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① 이 지금, 아이유의 시간

2017.04.25
아이유는 새 앨범 ‘Palette’에서 시간을 곡들을 담아내는 구획으로 사용한다. 미래에서 온 아이유가 현재의 그를 찾아온 ‘이 지금’으로 첫 번째 칸을 채운 뒤, 초침 소리로 시작하는 ‘팔레트’는 ‘좋은 날’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기도 하는 지금의 그를 담고, 연애의 끝을 표현한 ‘이런 엔딩’, 헤어지는 그 순간의 기록인 ‘사랑이 잘’,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해 시니컬해진 ‘잼잼’까지 시간을 거슬러가는 A면을 만든다. 남은 B면의 다섯 칸은 다시 시간순으로 흐른다. 술주정을 하는 ‘Black Out’으로 시작해 ‘마침표’에서 마음속으로 감정을 정리하고, 그렇게 한 숨 들이쉰 마음으로 지금도 사랑하는 이에게 손으로 쓴 ‘밤편지’를 보내며, ‘그렇게 사랑은’에서 ‘혼자만의 사랑이라도 내 맘 하나 가득’이라며 지나간 것이 된 사랑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끝의 ‘이름에게’에서 아이유는 ‘내 앞에 선 그 아이’에게 말한다. ‘반드시 너를 찾을게’.

‘좋은 날’의 센세이션 후, 아이유는 ’너랑 나’에서 ‘네가 있던 미래에서 내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유는 ‘너랑 나’의 작사가 김이나와 함께 쓴 ‘이름에게’에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가진 아이를 찾는다. ‘춥고 모진 날’을 사는 아이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싫은 날’에서 ‘어제보다 찬 바람이 불어 이불을 끌어당겨도 더 파고든 바람이 구석구석 춥게 만들어’라던 그의 유년시절과 겹친다.  ‘이 지금’에서 미래의 아이유가 현재의 그를 찾아온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현재의 그가 ‘이름에게’에서 과거의 자신을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 ‘Palette’의 시간여행은 이별의 그때처럼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순간을 직시하여 ‘잊혀진 이름’을 되찾는 방법이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이유만이 알 것이다. 다만 자신이 프로듀싱에 참여할 수 없었던 ‘너랑 나’에서, 아이유의 이름은 뮤직비디오 속 배우 이현우처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불려야 의미를 갖는 이름이었다. 반면 ‘Palette’에서, 아이유의 이름은 그 자신이 찾아내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지난 앨범 ‘CHAT-SHIRE’의 타이틀곡 ‘스물셋’에서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라던 아이유는 ‘이 지금’에서 ‘반짝이는 건 지금’이라고 단언한다. ‘스물셋’처럼 사람들에게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중 ‘어느 쪽’이 좋은지 묻는 대신 ‘날 좋아하는 거’와 ‘날 싫어하는 거’를 그저 받아들일 만큼 전보다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쓴다. 그 점에서 ‘Palette’는 뮤지션이 대중에게 내놓은 결과물인 동시에 한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얻게 된 부산물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법을 찾는 과정서 시간 여행이나 팔레트 같은 콘셉트가 나온다. ‘CHAT-SHIRE’는 여러 소설로부터 앨범 콘셉트를 가져왔다. 반면 ‘Palette’는 아이유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앨범 사진부터 하얀 배경 앞에서 자신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팔레트’ 뮤직비디오까지, 아이유 그 자신이 콘셉트다.

‘팔레트’에 참여한 지드래곤(이하 GD)은 5년 전, 에고로 가득한 ‘One of A Kind’를 발표했다. ‘One of A Kind’ 뮤직비디오는 ‘팔레트’처럼 자신과 대중이 바라보는 GD의 모습을 펼쳐놓았다. 그가 ‘팔레트’에서 아이유에게 하는 조언은 아이유가 겪었을 법한 일을 먼저 경험한 슈퍼스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서 모든 게 어려워 잔소리에 매 서러워 꾸중만 듣던 철부지 애 (중략) 애도 어른도 아닌 나이 때 그저 나일 때’. ‘팔레트’가 GD의 ‘Coup d’eta’처럼 가사를 비주얼 이미지로 그대로 옮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를 좋아하는 거 알아 / 나를 싫어하는 거 알아’를 기어이 자막으로까지 보여주는 ‘팔레트’의 뮤직비디오는, 자신의 메시지를 모두 전달하려는 방법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유는 무대 위에서 GD의 파트를 자신이 소화하면서 GD의 가사를 이렇게 바꾼다. ‘지은아 뛰어야 돼 / 시간이 안기다려 준대 / 치열하게 일하되 틈틈이 행복도 해야 돼’ ‘CHAT-SHIRE’를 발표하던 즈음 대중의 온갖 시선의 주인공이 됐던 아이유는 어떤 시기의 순간들을 되돌아 본 뒤 스스로 행복을 찾겠다는 응원을 보낸다. 

