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만의 와일드월드

갤 가돗은 원더우먼일 수 있는가

2017.06.12

코믹스 원작에서 원더우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영화 ‘원더우먼’에서 주인공 다이애나가 고향인 데미스키라를 떠나는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는 1918년이다. 왜 설정이 바뀐 것일까? 영화의 각본가인 앨런 하인버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시대와 오늘날 사이의 유사점을 생각하며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시대와 비슷하게 민족주의가 부흥하는 오늘날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소한 일만으로도 국제적인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라고 설정을 바꾼 이유를 말했다. 실제로 영화 속 원더우먼은 각본가의 문제의식에 따라, 민족주의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존재다. 원더우먼은 무고한 민간인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것에 슬퍼하고, 그들의 죽음에 진정으로 분노한다. 데미스키라의 다이애나에게 국적은 없다.


하지만 ‘원더우먼’에서 다이애나 역을 맡은 현실의 배우, 갤 가돗은 얘기가 다르다. 갤 가돗에겐 이스라엘이라는 국적이 있다. 이 때문에 각본가의 뜻과 달리, 영화 ‘원더우먼’이 민족주의로 인해 논란이 된다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다. 레바논에서 ‘원더우먼’은 주연 배우 갤 가돗이 이스라엘인이라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6일 전쟁으로 유명한 제3차 중동전쟁이 터진 지 50주년이 되는 날 일어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와 갤 가돗의 국적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가 지적하듯, 갤 가돗은 여성이면서 이스라엘인인 동시에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갖는다. 어떤 정체성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원더우먼 역에 갤 가돗을 캐스팅한 것은 훌륭한 선택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고, 최악의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하면 원더우먼이라는 여성 슈퍼히어로 캐릭터와 맞물려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지만, 이스라엘인이라는 정체성은 특히 갤 가돗의 군 복무 경력과 맞물려 비판을 받는다.


2014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면전을 벌이는 동안 갤 가돗은 페이스북에 논란이 되는 글을 올린다. “비겁하게 여성과 아이들 뒤에 숨는 겁쟁이들인 하마스의 잔학 행위로부터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이스라엘 방위군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살롱’이 지적하듯, 갤 가돗의 글은 이스라엘에 가해진 잔학 행위들에 주목하게 했지만, 동시에 손쉽게 이스라엘이 행한 잔학 행위들은 생략해버렸다. 유엔 인권 위원회에 따르면, 이 전면전에서 1,462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영화 속 원더우먼은 전쟁 중 민간인의 사망을 슬퍼하지만, 현실 속 갤 가돗은 사망한 1,462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영화 ‘원더우먼’은 단순히 멋진 슈퍼 히어로가 나와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기만 하는 영화가 아니다. ‘원더우먼’은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비극을 보여주고, 관객이 영화로 오늘날을 투영하길 바란다. 하지만 ‘원더우먼’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주연배우인 갤 가돗이 지지하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원더우먼의 멋진 모습에 열광하면서도,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이면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영의 성공에 힘입어, 아마도 갤 가돗은 조만간 원더우먼과 동의어가 될 것이다. 하지만 ‘NPOC’가 말하듯, 갤 가돗은 어디까지나 원더우먼을 연기하는 배우일 뿐, 결코 진정한 원더우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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