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와 로맨스│① 그건 브로맨스가 아닙니다

2017.05.30
영화 ‘불한당’에서 한재호(설경구)와 조현수(임시완)의 관계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보인다. 두 사람은 범죄자와 경찰이라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끌린다. 재호가 타인을 절대 믿지 않으면서도 현수만은 자신의 곁에 있기를 바라고, 현수가 그에게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관계는 비극적인 연인과도 같다. 언론시사회에서 ‘불한당’의 연출자 변성현 감독 역시 “저는 이 영화를 계속해서 멜로영화라고 이야기했었다. 사실 준비하면서도 느와르보다는 멜로를 더 많이 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설경구 역시 제작보고회에서 “브로맨스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임시완이라는 배우와 사랑도 하고 질투도 했다”고 밝혔고, 재호의 친구이자 조직의 3인자 역할을 맡은 김희원은 “저는 설경구 선배를 짝사랑했던 것 같다. 브로맨스에 제가 빠지기는 좀 아쉽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브로맨스가 아니라.

변성현 감독은 한재호의 캐릭터에 대해 “‘저 양반, 남색도 하고 여색도 해’라는 게 있었다. 투자사에서 너무 그 부분을 강조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뺐다(스타뉴스)”고 말했다. 한재호가 성소수자라는 설정을 드러냈다면 캐릭터들의 관계성은 보다 명확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남자들의 브로맨스가 아닌 사랑 이야기는 당장 투자를 받을 가능성부터 낮아진다. 영화 홍보대행사 A 팀장은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밀크’처럼 동성애가 영화의 주제가 아닌 이상, 굳이 그 요소를 강조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원작 역시 ‘BL(Boys Love)’의 성격이 강하지만, 영화화되면서 이런 요소들은 아예 삭제됐다. 대신 홍보나 마케팅 과정에서 ‘브로맨스’는 보다 강조된다. ‘불한당’은 ‘설에임’이라는 커플명까지 언급하며 캐릭터의 관계를 브로맨스로 설명했고,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군신 브로맨스’, ‘보안관’은 ‘꽃아재 브로맨스’로 홍보됐다.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은 ‘보통사람’의 주연 손현주 역시 홍보 과정에서 ‘뜻밖의 브로맨스 장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 프로듀서 B는 브로맨스에 대해 “80-90년 초반 유행하던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도 ‘남성들 간의 의리 내지 사랑’을 강조했다. 경찰, 조직폭력배 등 동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이 등장하는 영화가 유행하며 나타난 장르적 특성”이라며 “영화에서 로맨스는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개나 고양이, 인공지능이 나오는 영화도 로맨스에 속한다. 브로맨스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브로맨스는 동성애와는 구분되는 의미로 사용되며, 남성 집단이 나오는 영화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각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예능 등 남성 출연자가 둘 이상 등장하는 콘텐츠에는 예외 없이 브로맨스가 등장한다. 드라마 tvN ‘시카고 타자기’, JTBC ‘맨투맨’, SBS ‘수상한 파트너’ 등에서 남성 주연들의 관계가 여성 주연의 존재감을 위협할 만큼 친밀하게 그려진다. 예능 프로그램인 tvN ‘공조7’은 ‘강제 브로맨스 배틀’을 콘셉트로 내세우기까지 한다. 남성 중심의 대중문화에서 브로맨스는 그들만의 연대를 뜻하는 말이 됐다.

이처럼 브로맨스가 대중화되면서, 동성애는 대중문화 산업에서 전보다 더욱 배제된다. 그 어느 때보다 동성애적 코드를 담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지만, 수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는 동성애라고 설명해야 할 이야기마저 브로맨스라는 카테고리에 욱여넣는다. 영화 투자사 C 과장은 “요즘은 관객들이 원톱 주연보다는 투톱 주연을 선호하고, 다양한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한다. 브로맨스는 이러한 케미스트리를 뜻하는 것일 뿐, 동성애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남자 배우들의 관계는 강조하지만, 제작사와 투자자는 그것이 결코 동성애는 아니라고 애써 강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퀴어적 코드는 아예 유머로 활용되고, 마케팅을 위한 미끼처럼 소비된다. tvN ‘도깨비’ 초반 공유와 이동욱이 아웅다웅하는 장면은 필요 이상으로 자주 노출됐고, 영화 ‘공조’에서 현빈과 유해진이 차량 안에서 본의 아니게 밀착 스킨십을 하는 장면은 성적인 은유를 담으면서도 농담의 소재로만 활용됐다. 물론 퀴어물이 아니더라도 퀴어적 코드가 등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성의 로맨스를 브로맨스라는 코드로 지우는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경우는 이제 ‘불한당’처럼 퀴어라는 설정 자체를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기만을 넘어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 대위가 영외에서 동성의 연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현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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