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가 하는 이야기

2017.04.05

김민희, 홍상수 스캔들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사생활이고 남의 일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미지가 생명이나 다름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깊은 계산 끝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날려버릴 만큼 어리석어 보이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 계산엔 다른 사람들이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수십 년 동안 꾸역꾸역 섭취한 수천 개의 서사예술이 준 교훈이다. 단지 그 무언가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나에겐 그건 재미없는 미스터리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다 이해하고 사는가.

이렇게 이해하고 적당히 넘어가면 좋겠지만, 스캔들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홍상수가 서사예술가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그는 얼마 전에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영화를 찍었고 그 영화는 아무리 봐도 김민희와 홍상수가 최근 겪었던 개인적인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개인사가 관객들의 세계 속으로 침범해 오는 것이다.

사전 정보 없이 본다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전 영화에도 나왔을 법한 홍상수 캐릭터들이 이전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홍상수 상황 속에서 비슷비슷한 홍상수 대화를 한다. 아, 물론 혼외 관계는 홍상수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영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척하고 이전의 홍상수 영화들을 보았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 관객이 영화평론가라면 쓰잘데기 없는 스캔들은 무시하고 작품에만 집중하는 것이 직업적 의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얼마나 분리시킬 수 있는가. 홍상수는 그러기가 쉽지 않은 예술가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홍상수 영화가 실제 캐릭터와 사건 들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위장된 세미 다큐라고 주장한다. 관객들이 그 사실을 굳이 확인하지 않은 건 정보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게 그렇게까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스캔들은 그 상황을 바꾸어놓았다. 현실 세계의 사건들은 그러고 싶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레퍼런스가 되어 앞을 막는다. 관객들은 현실 세계의 레퍼런스를 통해 이 영화를 해석한다. 창작자가 그걸 원치 않는다고 해서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더 재미있어진 건 이제 그의 이전 영화들도 이 방식으로 재해석된다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우리가 굳이 탐정질까지 해가며 캐고 싶지 않은 홍상수와 주변 사람들의 과거를 그의 전작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코드북이 된다. 하지만 이런 해독 작업을 통해 본 그의 영화들이 더 재미있거나 더 깊이 있는가?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예술가들의 삶은 늘 작품의 해독 도구가 되어왔고 홍상수의 경우도 특별히 예외는 아니다. 단지 너무 빨랐고 적나라해졌을 뿐이다. 정보가 없었다면 모를까, 있는데도 없는 척할 수는 없다. 굳이 갖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정보 때문에 일반적인 감상이었다면 가볍게 넘어갔을 수많은 것들이 부각된다. 그들 중 일부는 별 해가 없는 것들이다. 김민희 캐릭터의 “잘생긴 남자들은 다 얼굴값을 해” 같은 대사들이 그렇다. 그건 감독의 질투가 반영된 대사일 수도 있고 배우 자신의 생각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뭐?

하지만 권해효 캐릭터가 김민희 캐릭터의 불륜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짜증을 낼 때, 우린 이 억울함의 표출을 객관적으로 가만히 보고 있기가 어렵다. 불륜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쓰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도, 사생활은 사생활일 뿐이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두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막연히 불륜이란 관념에 갇힌 두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관계 때문에 생긴 구체적인 가족의 피해자를 본다. 홍상수는 이 영화에서 교묘하게 이 부분을 지워버린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무언가 어리석은 일을 했고 그 때문에 괴로움과 갈등을 겪는다. 영화는 여기에 대해 솔직하며 그 솔직함은 종종 아름답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이들의 관계 때문에 발생한 피해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드라마는 파편에 불과하다. 만약 등장했다고 해도 파편화된 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꾼의 권력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아름답고 능숙한 허구로 재창조해 세상에 전파하고 결국 역사 속에 박제할 수 있는 사람들의 특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특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이야기만을 집중적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예술은 남고, 타블로이드 기사는 증발한다. 아마 그때쯤 되면 홍상수에 대한 대중의 감정도 휘발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야기만을 들어주는 것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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