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남녀’, 교육방송이 만든 대화의 공간

2017.04.19

지난달 EBS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까칠남녀’는 젠더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토크쇼 형식을 통해 제모가 얼마나 불편한지 이야기하거나, 페미돔 사용법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며, 왜 남자들이 콘돔을 착용하지 않는가에 대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저는 사실 체외사정을 합니다”(봉만대)는 말에 “제가 의학적으로 말씀드리는데, 정자가 운동성이 없어서 그래요. 그냥 하셔도 아마 안 될 거예요”(서민)라고 하는 장면은 민감할 수도 있는 소재에 예능적인 유머까지 얹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피임사전에서는 ‘질외사정법은 피임이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서유리)는 정보 전달까지 더해진다. MC 박미선이 첫 방송에서 “PD분이 넥타이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들어와 PD가 방송소위 회의에 출석해 의견진술을 하러 가는 것을 표현하는 은어)라고 말할 만큼 파격적인 시도다.

‘까칠남녀’는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서민 교수, 전통적인 남성적 시각을 대변하는 정영진, 그 중간 입장인 봉만대 감독, 비교적 온건한 이야기를 하는 서유리, 여성 억압에 대해 강한 주장을 펴는 은하선 작가, 사회적인 맥락을 설명해주는 이현재 철학가와 손희정 여성학자가 번갈아 출연한다. MC 박미선은 정리를 하거나 기혼 여성으로서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여자 셋, 남자 셋으로 맞춘 출연자 수는 기계적 중립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패널들이 각자의 발언을 자유롭게 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돌봄에 최적화된 몸”, “자신(여성)의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부드럽게 말해줘야 한다” 등 차별이나 편견이 포함된 언행이 하나의 의견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박미선 님, MC면 중도를 지키세요”나 “정영진 출연자는 정말 피임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같은 비판이 올라오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할 수도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까칠남녀’는 바로 그 위치를 통해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았던 여성 문제들을 올려놓는다.

여성의 피임이나 남성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성적 판타지 등에 대한 문제는 미디어, 특히 지상파에서는 아예 다뤄지지조차 않은 문제다. ‘까칠남녀’의 의의는 이런 소재들을 남녀의 토론이라는 형식을 통해 올려놓은 뒤, 지금까지 공론화될 수 없었던 여성의 입장을 드러낸다. “여성이 돌봄에 최적화된 몸”이라는 발언에 대해 은하선 작가는 “여성이 요리를 잘하는데 왜 여성 셰프는 없고 요리 연구가만 있느냐”는 반박을 통해 여성이 가사노동으로서의 요리를 훨씬 더 많이 하면서도 직업적인 셰프가 되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박경인 사진 작가가 여성의 자취방을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공간으로 표현한 사진집 ‘자취방’을 낸 것에 대해서는 ‘X’의 방을 통해 상상 속의 여성의 방과 실제 여성의 방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기도 한다. ‘까칠남녀’가 남녀가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면서, 여성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박미선이 피임에 대해 “여자들은 언제나 임신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있다”면서 “결혼 전이나 후나 임신 공포는 마찬가지다. 지금 아이를 낳을 수 없거나 몸이 힘들거나 일을 해야 하는 여자들도 있다”고 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좀처럼 이야기되지 못했던 관점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정영진은 첫 방송 인터뷰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시청자분들도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고정관념이 많을 텐데, 생각을 열어두셨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봉만대 감독은 “사과를 하고 시작해야 할 거 같은데, 섹스에 대한 즐거움만 알았지 임신에 대해 불안해한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젠더 이슈는 법과 체제를 넘어 생활에 걸쳐 있는 문제들이 많고,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이 대화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상대의 입장에서 아무리 터무니 없게 보이는 말일지라도, 그 상대에게 토론을 제안할 수 있는 장이 존재하면 새로운 차원의 논의가 가능하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수많은 혐오 발언 및 행동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말로 우리에게는 대화가, 대화할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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