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황혼의 울버린

2017.03.08
* 영화 [로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어 했다. 그가 사려던 배의 이름은 ‘썬시커(Sunseeker)’.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해를 쫓는 삶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라도, [로건]의 로건(휴 잭맨)이 리무진 운전으로 돈을 벌고 거대한 물통에 갇힌 찰스(패트릭 스튜어트)가 발작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던 건 명백해 보인다. 늙고 지치고 이제 가까운 거리의 활자를 읽기 위해선 안경까지 써야 하는 왕년의 울버린에게 필요한 건 전성기의 영광이 아닌 평화로운 은퇴 생활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밤마다 사람들을 해치는 꿈을 꾸는 그에게, 현재의 시시하고 지친 삶이 떠나고 싶은 종류의 것이라면, 싸움으로 점철된 과거는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맡게 된 로라(다프네 킨)를 거대 연구소의 용병들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상황은 결코 반가울 수 없다. 그는 현재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마주한 건 도망치고 싶던 과거다. 로건의 유전자를 받아 재생 능력과 클로를 가지고 있고 아다만티움까지 뼈에 덧씌운 어린 로라는 말하자면 눈앞에 실체화된 과거다. 로건은 찰스에게 돌연변이는 신의 계획이 아니라 신의 실수였노라 말한다. 그렇다면 로건과 로라의 만남은 신의 악취미다. 운명이 지랄 맞은 건 가혹해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어서다.

[엑스맨] 전 시리즈와 울버린 스핀오프를 통틀어 [로건]이 유일한 R등급으로서 피를 뿜고 살점을 튀기는 잔혹한 액션을 보여주는 건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잔인한 운명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더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 도입부 차 도둑들과의 싸움에서 드러나듯, 늙은 로건은 이제 더는 누군가를 봐주며 싸울 수 없다. 영화 안에서 직접적으로 인용된 [셰인]이나, 함께 참고했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와 같은 서부극에서 선택지는 죽거나 죽이는 것뿐이다. 더는 예전 같은 재생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로건이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의 팔을 자르고 두개골을 뚫는 것에 사정을 두어선 안 된다. 사실 생존은 그의 가장 큰 장기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서 젊은 시절의 에릭(마이클 패스밴더)에게 “우린 생존에 능하다”고 했고, 실제로 철근 콘크리트에 묶여 바다에 가라앉은 뒤에도 결국엔 살아났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원제는 ‘The Last Stand’였다. 수많은 돌연변이가 숨진 마지막 전투에서 세계관 내 최강자인 다크 피닉스(팜케 얀센)를 죽이고 최후에 선 건 로건이었다. 모든 돌연변이가 사라진 황량한 2029년을 여전히 그가 지키고 있는 것 역시 그때까지 그가 생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푸른 바다에 나가 해를 쫓는 삶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용 아다만티움 총알을 만지작대던 그가 이제 다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잔혹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일인가.

다시 말하지만 로건이 원하는 건 과거의 영광이 아니다. 아니, 그는 과거를 영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로라가 좋아하는 [언캐니 엑스맨] 만화책을 보며 그는 말한다. 잘난 쫄쫄이들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고. 예전에 한 번 있었던 걸 부풀렸을 뿐이라고. 쫄쫄이 입은 슈퍼히어로 서사는 노골적으로 부정된다. 그는 싸움의 끝에 얻을 수 있는 최선은 생존일 뿐, 영광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영광도 없고 삶도 없는 여정. [로건]이 영화 속 풍경처럼 삭막한 건 이 싸움으로부터 어떤 희망의 근거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로라는 다른 돌연변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사는 이상향인 에덴을 믿지만, 그것은 만화책 속의 허구일 뿐이다. 대체 이 싸움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심지어 언젠가 배를 사서 함께 떠나려 했던 동료이자 스승인 찰스까지 적들의 최종병기인 X-24에게 희생된다. 이쯤 되면 관객 역시 질문할 수밖에 없다. 대체 이 영화는 이 싸움의 끝에, 로건이 경험하는 나락의 끝에 무엇을 두고 싶은 것인가. 이것은 혹 R등급으로 구현한 불행의 포르노그래피는 아닌가. 과연 그 끝에, 로건이 찾던 희망의 해는 떠오르는가.

앞서 신의 악취미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정말 악취미인 건, 그것이 또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정작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로건은 하지만 이 목숨을 건 싸움 안에서 삶의 이유를 발견한다. 그것은 그와 찰스가 시골 가정에서 받은 환대처럼 따뜻한 가정의 품도 아니고, 돌연변이의 에덴도 아니며, 썬시커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인용된 [셰인]에서처럼, 피의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은 무법자에게 허락된 건 빛이 어스름한 황혼에 뒷모습을 남기며 떠나는 것뿐이다. 그를 위한 해는 뜨지 않는다. 단지 새로 뜨는 해와 함께 뒤에 남은 사람들에겐 더 나은 삶이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로건이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로라에게 어느 정도의 부성애를 느꼈는지는 쉽게 알 수 없지만, 그는 로라에게 놈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선 안 된다고 말해준다. 너는 생존이 아닌 삶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 그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X-24를 포함한 용병 집단과 한 번 더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 끝에서 로건은 죽고 아이들은 남는다. 이것은 비극의 해피엔딩이다. 그가 그토록 찾던 삶의 이유가 죽음으로서 남겨졌다. 이것은 영광 없는 영웅적 행위다. 아니, 영광이 없는 자리이기에, 오직 살아남은 몇 명의 아이만이 기억하는 죽음이기에 그 영웅적 고결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슈퍼히어로의 관습과 역할을 가장 철저히 부정했던 한 인간이 가장 영웅적인 순간을 남겼다. 정말이지, 신의 악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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