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와 로맨스│② ‘브’로맨스일까, 로맨스일까

2017.05.30
남자 연예인이 둘 이상만 있으면 쉽게 붙는 수식어, 브로맨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대중문화 키워드 중 하나로, 당장 유명 포털 검색창에 ‘브로맨스’를 치면 무려 4만 3천 건에 육박하는 기사가 뜬다. 그러나 이 단어는 남성들 간의 모든 심리적, 육체적 교감을 멋들어진 의리 선언으로 일원화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리 안에서, 모두는 안전하다. 어떤 대사를 읊어도, 어떤 스킨십을 해도 로맨스가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니까. ‘브로맨스’라는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홍보에 활용했던 세 편의 드라마, 세 편의 영화를 모았다. 대체 무엇이 로맨스이고 무엇이 브로맨스인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긴다.


tvN ‘도깨비’
홍보 문구: “불멸의 삶을 끝내기 위해 인간 신부가 필요한 도깨비, 그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기억상실증 저승사자”
“드디어 죽는 거야? 소문은 신부가 나타나면 죽는다던데.” 신부가 가슴에 박힌 칼을 뽑아주면, 도깨비 김신(공유)은 영생의 저주에서 풀려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칼을 뽑을 도깨비 신부보다 더 찜찜한 표정의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저승사자 왕여(이동욱)다. 덕수궁 돌담길 근처에서 눈이 마주친 도깨비와 저승사자는 직감적으로 서로의 정체를 알아채지만, 과거의 기억이 지워진 탓에 호연인지 악연인지 쉽게 깨닫지 못한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소소한 말다툼으로 하루를 보낸다. 어울리는 옷과 소품을 골라달라며 상대를 조르기도 한다. 하지만 비극은 결국 찾아온다. “나를 어찌해야 할까. 그자를 어찌해야 할까.” 과거의 연을 기억해낸 도깨비 김신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마찬가지로 수백 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죄책감에 휩싸인 왕여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김신을 보고 애절하게 울먹인다. “내가, 내가 너를 죽였어.”

JTBC ‘맨투맨’

홍보 문구: “계획된 작전, 계획되지 않은 팀플레이! 비공식 스파이 로맨스”

“죽든 말든 상관없는데, 일단 살려놔야지. 지금 죽으면 귀찮아지니까.” 교통사고 경위를 조사해달라는 김설우(박해진)에게 선배 요원이 “너 여운광(박성웅)하고 벌써 정들었냐?”고 묻자 날아온 답변이다. 국정원 비밀 임무를 위해 톱배우 여운광의 경호원으로 위장 취업한 김설우는 용병 출신답게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여운광을 극적으로 살려내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불편한 스캔들을 대신 정리해주기도 한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본 여운광은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우리 김 가드가 날 24시간 밀착 경호해줬으면 싶은데.” 돈도 원하는 만큼 준다. “김 가드가 원하는 만큼이 내가 원하는 만큼이야.” 24시간 경호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따라붙는다. 1. 택배 받으러 나갈 때 함께 가기 2. 대사 연습할 때 여주인공 역할 대신 해주기 3. 함께 침대에 누워 손잡고 마스크팩 하기. 주변 스태프들끼리는 이렇게 수군거린다. “잠옷도 입혀주니?”

tvN ‘시카고 타자기’

홍보 문구: “낡은 타자기에서 시작된 사랑의 기적”

“너 때문에 내 인생은 혼돈에 빠져버렸는데!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졌으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냐!” 한세주(유아인)가 타자기를 보며 소리친다. 그는 타자기 속에 사는 유령 유진오(고경표)를 찾고 있다. 앞서 유진오는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에게 찾아와 전생에 함께 독립운동 하던 기억을 소설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이 타자기에 발이 묶여 환생하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 처음에는 매몰차게 거절했지만, 갑자기 유진오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한세주는 허전함을 느낀다. 결국 그는 낡은 타자기를 보면서 애처롭게 중얼거린다. “어이, 유진오 거기 있냐?”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두 사람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암시하는 소품은 타자기가 아니라 ‘개 목줄’이다. 개에 빙의해 한세주를 몰래 따라다니던 유진오는 그를 올려다보며 슬쩍 말을 걸고, 목줄에 묶인 개는 어느새 목줄에 묶인 남자로 바뀌어 있다. 대화 내용은 능글맞은 유령과 약 오른 인간의 신경전이지만, 구도가 좀….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홍보 문구: “사건 쫓는 임금 X 임금 쫓는 신입 사관”

“이제 내 곁에서 5보 이상 떨어지지 말거라.” 예종(이선균)은 한 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신입 사관 윤이서(안재홍)를 자신의 수사 파트너로 택했다. 그는 윤이서에게 자신에게서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는 어명을 내리고, ‘오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윤이서는 “조선 제일의 왕이랑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능청스레 웃는 예종을 보며 마뜩찮은 표정을 지을 정도로 용감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왕과 신하의 관계가 으레 그렇듯, 윤이서의 반항은 오래가지 못한다. 능청스런 왕은 윤이서가 사직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삐친 척 장난을 치기도 하고, 뛰어난 카드 마술 실력으로 그를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참고로 영화 홍보 차 두 사람이 출연했던 tvN ‘택시’에서는 ‘이선균의 브로맨스’ 상대로 학창 시절에 친했던 오만석을 ‘구남친’, 안재홍을 ‘현남친’으로 소개한 바 있다.

영화 ‘공조’

홍보 문구: “한 팀이 될 수 없는 그들이 만났다”

“아, 하이고….”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는 범인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북한 형사 임철령(현빈)을 붙잡아 두려다 당혹스런 상황에 처한다. 수갑을 나눠 끼고 운전석에 타려니 스킨십이 불가피해졌기 때문. 결국 그는 임철령의 허벅지 위로 몸을 구겨 넣고, 어두컴컴한 화면에는 닿을 듯 말 듯 한 두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 좁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느라 터져 나온 불편한 신음소리는 덤이다.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강진태의 집과 차를 오가며 동고동락하다 어느새 정이 든다. 처음에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한 가지 정보라도 더 캐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제 강진태는 임철령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경찰의 태도에 울컥 성질을 낸다. “빨긴 뭘 자꾸 빨라고 그래, 걔가 쭈쭈바야?”

영화 ‘불한당’

홍보 문구: “믿음의 순간 배신은 이미 시작되었다!”

“애가 착해서 그래.” 영화의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한재호(설경구)의 시선 끝에 머무는 건 항상 조현수(임시완)다. 한재호는 잔인한 싸움을 반복하며 구치소의 왕으로 군림하지만, 조현수가 자신에게 대들 때만큼은 그저 다독이려고 애를 쓸 뿐, 절대 위협이 될 만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속한 범죄조직으로 조현수를 데려오고, 주변에서 질투할 만큼 끔찍하게 챙긴다. 사실 영화 속 건달들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무색할 정도로 그저 배신, 또 배신의 연속이다. 이런 세상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한재호가 “형, 나 못 믿어?”라고 소리치는 조현수에게는 너무도 쉽게 곁을 내준다. 이 감정은 정말, 동생에 대한 믿음뿐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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