그래서 ‘Palette’는 기술적으로 섬세한 세공에 매달린다. 이 앨범은 재즈, 포크, 발라드 등을 활용하되 장르적 특성보다 그 장르들이 아이유의 목소리에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집중한다. ‘팔레트’에서 아이유가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노래할 때와 ‘날 좋아하는 거 알아’라며 사람들에게 말할 때의 목소리를 살짝 다르게 하면, 편곡 역시 목소리만큼 변한다. 시간에 따라 감정은 변하고, 그 감정의 변화를 기록한 ‘Palette’는 그만큼 가장 정확하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 나간다. 그래서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밤편지’의 애틋한 목소리와 그 모든 감정들을 ‘너를 사랑하는 혼자만의 사랑’으로 정의내리고야 마는 ‘그렇게 사랑은’의 회한을 담은 목소리는 다르다. 그 목소리들이 과거의 순간들을 재현하고, 아이유가 담담하게 현재를 말할 때듣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의 녹음은 각각 다른 공간감을 부여한다. 시종일관 무심해보이기까지 하는 목소리를 선보이는 ‘팔레트’부터 폭발적인 절창을 오히려 다른 소리에 살짝 묻어 놓은 ‘이름에게’까지, 아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담은 칸의 갯수만큼 다른 색깔의 목소리를 담아 소화한다. 기술적으로 하나의 경지에 이른 목소리를 자신이 전하고 싶은 감정을 연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편곡과 녹음은 그 목소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데 집중한다. 아이유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원하는 만큼 표현할 수 있는 기술과 의지를 가졌다. 

이것은 ‘팔레트’가 타이틀 곡으로 선정된 것이 필연적인 결과처럼 보이는 이유다. 이 노래는 커린 베일리 레이가 여전히 좋고, 핑크보다는 보라색이 좋다는 아이유의 지극히 개인적인 호불호를 드러낸다. 거의 말하듯 혼자 부르는 목소리에서 살짝 코러스가 더해지면서 그 들뜬 분위기의 변화만을 전달하는 후렴구는 타이틀 곡으로는 밋밋하다는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렴구는 1절의  ‘날 좋아하는 거 알아’와 2절의 ‘날 싫어하는 거 알아를 거쳐 GD의 랩까지 지나면  ‘날 좋아하는 거 알아 / 날 싫어하는 거 알아’를 반복한다. 자신에 대한 호불호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과정에서 또다른 슈퍼스타의 응원을 받고,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받아들이면서 앞 부분보다 조금 더 벅찬 감정을 전달한다. 누군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은 그리 재미있는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할 수 있고, 아이유는 그 감정을 겪는 집요할 만큼 세밀하게 정리된 목소리와 편곡으로 그려낸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때의 차분한 희열. 이것은 아이유가 ‘Palette’에서 자신을 표현하며 얻은 그만의 미학이다. 아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얼굴로 노래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과격하게 대중에게 요구하는 듯 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수록 노래의 감정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는 ‘팔레트’를 타이틀로 정했고, 스트리밍 음원이 주류인 시대에 한 번 다 듣고 다시 첫 곡 ‘이 지금’을 들었을 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Palette’는 스타가 갑자기 자신만의 세계로 가겠다는 선언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런 앨범에 GD, 오혁, 김수현을 데려올 뮤지션은 없다. 아이유는 가장 개인적인 곡인 ‘팔레트’에 GD의 피처링을 활용하면서 대중이 이 노래에 흥미를 가질 더많은 입구를 만들어 놓는다. 그의 첫번째 선공개 곡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유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밤편지’였다. ‘밤편지’ 뮤직비디오는 아이유가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보다 쉽게 보여준다. 이 영상은 목조건물, 아날로그 테이프, 원고지, 뜨개질 등으로 복고적인 분위기를 묘사하지만, 정확한 시공간을 연상시킬 어떤 근거도 남겨두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유는 복고의 이미지만을 가져오면서 자신이 자연스럽게 옛스러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뒤, 차분하고 정교한 이미지의 변화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이 밤 그날’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영상 속 아이유도 직접 노래를 부르고, ‘나 우리의 입맞춤을 떠올려’라는 회상이 시작되면 배경은 낮으로 바뀌어 과거의 자신을 보여준다. 그 회상 속에서, 아이유는 점점 슬픈 감정을 표현하다 붉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변한다. 그리고 시간은 붉은 옷을 입은 채 다시 밤으로 흐른다. 아이유는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기억하던 사람의 감정을, 그리고 그 감정을 노래할 때 밀려드는 감정마저 표현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원하는 톤으로 전달한다. 이것은 마치 수많은 색깔로 구성된 팔레트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아이유는 무슨 곡을 내놓든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이 시점에서 가장 개인적인 앨범을 대중이 듣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가 기술적으로 능숙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는 물론, 일정부분 마케터의 역할까지 겸하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일관된 결과물로 실현한 결과다.  그 과정에서 음원차트를 자신의 노래로 줄세우기 하는 것도 가능하다. 뮤직비디오만큼의 감각을 구현하지 못한 SBS ‘인기가요’ 무대만이 예외다. 그 점에서 ‘Palette’는 근래 나온 가장 뜨거운 청춘 드라마다. 아티스트로서, 또는 한 사람으로서 단 한 번 올지도 모를 정점의 순간을, 아이유는 이런 앨범을 내는데 썼고, 기어이 대중이 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팔레트’ 뮤직비디오의 첫장면을 다시 보도록 하자. 여기서 아이유는 감았던 눈을 뜬다. 미래의 자신을 만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이름을 찾은 그가 눈을 뜬 순간. 이 지금, 아이유의 시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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