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본색]과 [인생술집], 솔직함은 면죄부가 아니다

2017.03.16

채널A [아빠본색]은 제목 그대로다. 아빠들이 나오고, 본색을 드러낸다. 독설가인 김구라는 아들인 동현과의 오랜 유대로 맺어진 허물없는 친분과 애정을 과시하고, 육아와 가사에 꽤 열심인 주영훈은 어느 정도 큰 첫째보단 아직 어린 둘째에게 좀 더 집중하고 웃어주는 모습을 보이며, 아내와 나이 차가 꽤 많은 이한위는 아내의 애교에 무덤덤한 일상을 공개한다. 자잘한 희비가 엇갈리는 리얼리티 쇼의 흔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식을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아빠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고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에게서 사회적 자아 뒷면에 숨겨진 썩 보고 싶지 않은 본색까지 끄집어내는 듯하다.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2월 1일 방영분에서 주영훈은 아내 이윤미의 장점으로 남자들의 세계를 이해해주는 것을 꼽았다. 그가 말한 남자들의 세계는 “파트너(여성들) 나오는 술집”에서 남자들끼리 노는 것이다. 아내가 용인해준다는 것이 여성과의 스킨십을 돈으로 구매하는 행위의 도덕적 흠결을 가려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함께 출연한 배기성과 윤정수는 이윤미의 ‘배려심’에 대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남자가 본색을 드러냈다.

역시 솔직한 토크를 강조하는 tvN [인생술집]은 솔직함의 망령에 사로잡힌 또 다른 사례다. 근본적으로 [인생술집]의 포맷은 술에 어느 정도 취해야 숨겨둔 본심이 나온다는 오래된 명제에 기대고 있다. 최근의 새내기 특집에서 출연자들의 술에 얽힌 에피소드와 개인기를 만드는 어려움에 대해 들으며 MC 신동엽은 “솔직하게 얘기해주니까 재밌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게스트들에게 솔직함을 강박적으로 요구하는 MC들이 환호하는 것은 결국 성에 대한 솔직함이 드러날 때뿐이다. 배우 윤진서가 서핑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에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기보단 서핑하러 간 곳에 멋진 남자가 많다는 고백을 이끌어내고서야 MC들은 비로소 의미 있는 발언이 나왔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19금 토크쇼의 수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술을 마셔서라도 경계를 풀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중에 정작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켜야 할 예의나 정치적 올바름이 부차적이거나 거추장스러운 게 된다는 것이다. 신동엽은 게스트로 나온 양요섭에게 ‘몽정돌’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양요섭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언제나 경계선에 서서 아슬아슬하면서도 재밌는 성인 농담을 하던 신동엽치고는 너무 직설적이고 무례한 말이었다. 같은 날 출연한 유준상이 아내와 ‘복종의 날’을 만들어 논다는 말에 MC 김준현은 미래의 아내가 바니걸 코스튬 플레이를 해주면 좋겠다는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각각의 성적 판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를 미래의 동반자에게 투영하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 위험하고 실질적인 해악이 될 수 있는지 [인생술집]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 프로그램의 모습들이 JTBC [아는 형님]으로 대표되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희롱하며 낄낄대는 ‘남초 예능’의 범주에 속한다는 건 자명하다. 다만 [아는 형님]이 캐릭터 쇼의 외피로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정당화한다면, 두 프로그램은 솔직함을 미덕 삼아 출연자들의 발언을 여과 없이 노출한다. 즉 전자가 재밌자고 하는데 뭐 어때, 라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내가 그렇게 산다는데 뭐 어때, 라는 입장이다. 그 안에서 [아빠본색] 출연자들은 ‘파트너 나오는 술집’에 가는 걸 남자들의 세계로 정당화하거나(주영훈), 아내의 애교에 대해 “역겨울 정도로 애교가 많다”고 표현한다(이한위). 고정 출연자는 아니지만 주영훈에게 놀러 왔던 배기성은 과거 주영훈이 곡을 준 사연을 이야기하며 하나는 남자답고 하나는 “계집애 같은 거”라고도 한다. 솔직한 리얼 라이프라는 전제 아래 솔직한 무례함, 솔직한 아무 말, 솔직한 저열함은 그대로 전파를 탄다. 앞서 주영훈의 술집 발언에서 [아빠본색]은 이윤미의 배려를 칭찬하듯 “오올”이라는 방청객 효과음(심지어 여성들의)을 넣었다. 자신들이 찍어놓은 누군가의 삶에 도덕적인 모니터링을 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아슬아슬한 탁재훈은 [인생술집]에서 라붐 멤버 솔빈의 여권 사진을 보고 놀리며 “베트남에서 똑같은 여자 봤어”라고 말했다. 다분히 인종차별의 혐의가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인생술집] 역시 각자의 경계심이 풀리고 다른 토크쇼에서 들을 수 없는 코멘트가 나오면 그걸로 만족이다.

얼마나 솔직한가, 얼마나 진심인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가. 약 10여 년 전 예능을 지배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 이후 중요하게 취급된 ‘리얼함’이라는 모호한 덕목은 리얼리티 쇼인 [아빠본색]과 토크쇼인 [인생술집]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노골적이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 없이 강조된다. 대체 시청자가 어떤 이들이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바닥을 왜 보아야 하는가. 용기 있게 과오를 고백하면 격려받을 일이 되는 걸까. [인생술집]에서 아이가 울 때 자는 척하다가 아내에게 들켰다는 배우 박성웅의 사연은 남자들끼리 하하호호 공감하고 떠들 일이 아니며, 소위 남자들의 세계라는 것을 인정해줘 좋다던 주영훈이, 원래 많이 놀아본 아빠들이 딸에게 보수적이 된다고 말하는 것을 아빠의 긍정적인 본색으로 봐줄 수도 없다. 솔직함으로 그 외의 것을 퉁치는 분위기에서 깊이 있는 사고와 조심스러운 배려, 정련된 말을 보기란 더더욱 어려워진다. 재치와 차별화된 아무 말 사이의 경계도 무너진다. 그 끝은 일종의 밀실 살인극 엔딩처럼 보인다. 모두가 사라지고, 오직 솔직함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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