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모, ‘일리네어 키드’의 등장

2017.03.29
마에스트로’는 창모의 대표곡이다. 작년 7월에 발매한 앨범 [돈 벌 시간 2]에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최근 음원차트 역주행의 주인공이 됐다. 창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마에스트로’의 멜론 30위 인증샷을 올리며 이 사실을 자축했다. 8개월여 만의 일이다. 물론 윤종신의 말처럼 ‘모든 음악은 서서히 인기를 얻어 순위 역주행을 해야 정상’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발매일에 잠깐 반짝이고 영원히 차트에서 자취를 감추는 노래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때문에 어떤 노래가 역주행을 하면 모두가 신기하게 여기고 그 이유를 궁금해 한다.

‘마에스트로’의 역주행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창모가 작년 말에 (아주 잠깐) 무한도전에 출연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네이버 지식인의 한 질문과 답변은 확실히 흥미롭다. “창모가 왜 갑자기 유명해진 거예요?” “요즘 공식은 ‘힙합=돈=도끼’일 정도로 일리네어 레코드의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일리네어에서 산하 레이블로 앰비션 뮤직을 만들었고 그 멤버로 창모, 김효은, 해쉬스완이 당첨되었습니다. 그런데 김효은과 해쉬스완은 [쇼 미 더 머니]를 통해 이름을 알렸지만 대체 창모는 누구냐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죠. 사람들은 창모가 누군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마에스트로’를 필두로 그가 만든 노래들이 기대 이상으로 좋기에 급속도로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마에스트로’의 역주행 이유를 세밀하게 손에 쥐어주는 답변은 아니다.  사실 ‘정확한’ 답변이란 게 있을 리 없다. 복합적인 방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도끼가 이끄는 일리네어의 존재는 아마도 그중 가장 강력한 방증일 것이다. 창모의 뒤에 일리네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 말이다. AOMG가 후디의 인지도를 단숨에 폭발적으로 늘렸듯 사람들은 창모가 일리네어와 관련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노래를 들어본다. 실제로 일리네어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원아람 씨는 이렇게 말한다. “앰비션 뮤직 소속 아티스트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일리네어의 존재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일리네어가 인정했으니 일단 믿고 들어보자는 긍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먼저 유명해졌거나 이미 잘 나가는 존재가 아직 덜 알려진 존재를 ‘끌어주는’ 모습은 낯선 광경은 아니다. 어떤 분야에도 이런 사례는 종종 있다. 하지만 일리네어와 창모(앰비션 뮤직)의 관계는 단순히 이런 식으로만 볼 수는 없다. 대신에 이들의 관계는 일종의 ‘상징자본 상속’에 가깝다. 한국에서 힙합은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할 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타협 없는 힙합을 고집하며 결국은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낸 한국 최초의 (진정한) 랩 스타, 또 힙합이 지닌 고유한 태도와 멋을 고수하면서도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존재라는 일리네어의 상징자본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해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는 삶'으로 통한다. 모든 젊은이의 꿈인.

사실 창모는 앰비션 뮤직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미 일리네어의 상징자본을 혼자 이어받고 있었다. 예를 들어 데뷔 시절부터 그가 줄곧 했던 말 ‘결국엔 유명해진다’는 흡사 빅 션의 앨범 타이틀 [Finally Famous]의 변주 같았다. 빅 션이 카니에 웨스트의 레이블에 들어간 후 발표한 데뷔 앨범의 이름을 ‘마침내 유명해졌다’로 정했다면, 창모는 자신의 꿈을 미리 주문으로 외우고 있던 셈이다. ‘돈 벌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인터뷰 파인더’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물론 앰비션 뮤직에 들어가기 전이다. “일리네어 이전만 해도 돈 자랑은 한국에서는 금기시 됐잖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돈 얘기하면 속물처럼 보였는데, 저는 ‘돈 벌어’를 외치면서 ‘아직 벌지는 못하지만 버는 모습을 보여줄게. 너도 같이 벌 수 있어. 너희가 말하고 싶어 하던 것 내가 대신 말해주고 방법을 보여줄게. 따라와!’ 이걸 함축해서 외치는 거죠.”

창모뿐이 아니다. 김효은과 해시스완도 마찬가지다. 해시스완이 말한다. “내 야망의 끝/ 그건 내 손주도 모르는 거지 가난의 뜻” 앰비션 뮤직 소속은 아니지만 도끼와 관련 있는 굿 라이프 크루 소속의 수퍼비와 면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Meet <[쇼 미 더 머니 5]가 끝난 후 이들이 발표한 앨범을 들어보자. 이들에게 돈은 ‘돈을 조종할 수 있을 만큼 벌어야 하는’ 것이다. 또 이들은 ‘지금 이뤄낸 성공은 예정된 것일 뿐, 앞으로 더 큰 성공을 이뤄야 한다’고 외친다. 즉, 일리네어가 한국에서 최초로 이뤄낸 것들이 상징자본이 되어 이 다섯 명에게 전수되고 있다. 우리는 어린 래퍼들이 일리네어의 정신적 후계자를 자처하며 ‘리틀 일리네어’가 되는 광경을 보는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션 뮤직의 첫 공연 날, 일리네어의 세 멤버가 앰비션 뮤직의 세 멤버에게 무대 위에서 ‘롤렉스’를 선물한 사건(?)은 더없이 상징적이다. 여기 천만 원짜리 시계를 줄게. 어디까지 올라가나 지켜보겠어.

중요한 점은 이것이 비단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힙합이 젊음을 뒤흔든 이유를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다. 힙합은 삶을 그대로 담는 그릇으로 보통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하마드 알리가 힙합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 힙합은 늘 삶보다 큰 것을 말해온 음악이기도 하다. 패기, 포부, 호언장담, 야망, 긍정적인 자세 같은 것 말이다. 어떤 이들에게 도끼는 단지 방송에 나온 ‘부자’ 래퍼겠지만 누군가에게 도끼는 삶의 롤모델이다. 심지어 어떨 때는 철학자다. 일리네어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팬들은 그것을 내면화하며 일리네어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아, 어쩌면 ‘일리네어 팬’보다는 ‘일리네어 키드’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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