리는 모두 ‘여배우로서의 도전’이라는 애매한 말로 묶인다. 그들 각자가 예능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대한 설명은 끝끝내 생략된 채, 나이에 따라 엄마, 첫째 딸, 둘째 딸 등의 역할이 주어진다.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에서 출연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배우로서 상황극에 몰두하는 것뿐이다.

김숙과 홍진경 vs 이수근과 박수홍
[언니들]의 경우 김숙과 홍진경이 사실상 MC의 역할을 한다. 시즌 1부터 함께해온 이들은 제작진과 걸 그룹 프로젝트에 익숙한 인물로서, MC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상황을 정리하고 차질 없이 진행시킨다. 새 멤버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김숙과 홍진경은 양 끝에 앉아 마치 토크쇼의 MC처럼 들어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특히 김숙이 김형석에게 슬램덩크 ‘안 선생님’ 캐릭터를 부여하거나, 홍진경이 엉성한 몸짓으로 춤판을 주도하며 강예원, 한채영과 함께 ‘몸치들의 댄스워’를 예고하는 장면은 MC이자 메인 플레이어인 두 사람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반면 [딸들]에서 ‘하숙집 삼촌’이자 ‘예능교관’을 자처하고 나선 이수근은 보다 명백한 MC 포지션이다. 그는 출연자들에게 ‘여배우의 이미지’를 벗으라고 강요하며 분장이나 내기, 게임 등을 주도한다. 1회에서 이수근은 다음 녹화 때 ‘수염 분장’을 하거나 ‘시상식 드레스’ 차림으로 출근하자고 제안했으나 이미숙의 단호한 거절로 무산되기도 했다. 또한 ‘장기하숙생’ 역할을 맡은 박수홍은 여성 출연자들 중 누군가를 비밀스럽게 흠모한다는 설정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충실하기 위해서인지 그는 여배우와 함께 방송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나치게 흥분하며, 시시때때로 러브라인을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친근하고 편안한 콘셉트의 ‘가족’ 역할극에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입덕요정 강예원 vs 히든카드 박시연
[언니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강예원이다. 그는 성악전공자지만 경제, 육체, 심리적 문제로 음악을 포기한 이후 노래 부르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김형석과의 면담 과정을 통해 결국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성장기’를 그려내는 [언니들]의 주제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또한 소장하고 있던 피아노에 엉성하게 ‘I LOVE MUSIC’을 쓰는 모습이나, ‘리듬 속에 그 춤을’에 맞춰 5배속 댄스를 선보이는 모습은 앞서 MBC [일밤] ‘진짜 사나이’, SBS [씬스틸러-드라마 전쟁] 등에서 호응을 얻었던 엉뚱한 캐릭터 그 자체였다. [딸들]에서 눈여겨볼 만한 인물은 박시연. 다른 출연자들이 ‘여배우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어색하고 안쓰럽게 느껴진 데 반해, 박시연은 상대적으로 그런 압박감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으리으리한 저녁상 앞에서 토크보다는 식사에 몰두하다 놀림을 받고 당황하거나, 가위바위보 백전백패라고 하면서도 결정적 순간 승리를 차지하고는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러브라인을 시도하는 박수홍에게 “지금 이혼소송 중”이라며 받아치는 장면은 범상치 않은 그의 캐릭터를 짐작하게 했다.

안정적 주제의 한계 vs 가학적 웃음의 위험성
[언니들]은 지난 시즌을 통해 검증된 ‘걸 그룹 데뷔’에 도전한다. 사실상 이는 어느 정도 흥행이 보증된 안전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발전된 형태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우선 사소할지라도 ‘진짜 꿈’을 보여줬던 지난 시즌에 비해, ‘걸 그룹 데뷔’는 출연자들의 꿈보다는 방송 제작을 위해 내세운 대의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제가 축소되며 보여줄 수 있는 장면도 한정적이 됐다. 또한 프로그램을 시즌제로 이어갈 생각이라면, 더욱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출연자가 바뀐다고 할지라도 ‘걸 그룹 육성’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딸들]의 경우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가학적인 게임을 반복함으로써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긴 나무 막대로 짜장면을 먹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얼굴에 온통 춘장을 칠하거나, 신 라임을 억지로 입에 욱여넣는 것은 그저 재미를 위해 여성 출연자를 사정없이 망가뜨리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또한 첫 번째 게스트로 출연한 박중훈이 가장 예쁜 딸을 꼽는다거나, 자막을 통해 예쁜 딸들 덕분에 ‘남자 하숙생’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편견을 부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게 씌워진 ‘여배우’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대상화한다. 진짜 ‘여성 중심 예능’을 만들고 싶다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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