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② 나를 변화시킨 넷플릭스의 작품들

2017.06.20
넷플릭스에서는 아직 한국의 인기 TV 프로그램을 많이 볼 수 없다. 하지만 전 세계의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을 볼 수 있고, 특히 넷플릭스의 자체제작 콘텐츠는 한국에서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단지 넷플릭스가 독점 공개하는 콘텐츠라서가 아니다. 넷플릭스 독점 콘텐츠들은 상당수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기술적 완성도와 함께 새로운 가치관과 보다 지금 전세계 사람들이 공유해야할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새로운 변화를 겪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의 독점 콘텐츠 중 몇 작품들을 추천했다.

제시카 존스
‘제시카 존스’에 나오는 남자들이란 악당 아니면 잘해야 얼간이다. 단순한 성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시카의 숙적이자 그에게 집착하는 악당 킬그레이브의 타인 통제 능력은 가스라이팅에 대한 알레고리에 가까우며, 스티븐 로저스의 열화 버전 같은 군인 출신 금발 백인 덩치인 심슨은 제시카와 트리시를 돕겠답시고 보스 노릇을 하려다가 일만 망친다. 심지어 제시카의 마음을 연 유일한 남성이자 ‘디펜더스'의 또 다른 히어로 루크 케이지조차 제시카의 조언을 무시하고 아내의 복수를 하려고 킬그레이브에게 덤비다가 조종당해 결과적으로 제시카의 발목을 잡는다. 다시 말해 이 드라마의 남자들은 우연히 남자이면서 악당이나 얼간이가 아니라, 사회에서 소위 남자답다고 이야기되고 용인되고 긍정되는 요소들 때문에 악당 혹은 얼간이 노릇을 한다. 킬그레이브의 사기적인 능력을 차치하더라도 제시카의 싸움이 피로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이 고독한 여성 히어로의 이야기는 그래서 폭력적이고 찌질한 남성성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아마도 나를 비롯해 스스로의 선량함을 믿는 남성 조력자들은 마음속으로 ‘원더우먼’의 트레버를 그릴 테지만, 아차 하면 심슨이 될 것이다. ‘제시카 존스’는 그걸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야, 나대지 마.

글. 위근우 

‘그레이스 앤 프랭키’

노인이 된 내 모습은 어떨까? 한 번도 쉽게 상상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가 아닌 독립된 개인으로서 기록되는 노인 여성의 롤모델도 드물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노인 여성의 삶에 대한 사회적 상상도 빈곤해서일까. 그레이스와 프랭키의 낭만적인 노년기 라이프를 보면서, 나는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노년기의 행복을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70대의 노화한 몸은 수시로 삐그덕대지만, 여전히 술집 테이블에 올라가 신나게 춤추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야심 차게 사업도 추진하고, 부지런히 연애와 섹스도 할 수 있다. 친구와 함께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마룻바닥에 누워 투덜투덜 수다를 떠는 것도 추억이다. 노년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할 자식들보다는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친구와, 노화한 신체가 요구하는 크고 작은 필요를 채워줄 기술문명이야말로 진정한 노년기의 동반자라는 깨달음도 마음 한켠에 저장해둔다. 이젠 노년기에 대한 상상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나는 어떤 모습의 노인이 될지 내심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그레이스이고 프랭키이듯, 노인이 된 나도 여전히 나이겠지만.

글. 김경은

‘마스터 오브 제로’ 

집에서 홀로 밥을 먹을 때면, TV 앞에 앉아 넷플릭스를 켠다. 밥을 10시간씩 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빈지 워칭용 드라마보다는 에피소드 단위로 끊어지는 ‘마스터 오브 제로’ 같은 시트콤을 보는 것이 낫다. ’마스터 오브 제로’는 그렇게 보게 됐다. 아지즈 안사리가 감독과 주인공을 맡은 ’마스터 오브 제로’는 나처럼 별 생각 없이, 별 부담 없이 웃으려고 보기 시작한 이들에게, 에피소드가 끝날 때 즈음 웃음과 더불어 생각할 거리까지 안겨 주는 작품이다. 섹스하는 도중 콘돔이 찢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님에겐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인종차별에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성차별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문자 매너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마스터 오브 제로’는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문명인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름의 답을 내려준다. 내게 ’마스터 오브 제로’가 특별했던 것은, 이 작품이 좀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뉴욕을 배경으로 인도계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스터 오브 제로’가 안내하는 답은 한국에 사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편협한 답 이상을 보여준다.

글. 윤지만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시트콤 ‘프렌즈’로 시작해서 2000년대 내내 미국 티비쇼와 영화를 열심히도 봤던 내가 팝 컬쳐로만 미국을 배웠더라면 나는 이 나라에 백인만 사는 줄 알았을 것이다. 다인종 국가라고 말은 하는데 보이질 않으니. 그런 기억이 있기에 2014년 인디 영화 ‘디어 화이트 피플’의 등장에 제목부터 ‘역차별’이라며 울부짖는 반응들을 보며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외국인 눈에도 보이는 현상이 자국인 눈에 안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영화를 다듬고 확장한 동명의 시리즈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에게 맞받아친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여러분이 겪어 본 적 없다고 해서 인종 간 불평등이 사라진 게 아니랍니다. 가상의 아이비리그 대학을 주로 흑인 학생들의 시각에서 풍자적으로 그려낸 이 시리즈는 차별이 얼마나 교묘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에 맞서는 방식에도 하나의 정답존재하지 않음을 가르쳐주는 단기 속성 코스다. 왜 흑인들을 죽이지 말자는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같은 소리를 하면 안 되는지도. 거기다 배우들은 연기 잘 해, 연출 뛰어나, 지루할 틈 없이 매 에피소드가 재미있기 까지 하니 수업료로 9,500원은 기꺼이 낼 만하다. 2017년의 넷플릭스는 이 시리즈만으로도 제 값을 한다.

글. 와조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얼마 전까지 동화는 아이들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 어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폭력을 자행하는 아주 유쾌한 장르라고 여겼다. 하지만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을 보고난 뒤 버르장머리 없고 표독스러운 어른들이 부조리하게 아이들을 고난에 몰아넣고 학대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온전히 결백한 지위와 무조건적인 정당함을 부여하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유쾌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리고 이 깨달음에는 울라프 백작 역을 열연한 닐 패트릭 해리스 덕분이 컸다. 영화판에서 동일한 배역을 맡은 짐 캐리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그 특유의 애정결핍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란 어른이 과장되게 행동함으로써 주목을 끌려는 듯한 모습에는 역할에는 맞지 않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지점이 남아있었다. 반면 닐 패트릭 해리스의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고 똑똑하고 고상하고 예쁨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아이들을 학대하는 매 순간마다 어쩜 그리 행복하고 신이 나는지 실존적 의의마저 찾아버린 듯한 울라프 백작은 절대적으로 얄밉고 또 사랑스럽다. 원작동화부터가 그러했지만 이렇게까지 양심 없을 정도로 얄미운 서사는 모든 이에게 사랑 받고자하는 애절함이 아니라 내가 날 사랑한다는데 네가 배길쏘냐의 오만함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일정 이상의 자본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창작자들의 이 오만함을 존중하는 곳은 넷플릭스를 제외하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글. d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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