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먹고 기도하고 SF를 보라

2017.03.17
몇 년 전의 일이다. 같이 밥을 먹기로 한 친구가 약속 시간이 넘었는데도 만나기로 한 장소에 오지를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야 평생 해온 일이고 앞으로도 할 일이니까 뭐 불쾌할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부터가 악질적인 지각상습범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뒤늦게 온 친구는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이것을 준비하느라 늦었다며 선물 하나를 건넸다. 그 선물은 바로 내 소설을 직접 낭독한 녹음파일이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특히 더 작가가 되길 잘했다고 느낀 하루였다.

이 정도면 제법 훈훈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이런 경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로맨틱한 일화가 담긴 SF소설이 하나 있다. 김보영 작가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가 바로 그 작품이다. 이 책은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준비하던 남자가 평소 소설을 좋아하던 연인을 위해 청혼을 위한 낭독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어떤 작품을 낭독할까 고민하던 중 아예 연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김보영 작가에게 프러포즈를 위한, 연인만을 위한 소설을 청탁해 나온 작품이다. 덧붙여 청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우주선의 광속항행이 가능해진 미래, 성간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신랑이 알파센타우리로 떠났던 예비 신부를 기다리는 이야기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우주선 안팎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우주선을 타고 돌아올 예비신부와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있고 싶다는 일념에 목적지 없는 두 달간의 항해를 떠난다. 하지만 몇 가지 사건과 함께 이 둘의 만남은 기약 없이 멀어지고, 상대방이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를 편지를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로맨스에서는 흔히 주인공들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설정하고는 한다.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장벽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에도 걸쳐 놓여 있다. 정말이지 훌륭한 로맨스고, 아름다운 SF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SF작가들은 멍청할 정도로 로맨틱한 부분이 있다.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여기서 강조하고픈 부분은 로맨틱이 아니라 멍청함이다. 하늘의 별을 따다 주겠다고 하면 원리는 같으니 소규모의 핵융합으로 수소폭탄을 터뜨리고, 몇백 년이든 너를 기다릴 수 있다고 하면 인공동면장치를 만들거나 아광속의 속도로 우주를 떠돌며 시간을 보낸다. 도무지 비유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맹에 눈치라고는 없는 멍청한 인간들이다. 그리고 그래서 좀 귀엽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말이다.

하지만 SF는 원래부터가 그렇다. SF에서 핵심적인 테마 중 하나는 바로 앎이고, 앎은 질문에서 출발하고 질문은 의문에서 비롯되며 삶에 있어 최고로 골칫거리인 의문점은 언제나 당신이었다. 내가 아닌 바로 당신이 누구이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당신과 만나게 된 이유는 어째서이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지. 이 질문에 SF는 가장 지적이면서도 가장 멍청한 방식으로 답해왔다. 이렇게 당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사랑 외에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SF를 읽는 것은 누군가를 두근거리면서 기다리고 깜짝 놀랄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 그러니 여러분. 먹고 기도하고 SF를 보자. 우리는 모두 아직 만나지 못한, 혹은 어쩌면 다시 만나야 할 당신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와 그녀의 책장' 코너는 dcdc 작가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dcdc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작가. 장편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단편집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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