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주변에서 다 나를 보고 복 받았다고 부러워한다.”

2017.03.20
‘71세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 부제는 ‘인생은 아름다워’다. 손녀와 단둘이 떠난 해외여행, 초콜릿 만들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먹기, 카약 타기 등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의 대부분은 그가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다. “염병”이라고 구시렁대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할머니의 얼굴은 세상을 처음 만난 사람처럼 빛난다. 손녀 김유라 씨는 집과 식당이 전부였던 할머니에게 ‘일상의 즐거움’을 선물했고, 덕분에 71세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은 장밋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호주 여행 영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여행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김유라: 어느 날 할머니가 치매에 걸릴까 봐 두렵다고 말씀하시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 자매분들이 모두 치매에 걸리신 터라 병원에서 조심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순간 할머니와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사유로 휴가 신청을 냈더니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연말에 할머니와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박막례: 나는 미쳤냐고 그랬지. 세상에 엄마도 아니고 할머니가 아플까 봐 직장까지 그만두고 오는 손녀가 어디 있나.
김유라: 할머니는 펄쩍 뛰셨지만, 이미 그만둔 걸 어쩌겠나. 떠나야지. (웃음) 다들 할머니 모시고 여행가는 게 힘들지 않았냐고 묻지만 함께 있으면 재미있기만 하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역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박막례: 호주 사람들이 참말로 좋더라. 도로 한복판에서 사진을 찍는데 웬 할아버지가 같이 찍자고 하지를 않나. (웃음) 그런데 스노클링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한참 허우적거리다가 누가 건져줘서 뭍에 올라오니까 코에서 물이 줄줄 나오더라. 그러고 있는데 유라가 또 헬멧 다이빙인지 뭔지를 하러 들어가자는 거다. 처음에는 성질이 팍 나더라고. 그래서 “나 죽으면 네가 보험금이나 타 먹어라”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별천지가 없더라. 진짜 좋았다.

할머니와 손녀가 무척 각별해 보인다. 친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김유라
: 지금은 서울에서 자취를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용인의 본가에서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식당을 하셨는데 같은 건물 위층이 우리 집이다. 부모님은 일하느라 늦게 돌아오시니까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안 가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할머니랑 같이 TV도 보고 이야기하면서 노는 게 너무 좋았다.
박막례: 우리 애들이 워낙 착하다. 다른 집 애들은 TV도 자기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던데 우리 유라는 꼭 “할머니 뭐 보고 싶어?”라고 물어봐준다. 내가 표현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그렇지 속으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김유: 할머니가 그런 사소한 걸 마음에 담아두시는지 전혀 몰랐다. (웃음)

여행 영상 이후 본격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게 됐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김유라
: 전공이 ‘방송연예과’라서 연기를 공부했는데 개인적으로 영상 만드는 걸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독학으로 작품을 만들어 영상 공모전, 단편영화제 등에 꾸준히 참가해왔다. 언젠가 유튜브에 내 채널을 만들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차에 호주 여행 영상을 올렸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우리 할머니’라는 진짜 좋은 콘텐츠가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몰라봤던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은 치매 예방이다. 이를 위해 할머니와 지속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마음먹었고, 이 과정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박막례: 유라가 “할머니, 사람들이 호주 여행 영상을 너무 좋아해”라고 하는데 이해가 잘 안 됐다. 넘의 사진을 뭣하러 봐? 그리고 왜 그걸 좋아한대? 그랬더니 유라가 댓글을 죽 읽어줬다. 어저께는 치과를 갔는데 의사가 사진을 찍자고 따라 나오더라. (웃음) 식당에 온 젊은 손님들이 “할머니, 인스타그램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인사해줄 때도 있어서 신기하다.

할머니가 인스타그램을 직접 하시는 것 같던데.
박막례
: 친구들이 유라가 나를 닮은 것 같다고 하더라. 내가 사진이나 동영상 찍는 것을 좋아하거든. 계모임에서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싶은데 내가 잘 모르니까 유라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처음에는 하나 올리는 데 두 시간씩 걸렸는데, 하다 보니까 재미있더라. 요즘 이놈(인스타그램) 때문에 잠을 못 잔다.
김유라: 할머니 또래의 분들께 인스타그램을 권하고 싶다. 삶의 활력소가 될 뿐만 아니라 치매 예방에도 효과적일 것 같다.

익숙한 주제를 다룰 때가 많은데, 화자가 ‘할머니’기 때문에 독특한 매력이 있다.
김유라
: 맞다. 사실 이 채널에서 특별한 걸 하지는 않는다. 데일리 메이크업, 가방 공개 등은 다른 유튜버들이 많이 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그걸 할머니가 했을 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약간 비트는 듯한 재미가 생기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가방에서 병따개나 과도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박막례: 지금도 가방에 칼이 들어 있다. (웃음) 재작년에 일본 여행을 가려는데 공항에서 가방 검사를 받다가 죄다 뺏긴 적이 있다. “할머니, 칼은 왜 들고 다니세요” 하던데 뭣하러 들고 다니긴, 과일 까먹으려 그러지. 친구들이 나더러 천생 여자라고 한다.
김유라: 댓글로 ‘액체괴물 만들기’를 요청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일단 내가 잘 모르는 것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할머니도 불편할 테니까. 뭔가를 의식하고 만들기보다 내가 찍고 싶고, 할머니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한다.

