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만의 와일드월드

미국에서 시작된 공포

2017.04.03


SKT나 KT, 혹은 LG U+가 고객들의 인터넷 브라우징 정보를 수집하고, 가장 값을 비싸게 부르는 이에게 그 정보를 팔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그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이는 통신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뿐일 것이다. 우스꽝스럽게도 미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지난 28일, 미국 하원은 작년 10월 FCC에서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을 뒤엎었다. 이 규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이 사용자의 허가 없이 온라인 활동 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규제하는 것이었다. 오바마가 아직 미국 대통령이던 때 만들어진 이 규칙은 하원에서 뒤엎어지기 전, 상원에서 이미 뒤엎어졌고, 이젠 트럼프의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하원에서 투표가 이루어진 날, 백악관이 하원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기에, 사실상 이 결정은 무난히 백악관까지 통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게 이룬 사회의 진보가 퇴행하는 모습이 답답할 것이다. ‘버지’는 상원과 하원을 통틀어 미국 의회에서 FCC의 프라이버시 룰을 뒤엎는 데 투표한 의원들을 공개했다. 총 265명의 의원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공화당이다. ‘버지’는 이들이 통신 업계로부터 얼마만큼의 돈을 받았는지도 함께 공개했다. 공화당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공화당이 내세우는 근거는 통신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AT&T, 버라이즌, 컴캐스트 같은 통신사들이 FCC의 규제를 받는 반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불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버지’에서 지적하듯,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자사의 사이트와 자신들의 광고 네트워크가 있는 곳까지만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 이력을 알 수 있을 뿐이고, 통신사들은 사용자의 모든 온라인 활동을 추적할 수 있다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어떤 사이트를 이용할지 선택하는 건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통신사 이용에는 선택의 폭이 좁다는 점도 공화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부분이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의회의 결정에 웃는 건 통신사들뿐이다. 버라이즌의 경우, 이미 2014년에 삭제할 수 없는 식별자를 이용해 모바일 사용자의 활동을 수집하다가 FCC에게 13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 통신사들은 업계의 자율적인 규제를 얘기하지만, 그게 공허한 얘기라는 것은 그들이 FCC의 규제를 없애기 위해 의원들에게 로비한 금액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통신사로부터 브라우징 히스토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버지’는 VPN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와이어드’는 도움은 될지언정 VPN이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가 https를 도입하는 것도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 https가 도입된 사이트의 경우, 사용자가 어떤 사이트를 방문했는지는 여전히 통신사에 노출되지만, 사이트 내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통신사가 알 수 없다. 하원의 결정 이후, 세계 최대의 포르노 사이트 ‘포르노허브’가 https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것은 공교롭지만,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의회의 이번 결정이 우려되는 것은, 당장의 부정적인 효과도 문제지만 이 결정을 주도한 공화당의 장기적인 계획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공화당이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을 유사 유틸리티 서비스로 분류하면서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된 것을 문제로 보고 있다고 썼다. 즉, 공화당은 향후, 오바마 시절 정해진 망 중립성 문제를 뒤엎는 것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 온라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지금의 이슈는 당장은 미국 내의 문제일 뿐 한국에 끼치는 영향이 크진 않다. 하지만 이번 일을 시작으로 망 중립성에 대한 사안으로 발전된다면, 그땐 더는 바다 건너 외국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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