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오가 훌륭한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2017.04.26
혁오의 정규 앨범 ‘23’이 이 정도로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 마지막 EP ‘22’는  2년 전이고,  MBC '무한도전’의 가요제 출연도 그 직후다. 그 2년 사이 OST나 오혁 개인의 작업이 있었지만, 팀에 대한 대중적 반응을 이어가거나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씻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23’에서 혁오는 두 가지 중 무엇도 뚜렷하게 의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음악과 이야기를 골라내고, 고민하고 다듬었다. 모두가 말하듯 ‘청춘’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지만 일방적인 응원이나 위로, 불평이나 분노로 흐르지는 않는다. 청자는 저마다 자신의 청춘과 이야기를 찾을 것이다.

혁오는 스스로 ‘대중성을 의도했으나 실패’하거나 ‘여전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도의 흔적은 ‘TOMBOY’로 남았다. 이 곡은 가장 직접적으로 청춘을 호명하되, 대중의 기억과 정서 안에서는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오혁이 불렀던 ‘소녀’를 소환한다. 하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혁오다. ‘젊은 우리’로  시작하는 절정은, 그 앞에서 ‘불이 붙어 빨리 타면 안 되니까, 우리 사랑을 응원해’를 두고,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로 이어진다. 그 뜻은 모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가사쓰기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맥락은 증발하거나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노래의 형태에 어울리고 자신의 감정을 담은 언어만이 알맹이처럼 남는다. 사람은 세세한 정황에서만 감동을 얻지 않는다. 예술은 미담이 실린 카드뉴스가 아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사랑’과 ‘나이테’,  ‘찬란한 빛’을 상기하고 감동을 얻는 것은, 오혁 또한 자신의 청춘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의 세대가 자신 만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를 얻었다. 이 앨범을 소개하는 표현이기도 한 ‘송가’라는 지루한 표현은 때때로 옳다.

‘TOMBOY’를 제외한 대부분의 트랙은 그 스타일이나 취향에서 훨씬 직접적이다. 이것을 가리켜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던가, 대중성과 거리를 두는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단, 밴드 혹은 넓은 의미의 록 음악이 멸종에 가까운 국내 대중음악의 상황 만을 고려할 때 그렇다. 하지만 ‘23’은  넓은 지형에서 볼 때 더 흥미롭다. 이 앨범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제이 솜, 리틀 드래곤 같은 아티스트들이 ‘동양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한 서양 음악을 다시 서구권에 소개’하는 듯한 움직임과 방향을 함께 한다. 이들은 언어, 멜로디, 편곡 등 여러 부분에서 ‘아시안’ 이라는 정체성을 은근히 드러내지만, 근본적으로는 영미의 인디 록이라는 취향을 공유한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익숙한 틀 안에 이질적인 요소를 담고, 새로운 음악으로 주목 받는다.

이는 디지털 음원부터 유튜브까지 음악소비 플랫폼의 변화가 시기적, 지리적인 음악 취향의 구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 결과 중 하나다. 1970년대말 이후 포스트펑크가 현재 인디록에 미치는 압도적인 영향은 이제 영미권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이름은 알지만 들을 수 없는 전설의 앨범이란 없다. 오히려 거기에 아티스트의 부모에게 받은 영향, 혹은 본인이 경험한 지역색을 첨가하여 새로운 인디 록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밴드 같은 인적 구성을 요구하지 않는 힙합에서 벌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지난 24일 혁오의 앨범 발매 음감회의 기자 간담회에서 이들은 중국어를 포함해 3개 국어로 가사를 쓴 것에 대해 ‘음악이 이국적’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혁오는 “우리는 유튜브 세대다, 가보지 않아도 그 문화를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이것은 ‘23’이 어떤 앨범인지 밝히는 가장 중요한 답일 것이다. 동시에 ‘23’이 해외 음악에 비해 손색이 없다거나, 글로벌 감각에 뒤지지 않는다는 낡은 표현이 불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보다 우리는 지난 며칠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한국 출신의 인디 록 밴드가 훌륭한 정규 앨범을 만들었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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