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TV │① 벚꽃 대선이라는 엔터테인먼트

2017.03.21

“너는 대통령 후보라면서 아무 데도 안 나오니?” 지난 3월 9일 방영한 JTBC [썰전]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방송에서 잘 불러주지 않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의당 박원석 전 국회의원은 당일 SNS를 통해 “어렵게 출연 성사”시켰다고도 말했다. 소수 진보정당의 후보로서 방송 출연 여부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만큼 유력 대선주자들의 미디어 노출은 그 어느 대선 때보다 잦다. 국정농단 정국부터 시청률이 급상승한 [썰전]은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을 비롯한 이재명, 안희정 등 더불어민주당 경선 주자들과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그리고 위의 심상정까지 총 6명과의 대담 혹은 토크쇼를 진행했다. SBS는 위에서 심상정을 뺀 다섯을 대상으로 [대선주자 국민면접]을 진행했으며,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뷰어인 손석희 역시 JTBC [뉴스룸]을 통해 대선주자 릴레이 대담을 이어갔다. 좀 더 자신을 어필할 필요가 있는 안희정, 이재명, 심상정은 버스킹 강연 프로그램 JTBC [말하는대로]에도 나왔다. 탄핵 가능성에 비례해 높아진 소위 ‘벚꽃 대선’의 가능성은 안 그래도 중차대한 대선의 이벤트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켰다. 후보들은 어느 때보다 큰 관심 속에서 미디어에 비춰질 수 있었고, 미디어 역시 가장 핫한 이슈를 놓칠 리 없었다. 흥행은 두 주체 모두에게 중요하다.

정치인의 TV 출연과 자기 홍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일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안철수가 단일화 이전에 벌인 TV 토론이나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3명 후보의 토론회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다. 달라진 건, 메시지의 구성 방식이다. 후보의 공약 실현 가능성과 철학을 가늠하는 토론회에 웃음이 낄 자리는 없었다. 반대로 박근혜와 문재인은 예능인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지만 해당 방송에서 ‘수첩공주’ 별명에 대한 박근혜의 미진한 변명에 대해 MC들이 날을 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썰전]에 출연한 문재인은 법대 후배인 전원책의 노안을 소재로 슬쩍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군 복무 기간 단축처럼 논쟁적인 공약에 대해 차분히 해명을 하기도 한다. 단순히 정치 영역도 있고 예능도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는 이 둘은 이제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은 재치 있게 MC에게 농담을 건네는 것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순발력과 여유로움을 읽어내고, 민감한 정치적 질문에 대해 합리적이고 깔끔한 답변을 하는 것에서 토크의 재미를 느낀다. [말하는대로]에 나온 안희정은 ‘헬조선’에 대한 위로와 희망을 제시해 감동을 주는 동시에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지난 2012년부터 발아해 2013년 [썰전]의 등장으로 본격화된 정치의 예능화, 예능의 정치화는 이번 대선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캐릭터 쇼로 만들고 있다. 그 안에서 후보들은 자신의 철학과 공약과 화법을 총체화한 캐릭터를 최대한 매력적이고 변별적인 형태로 시청자에게 제시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대선후보의 TV 출연을 제한하는 규정을 [썰전]이나 채널A [외부자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기로 한 건 그래서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이다. 해당 프로그램들의 공적 역할이 인정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썰전]과 [외부자들] 패널의 농담 따먹기까지 시사의 영역으로 인정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방해가 되거나 정치적 관점을 왜곡하는 요소로 보지 않았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작지 않은 변화지만 대선 정국에선 더 큰 변화의 전주가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대세’인 문재인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후보에게 이들 예능형 시사 프로그램은 정치 고관심층 너머의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와 개인적 매력 모두를 어필할 최적의 자리다. 심상정은 이미 [썰전]에서 재벌 개혁을 비롯한 자신의 중요한 소신을 마음껏 밝히면서도 과거의 투사적인 이미지 대신 ‘심블리’로서 어느 때보다 대중 친화적인 진보 정치인의 상을 디자인했다. 해당 방송은 대선후보 시리즈 중 문재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탄핵 정국으로 그 어느 때보다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진 환경에서, 대선이 정권 심판이나 진보 대 보수 대결 프레임이 아닌 좀 더 일상적인 담론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진일보한 정치의 일상화일까. 오랜 시간 만연했던 정치 혐오, 정치인 혐오를 넘었다는 점에서, 정치하는 놈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정서를 넘어 각 후보의 정체성과 일관성에 대한 검증을 하나의 유희로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러할 것이다. 물론 우려되는 요소는 있다. 이 느슨한 시사 엔터테인먼트는 정치적 공론장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 제대로 된 공론장은 적합한 쟁점을 여과시켜 사회에 확산함으로써 찬성과 반대 논리가 자유롭게 개진되는 장소다. 여기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타협이나 합의가 아닌, 찬성과 반대 의견을 얼마나 성실하고 첨예하게 밀고 나가느냐다. JTBC에서의 신년 토론회에서 전원책과 얼굴을 붉혔던 이재명이 [썰전]에서 화해 무드를 조성한 것이 재밌고 보기에도 좋았지만 둘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과 논리를 재차 선명하게 확인할 기회는 놓쳐버렸다. [썰전]의 경우 하던 대로 했다 하더라도, 대선주자를 검증하겠다며 해당 분야 전문가를 아무도 섭외하지 않았던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할 지상파가 어설프게 정치 엔터테인먼트를 따라 할 때 나온 어중간한 결과물이었다. [뉴스룸]의 손석희에 대해 심상정은 “쥐 잡듯 잡는”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러한 타협 없는 공론장이 굳건히 자리할 때 일상적 정치 담론의 영역도 이미지 정치로 왜곡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남은 50여 일의 시간 동안 미디어는 처음 맞는 ‘벚꽃 대선’의 희망찬 분위기를 어떻게 즐거운 이벤트와 정치적 올바름의 장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간만에 설레는 이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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