특히 ‘데일리 메이크업 튜토리얼’이 화제가 됐다.
김유라
: 그 영상을 올리고 이틀 만에 구독자 수가 1800명에서 13만 명으로 늘어났다. 사실 그 주제는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거다. 뷰티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고, 그들이 하는 행동이나 연출, 자막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만들었는데 꽤 비슷하게 나오더라. 다른 영상에 비해 ‘각 잡고 찍은’ 느낌이라 그런지 외주 촬영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거실에서 전지를 붙여놓고 찍었다(웃음). 모든 영상의 기획, 촬영, 편집은 모두 나 혼자 한다.
박막례: 사람들이 나한테도 누가 찍는 거냐고 물어보더라. 우리 손녀가 다 했다고 하면 하나같이 전문가 같다고 칭찬한다.
김유라: 워낙 영상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화이트데이 다음 날 올린 ‘꺼내 먹어요’ 커버 영상은 딩고의 ‘세로 라이브’를 본떠서 만든 거다. 할머니를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 만든 일종의 팬서비스였기 때문에 그런 형태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 재미있는 영상 속에서 손녀나 할머니가 품고 있는 애틋한 감정이 드러날 때가 있다.
김유라: 사실 촬영할 때마다 꼭 한 번씩 할머니가 짠해지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 ‘파스타 첫 경험’을 찍을 때도 그랬다. 나는 질리도록 먹었던 음식인데 할머니는 이런 걸 사 먹을 수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시니까.
박막례: 그런 음식은 드라마에서만 먹는 건 줄 알았지. (웃음) 사실 내가 밥장사를 하다 보니 애들이 외식을 하자고 하면 혼쭐을 내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나 싶어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거다. ‘초콜릿 만들기’를 할 때도 초콜릿이 그렇게 단추 같은 걸 녹여서 만드는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봤다.
김유라: ‘꺼내 먹어요’ 영상을 찍을 때도 할머니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시는데 박자를 못 맞추는 게 너무 슬펐다. 머리로는 잘 하고 싶은데 몸이 마음대로 안 되어서 그렇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할머니는 얼마나 답답할까, 또 나도 할머니가 되면 저렇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유튜브를 하며 처음으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 영상들은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
박막례
: 남편 없이 삼남매를 키우며 안 해본 일 없이 어렵게 살았다. 차비라도 아껴서 아이들에게 주려고 매일 반포동에서 사당동까지 걸어서 일을 나갔다. 용인에서 식당을 연 지 올해로 딱 42년이 됐는데 처음에는 난방도 안 되는 식당 옆 창고에서 잠을 자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이 나이까지 살았더니 객지에서 나름대로 자리도 잡고, 나를 위해주는 손녀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주변에서는 다 나를 보고 복 받았다고 부러워한다.
김유라: 아직도 기억나는 게 테이블이 네 개뿐인, 초가집 같았던 할머니의 첫 식당이다. 그렇게 고생하신 걸 너무 잘 아니까 내게는 할머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여행 협찬이 들어온다면, 상업적이라고 비난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갈 거다. (웃음) 이걸 하면서 느낀 점은 할머니가 나랑, 아니 우리랑 똑같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머니도 좋아한다는 뜻이다. 할머니도 나처럼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싶지만 식당일을 해야 하니까 안 했던 거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아프니까 못 갔을 뿐이다. 욕심을 내자면 그걸 다른 분들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것들을 함께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영상을 보고 오랜만에 할머니나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거나, 처음으로 함께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는 댓글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다.
박막례: 고향 친구가 많이 아픈데 내가 자기 보약이라고 한다. 잠을 못 자고 있으니까 아들이 내 영상을 틀어줬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나랑 둘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아픈 것도 잊게 된다더라. 그 친구에게도 고맙고, 이걸 봐주시는 분들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맙다. 나이를 먹어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유라
: 앞으로도 할머니와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할 거니까, 그냥 즐기셨으면 좋겠다. 나는 방송연예과를 나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에게 댓글을 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성의 아닌가. 사람들이 할머니 꽃길만 걸으라고 하시는데 그게 딱 맞는 말 같다. 이제 고생길은 끝났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내 걱정도 좀 하지 말고 즐기셨으면 한다.
박막례나는 살 만큼 살아서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지만, 혹시 내가 잘못해서 유라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이 된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 걱정을 안 하겠는가. 그래도 아들딸도 아닌 손녀가 나를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이 기특하고 고맙다.
김유라: 할머니를 보면서 인생이 이렇게 한 번에 바뀔 수 있구나 싶어 신기할 때가 있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찾아주시고, 생각지도 못한 기회들이 생겨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지금처럼 할머니가 계속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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