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멋진 인생

2017.04.21
여정의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영화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13년의 공백을 가져야 했고, 필사적으로 복귀에 성공했으며, 노년에 접어든 지금은 전형적인 ‘엄마’, ‘할머니’ 역할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사랑받고 있다. 지금 가장 독보적인 자리에 오른 한 배우의 매력을 알 수 있는 다섯 개의 순간들.

‘화녀’, “나쁜 년이죠? 그냥 뒀다간 큰일나겠죠?”
‘화녀’는 1971년부터 지금까지 윤여정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스크린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광기 어린 하녀 ‘명자’ 역을 맡아 그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신인여우상, 시체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자신의 살인죄를 집착하던 남자에게 덮어씌우고, 동반자살을 종용하다 이내 표정을 바꿔 혼자 도망가겠다며 “나쁜 년이죠? 그냥 두면 큰일나겠죠?”라고 묻는 태연자약한 얼굴은 윤여정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고, 이는 그가 50세를 넘긴 뒤 ‘바람난 가족’(2003), ‘여배우들’(2009), ‘돈의 맛’(2012) 등에서 ‘욕망하는 여자’를 연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젊은 시절 이런 이미지 때문에 미움을 받기도 했는데,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을 연기할 당시 “저기 나쁜 년 지나간다!”라는 비난을 듣거나(‘시사저널’), 날아오는 돌을 맞은 적도 있으며, 1대 ‘오란씨 걸’로 광고를 찍었지만 소비자들의 항의로 1년 만에 하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여정은 ‘화녀’의 ‘명자’에 대해 “딱히 파격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당시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적합한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머니투데이’).

‘무릎팍 도사’, “배우가 제일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예요”

2009년 12월, 영화 ‘여배우들’ 개봉을 앞두고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윤여정은 지난 인생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호들갑스러운 ‘건방진 프로필’을 들은 그는 “70년대를 이끌지도 않았고, 미녀 배우도 아니었다”고 딱 잘라 말했지만 5년여간 누린 짧은 전성기는 눈부셨고, 그래서 13년의 공백은 더 컸다.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떠났던 윤여정이 이혼 후 연기자로 복귀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단역뿐이었다. 방송 관계자들은 윤여정에게 “장희빈에 출연하셨다는데 무슨 역할을 했었냐”고 물었고, MBC ‘전원일기’에 잠깐 출연했을 때는 후배의 조언에 눈물을 뚝뚝 흘려야 했다. 윤여정은 “모두가 잘한다고 하길래 내가 정말 잘하는 줄 알았던” 70년대와는 달리 밤새 연기 연습을 했고, 이후 점차 배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날 강호동은 ‘바람난 가족’과 ‘가루지기’의 베드신을 찍은 이유를 물었고, 윤여정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려줬다. “집수리를 해야 해서 찍었어요. 배우가 제일 연기 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예요. 나는 배고파서 한 건데 남들은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예요”.

‘힐링캠프’, “나는 김민희랑 똑같이 입어”

2013년 5월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서 그는 린넨 소재의 오버사이즈 재킷에 몸에 꼭 달라붙는 화이트 셔츠, 그리고 스키니 진을 입고 등장했는데, 이것은 절친한 후배인 최화정과 세 개의 후보를 놓고 고민한 끝에 고른 착장이었다. 옷을 너무나 좋아해서 젊은 시절에는 ‘세금 낼 돈까지 모두 옷 사 입는데 썼던’ 윤여정은 노년이 된 지금도 감각적인 패션을 선보인다. 연관검색어에 ‘선글라스’, ‘안경’, ‘에코백’ 등 패션아이템이 등장할 정도. 이날 방송에서 그가 직접 밝힌 옷 잘 입는 비결은 “김민희와 똑같은 옷을 산다는 것”이었고, 공효진은 매번 윤여정을 만날 때마다 “그 옷 어디서 샀니?”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제작진은 선물로 새빨간 하이힐을 준비했는데, 윤여정은 수수한 편이었던 그날의 복장에도 멋지게 이 아이템을 소화했다.

‘GoShow’, “내가 앞서가야 하는 것 같아서”

2012년 ‘다른 나라에서’, ‘돈의 맛’으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윤여정은 SBS ‘GoShow’에 출연해 영화 후일담을 말했다. 이날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31세 연하인 김강우와의 베드신이었는데, 윤여정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배우인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털어놓았다. “내 또래 배우들은 엄마 역할만 하고 있는데, 이런 베드신이 언제 또 내게 들어올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부자 남자와 어린 여자의 베드신은 어색하지 않지만 반대는 매우 낯선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결국 “내가 앞서가야 하는 것 같아서” 촬영을 결정했다. 1971년 ‘화녀’부터 2012년 ‘돈의 맛’까지 그에게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윤여정은 2013년 ‘꽃보다 누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60살이 되어서도 인생을 몰라요.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윤여정이 독보적인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마음가짐 때문 아닐까.

‘윤식당’, “내일은 오늘보다는 낫겠지”

tvN ‘윤식당’에서 71세의 윤여정은 발리의 바닷가에서 한식당을 열었다. 김치볶음밥도 못 한다던 그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음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입을 옷을 고민하거나, 손님이 비는 시간에 얼음 잔에 담긴 화이트 와인을 홀짝거리는 등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한다. 해외의 휴양지에 가서 잠시 식당을 연다는 ‘윤식당’의 설정은 일반인이 그저 꿈만 꿀 법한 것이지만, 윤여정은 그것을 진짜 있을 법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정말로, 윤여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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