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① 넷플릭스가 '옥자'로 안내한 비상구

2017.06.20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돼지 옥자와 그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아이 미자(안서현)의 이야기다. 옥자를 둘러싸고 슈퍼돼지를 통해 극도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미란도 코퍼레이션, 옥자를 앞세워 동물학대를 폭로하려는 비밀동물보호단체 ALF, 옥자를 이용해 스타로서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등 모든 인물들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현실에서 ‘옥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잘 알려진 것처럼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는 ‘옥자’에 5천만 달러 (약 57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고, 극장과 넷플릭스를 통해 동시 개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는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개봉을 보이콧했다. 반면 서울극장, 대한극장, 홍천시네마, 논산시네마 등 그동안 멀티플렉스에 밀려 관객에게 외면 받았던 극장들은 ‘옥자’를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넷플릭스는 올해 전 세계 190개국에서 총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했다. 1분기 매출은 26억 4,000만 달러고, 콘텐츠 부문에 60억 달러, 약 6조6천억 원 이상을 쓸 계획이다. 자체 제작 콘텐츠는 대부분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옥자’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다. 넷플릭스로서는 ‘옥자’를 극장에 걸지 못해도 잃을 게 없다는 의미다. 멀티플렉스가 보이콧을 하면 접근성이 떨어지는 관객들은 ‘옥자’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이콧을 하지 않으면 멀티플렉스에 ‘NETFLIX’로 시작하는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 이미 멀티플렉스들의 보이콧 소식이 알려지면서 넷플릭스는 이슈의 중심에 섰다. 그럼에도 멀티플렉스가 ‘옥자’를 보이콧하는 것은 이 사건이 그들의 수익구조를 파괴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한국에서 영화는 ‘동시상영관’ 같은 이름으로 개봉 중 유료 VOD 서비스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런 경우 영화관 티켓 가격과 비슷한 1만 원 정도의 돈을 내야 한다. 반면 넷플릭스는 한 달에 월 9,500원~14,500원의 가입비만 내면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옥자’같은 경우가 많아질수록 관객이 극장을 찾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더 나아가 개봉 기간이 끝난 후 IPTV 등에서 유료 VOD로 4,000~6000원에 파는 것도 어려워진다. 이들에게 넷플릭스는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탐욕스러운 미란도 코퍼레이션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의 멀티플렉스 소유 기업들은 대부분 투자 및 제작까지 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직접 투자 및 제작을 한 영화들을 ‘스크린 독점’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많은 스크린에 건다. 반면 어떤 영화들은 개봉 기회조차 못 잡은 채 창고에 있거나, 개봉 직후 스크린이 대거 빠지는 일도 다반사다. ‘옥자’와 넷플릭스의 등장 전까지 멀티플렉스야말로 한국 영화산업의 미란도 코퍼레이션이었다. 다만 그들보다 더 많은 돈과 전 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진 기업이 나타났을 뿐이다. 더 규모가 큰 기업이 시장 질서를 교란시켜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처럼 영화는 무조건 멀티플렉스에서 만 원 이상의 돈을 주고 봐야만 하는가, 극장과 환경이 전혀 다른 집에서 감상하는 ‘동시상영관’ 서비스에 왜 극장 티켓과 비슷한 돈을 줘야 하는가. 그리고, 왜 멀티플렉스가 상영하지 않으면 영화를 보기 힘들어야 하는가.

넷플릭스가 정말로 멀티플렉스 위주의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교란의 결과는 무엇인가. 넷플릭스는 마블 코믹스를 성인 취향으로 제작한 ‘데어데블’을 비롯한 작품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루머의 루머의 루머’ 등 다양한 연령과 상황에 있는 여성의 삶을 그리는 작품들, 인종차별을 다루는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지정 생존자’ 등을 자체 제작한다. 이 작품들은 국내 TV와 영화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주제들을 다룰 뿐만 아니라, 많은 제작비를 투자한 만큼 UHD를 지원하고, 뛰어난 촬영, 편집, 음향 등을 자랑한다. ‘옥자’는 이런 넷플릭스의 기조가 한국을 염두에 둔 콘텐츠로까지 확대됐음을 보여준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집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누군가는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추고 영화관처럼 감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도 볼 수 있다. TV대신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 여성과 소수자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발언이 힘든 사람들, 멀티플렉스에서 좀처럼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넷플릭스로 간다. 넷플릭스는 영화와 방송 시장, 그리고 콘텐츠 제작에 걸쳐 당연하게 여겨졌던 판을 흔들고 있다. 멀티플렉스에게 넷플릭스는 악당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현재만을 놓고 봤을 때 소비자에게 넷플릭스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환경에 대한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탈출구일 수도 있다.

미국은 넷플릭스가 존재하는 한국의 미래를 보여준다. 미국의 라이크만 리서치에 따르면 2017년 1분기 미국 넷플릭스 가입수가 TV가입자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미국 케이블 가입자는 4천8백만 명이지만, 넷플릭스는 5천만 명이다. “넷플릭스를 이용하기 위해 인터넷이 필요하고, 많은 케이블TV업체가 인터넷 액세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리서치그룹 모펫네이선슨의 애널리스트 로버트 피시먼은 미국에서 넷플릭스와 유료 VOD 사업자들 때문에 극장주들이 연간 36억 달러, 이익의 20%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예측했다. 게다가 미국 대형 영화 체인 시네마크와 리갈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도’로 하향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극장 상영 후 90일이 지나야 영화를 다른 방식의 포맷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유예 기간을 단축하자는 요구가 있으나 극장주협회는 반대하고 있다. 반면 유니버설과 같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메이저 스튜디오는 유예기간을 2주 정도로 줄어 부가판권의 이익을 늘리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옥자’로 촉발된 논쟁은 미국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국내 가입자 수는 아직 10만 명 미만(‘세계일보’)로 추정된다. 그러나 브라질이 한국처럼 가입자 수가 저조했을 때,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콘텐츠인 ‘나르코스’에 브라질 유명 배우 와그너 모라를 캐스팅했다. 한국에서도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이 참여하는 ‘킹덤’,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의 드라마판을 제작한다. 또한 넷플릭스는 창작자의 편집권을 보장하고, 작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넷플릭스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들은 현재 창작자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 설사 나쁜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의 멀티플렉스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현재의 영화 산업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지는 의문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세계 최고 콘텐츠로 시장의 최전선에 서는 것이 넷플릭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2017 모바일월드콩그레스 넷플릭스 CEO 기조연설)이며 주주들에게 "영화를 가장 먼저 봐야 할 사람은 제작비를 대는 우리 회원들"이니 "소비자들이 선택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 말은 이제 한국 소비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됐다. 리드 헤이스팅스의 단정대로 현 시스템이 "결국 무너질 것"(미국 테그놀러지 저널 ‘RECORD’)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래가 무엇이건, 한국 소비자에게는 지금보다 낫지 않을까. 최소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심지어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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