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OCN 드라마를 챙겨 보게 됐는가

2017.05.19
이렇게까지 의식하며 챙겨 보는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 6일 결방했던 OCN ‘터널’에 대한 이야기다. 주말 밤 10시면 시작해야 할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자 무의식적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터널 결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후반부에 그려질 중요한 장면들을 집중력 있게 촬영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얻고 나니 조금 허탈해졌다. 그러고 보니 설 연휴 특선 영화 때문에 ‘보이스’가 결방됐을 때도 조금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를 본방으로 보는 의미가 점점 줄어들고 한 달에 만 원만 내면 완성도 높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마음껏 정주행할 수 있는 시대에 결방을 슬퍼하게 되다니.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사실 막상 드라마를 볼 때는 불만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80년대에서 2016년으로 타임 슬립한 광호(최진혁)는 왜 자신이 과거에서 온 형사라는 비밀을 숨길 성의조차 없는가. 지금 신분이 막내 형사인 주제에 계급 높은 형사들에게 언제까지 반말을 할 것이며 왜 주변 사람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가. 광호는 속으로 해도 될 생각을 꼭 저렇게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려야 하나. 반전이 눈에 보일 때도 많고 항상 범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너무 친절하게 드러낸다. ‘보이스’ 때는 장혁이 연기하는 무진혁의 말투가 KBS ‘추노’의 대길이와 똑같은 것에 의아해하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듯한 그의 캐릭터가 짜증난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본방송을 보지 못하면 아쉽고 뒷내용이 은근히 궁금한 이유가 작품의 압도적인 완성도는 아닐 것이다.

다만 리모컨을 멈추고 드라마에 집중하게 되는 많은 이유는,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을 능력 있는 여성이 해결하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뺏겨서다. ‘보이스’와 ‘터널’이 다루는 사건은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다. ‘터널’의 연쇄살인범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만 골라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보이스’에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갖게 된 남자가 레이프 비디오를 만들려는 에피소드까지 나왔으며, 이 모든 사건의 배경은 대한민국이다. 이런 소재를 신중하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을 때가 많지만, 현실과 분리되기 힘든 사건들을 케이블 TV 특유의 높은 수위로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신경이 쓰이게 만든다. 그리고 한 번 채널을 고정하고 나면 피해 여성들의 안전을 확인받거나 응징에 성공할 때까지 시청을 멈출 수가 없다. 이어지는 전개는 대체로 똑똑한 여성의 활약에 힘입은 권선징악적 결말이다. ‘터널’에서 결정적 순간 등장해 추리의 실마리를 던지는 것은 범죄심리학 교수 재이(이유영)의 몫이고, ‘보이스’의 권주(이하나)는 비현실적으로 좋은 청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무혁을 침착하게 대하는 대인배 같은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들은 다른 여성을 구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성이 가장 무서워할 법한 유형의 범죄를 여성이 해결하며 안도감을 주고, 멋진 여성을 볼 때 느끼는 대리만족은 덤이다. 공교롭게도 OCN 장르 드라마의 실제 타깃층 역시 “TV 시청량이 많으나 재미에 대한 기준이 높은 30대 여성”(OCN 채널 조율기 팀장)이다.

이런 콘텐츠가 일정 수준 이상의 만듦새를 보장하는 것도 OCN 드라마를 볼 만한 중요한 유인이다. 보통 장르물의 재미는 기존의 작법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에 달려 있고, ‘신의 퀴즈’, ‘뱀파이어 검사’ 등 범죄 수사극에 특화된 경험을 쌓아온 OCN은 이런 작품을 일정 수준 이상 만들 수 있는 인력을 갖고 있다. 예컨대 ‘터널’은 OCN 채널이 육성한 인재들을 적절하게 활용한 기획이다. tvN ‘갑동이’, ‘나쁜 녀석들’의 연출진으로 경험을 쌓은 후 ‘터널’로 입봉한 신용휘 감독은 “‘터널’은 작가와 감독의 뜻이 맞아 만들었다기보다는 OCN 채널과 제작사가 오랜 기간 기획해왔던 작품이다. ‘터널’로 입봉한 이은미 작가 역시 제작사가 그동안 쌓아온 내공과 인력들을 토대로 발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OCN의 사람들은 기성의 것을 적절하게 끌어와 조합하는 것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안겨준다. ‘살인의 추억’부터 tvN ‘시그널’까지 늦은 밤 시골길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여러 번 접했던 그림이지만, ‘터널’이 이를 재활용할 때 새삼스레 또 긴장하곤 했다. 가장 잘하는 것은 시원시원한 전개다. 시청자들이 이미 짐작하고 있는 내용, 예컨대 목진우(김민상)가 살인범이라거나 광호와 재이가 부녀관계라는 떡밥을 질질 끌기보다는 예상보다 빠른 타이밍에 풀어버린다. 요즘의 OCN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가진 눈치의 속도를 경험적으로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해외 드라마를 접하면서 콘텐츠에 대해 보다 까다로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OCN 드라마는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보게 만든다. 이 콘텐츠는 주말 밤 TV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공짜로 즐길 수 있고, 때로는 영화관에 가는 것보다 좋을 때도 있다. 그러니 주말 밤 집에서 OCN 드라마에 시간을 할애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터널’ 마지막 회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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