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몰락│① MBC의 적폐 청산, 가능할까

2017.04.04


MBC가 지금의 JTBC 같은 위상과 신뢰도를 가지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먼 이야기도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위협을 다룬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 편은 정권의 졸속 협상에 항의하는 대규모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됐고, 2009년, 2010년 ‘시사IN’이 실시한 언론신뢰도 조사에서도 MBC는 1위를 차지했다. 그랬던 MBC의 기자들은 지난겨울 촛불집회를 취재하러 나갔을 때 시민들에게 ‘엠XX’이라는 모욕적인 비난을 받고 쫓겨나야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이명박 정권과의 친분으로 사장이 된 김재철의 부임부터 따져도 7년, 그의 전횡에 대항해 170일 파업을 펼친 이후로 잡으면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과거형이 아니다. 지난 2월, 전임 안광한 사장 체제에서 보도국을 장악하던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MBC 사장으로 부임했다. 김장겸의 MBC는 3월 13일 방영 예정이던 ‘MBC 스페셜’ ‘탄핵’ 편을 불방하고 해당 방송을 제작한 이정식 PD를 비제작부서인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발령했다. 탄핵이 가결되고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커지며 지칠 대로 지친 MBC 구성원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희망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말 그대로 희망일 뿐 지금까지도 MBC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벌인 언론 장악의 그늘 아래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장악이라고 했지만, 또한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이것은 현재의 MBC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부임한 사장들은 MBC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손에 쥐기보다는, 오히려 MBC를 파괴하고 망가뜨리는 데 주력했다. “같은 룰이라면 싸워볼 수 있는데, 그들은 룰 브레이커였다. 우리는 복싱을 하려는데 저쪽은 이종격투기로 달려드는 거다.” 보도국 소속 기자 A는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사측은 시청률이나 경영 합리화를 들어 변명하지도 않았다. 수준 미달의 보도가 이어지며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애국가 시청률로 불리는 2%대로 떨어졌다. 경영 효율성이나 합리화와도 거리가 멀다. 김재철 사장 시절부터 즉시 투입 인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외부 경력 기자들을 대거 영입해 현재 보도국은 인력이 넘쳐난다. 3월 말에도 경력 기자 10명이 더 충원되었다. 인건비를 따지면 결코 합리적 경영이라 볼 수 없다. 경력 기자들이 모두 사측의 충복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제1노조)가 전원 파업을 한다고 해도 뉴스가 만들어지고 나가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A는 보도국만 따지면 이제 파업으론 회사에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다고 본다. 장악 이전에 파괴, 파괴 이후에 장악이다.

권력 입장에선 언론 파괴든 장악이든 둘 다든 꽃놀이패다. 잘 장악하면 나팔수로 활용할 수 있고, 너덜너덜하게만 만들어도 감시와 비판, 견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독립적 언론이 상호보완적인 것처럼 그 역도 마찬가지다. 사유화된 권력과 부역하는 언론은 상호보완적이다. 지난 6, 7년간 MBC 뉴스에서 벌어진 수준 미달의 오보나 편향적인 보도(스페셜 서브 링크)는 단순히 MBC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뿐 아니라, 지난 두 정권이 얼마나 민주적 절차와 거리가 멀었는지 증명한다. 170일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을 해임시키겠노라 약속한 방송통신위원회는 말을 싹 바꿨고, 역시 비슷한 구두 합의를 했던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박근혜 역시 대선 정국이 다가오고 언론의 지원이 필요하자 침묵으로 일관했다. 집권이 유력한 여당 후보에게 암묵적인 오케이 사인을 받은 김재철이 제1노조원에게 보복성 정직과 해고를 남발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임팩트는 그만 못하지만, 막후 정치로만 따지면 현재의 김장겸 사장도 비슷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정치부장 시절 이미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를 위한 편파적 보도를 주도했던 그는 보도국장이 되자 내부의 민주방송실천위원회가 아예 보도국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보도국 앞 복도에 위원회의 보고서를 가져다 놓으면 찢어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MBC의 편파 방송과 지배 구조를 문제 삼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MBC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이 공영방송 흔들기를 그만두라고 비판한 건 그래서 전형적인 프레임 사기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 세력이 집권했던 동안 MBC와 KBS 사장을 어떻게 선임하고 그분들이 어떻게 편파적으로 방송했는지” 따져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MBC의 문제는 진보 편이냐 보수 편이냐, 여당 입장이냐 야당 입장이냐로 설명할 수 없다. 시사 교양 PD인 B에 따르면, 불방된 탄핵 다큐멘터리에 대해 김현종 당시 편성제작본부장은 처음엔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가, 부서장이 직접 가서 면담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보고받았으나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나마 불방이 미승인 때문이라고 쳐도, 이정식 PD를 비제작부서로 사실상 유배 보내는 것에는 최소한의 이유도 없다. 탄핵에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느냐는 것과는 별개로 언론의 자율성과 조직의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는 일이다. 제3노조 공동위원장인 김세의 기자와 최대현 아나운서가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문구를 든 ‘일베’ 유저 정한영 씨와 기념사진을 찍은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보수이건 진보이건 자유롭고 평등한 발언권을 가진 공론장을 전제해야 하는 언론인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갖췄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여도 된다는 것에 동조하는 건 수행적 모순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언론인이 아니라는 걸 자인한 꼴이다. 이에 대해 예전 MBC는 참여정부에 협조적이었으니(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지금 MBC의 모습도 동등하게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여 최근 대선을 앞두고 가장 자주 회자되는 적폐 청산은 MBC를 정상화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우선 정권 교체와는 별개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통과되어야 마땅하다. 지금처럼 집권 여당이 MBC 사장 선임을 거의 백 퍼센트 컨트롤할 수 있는 것보단 훨씬 MBC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말 그대로의 개선안이다. 인적 청산 역시 중요하다. 김재철 부임 이후 들어온 경력 기자는 악이고, 공채 출신은 선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성실하게 일한 사람들을 부역자로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앞서 말한 김세의 기자나 최대현 아나운서처럼 언론의 기본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이들, 구성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왜곡한 이들을 단순히 각각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B는 말한다. “제일 무서운 건 학습효과인 것 같다. 하위 구성원 의견은 무시해도 되겠구나. 임명권자에게 잘 보이면 MBC를 장악할 수 있겠구나. 그런 게 계승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김장겸 체제는 탄핵 다큐멘터리를 불방하고, 문재인의 비판에 대응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결국 다시 싸움의 문제다. 과연 비정상의 정상화를 꿈꾸며 버티던 구성원들은 이 싸움을 이겨내고 그토록 바라던 해고된 선배들의 복귀를 볼 수 있을까. 승리하고 공영방송의 봄이 올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이번만큼은 서로 같은 규칙 안에서 싸울 수 있길 기대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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