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① '알쓸신잡'은 누구의 사전인가

2017.06.27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은 중년 남성들을 위한 지식 팟캐스트를 TV로 옮겨온 것 같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 음식평론가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과학자 정재승이 여행을 하고 음식을 먹으며 자신들이 아는 온갖 지식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차를 타고 가는 사이 술에 대해 말하고, 여관과 다찌집 등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유시민이 젊은 시절 쓴 ‘항고사유서’와 유희열의 음악을 통해 1990년대 청춘이었던 남자들의 정서를 올린다. 마치 지금 어느 곳에서 40~50대 남자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을 것 같은 내용들. ‘알쓸신잡’은 중년 남성들의 여행, 음식, 술자리 문화에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처럼 다양한 지식을 전하는 팟캐스트를 연상시키는 내용들을 더했다.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을 연출하던 KBS 시절과 달리, tvN으로 이적 후 나영석 PD는 연출하는 프로그램마다 출연자의 연령과 성별을 달리하며 시청자층을 세분화했다. 나영석 PD의 전작 ‘윤식당’은 노년 배우 윤여정이 주인공이었다. 그 전에는 젊은 신혼부부인 구혜선-안재현의 ‘신혼일기’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삼시세끼’, ‘신서유기’처럼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남자 아이돌을 내세운다. ‘알쓸신잡’은 마케팅에 기반을 둔 나영석 PD의 프로그램 기획이 보다 세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55세 미만은 남초, 55세 이상은 여초 현상”을 보인다. 또한 2015년부터 한국의 가장 주된 주거 형태인 1인 가구 중 40~50대 남성 1인 가구 총합은 전체 남성 1인 가구 수의 39.32%에 달한다(머니투데이). 그만큼 중년 남성들의 채널 선택권이 과거보다 올라갔다. 최근 SBS ‘미운 우리 새끼’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KBS ‘해피투게더’가 아예 중년의 남성 코미디언들을 주축으로 내세워 프로그램을 재정비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젊은 세대에 비해 아직 TV를 더 많이 본다. 나영석 PD는 이런 중년 남성들에게 이제 음식과 여행뿐만 아니라 팟캐스트처럼 지식도 전달한다.

“여류작가는 멸칭이다.” 김영하가 ‘알쓸신잡’ 1회에서 소설가 故박경리에 대해 설명하며 한 말이다. 3회에서는 유시민이 역사에 남을 작품들을 남긴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조선시대 여성이기에 겪었던 문제들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알쓸신잡’은 이른바 ‘아재예능’으로 불리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처럼 여성에 대한 비하와 편견을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는다. ‘윤식당’처럼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물게 노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안재현-구혜선을 통해 역시 드물게 부부의 가사 분담 문제를 다룬 것도 나영석 PD다. tvN에서 여러 세대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춰온 그는 타겟 시청자층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그 바깥 시청자들도 가능한 한 불편하지 않도록 한다. 그의 작품들이 시청자층을 나누면서도 대부분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영석 PD는 ‘알쓸신잡’을 통해 여전히 팟캐스트나 유튜브가 아닌 TV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1회에서 ‘알쓸신잡’ 제작진은 김영하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인 노천명에 대해 ‘여류시인’이라는 자막을 썼다. 부주의한 실수였을 것이다. 제작진은 본방송 이후 이 자막을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년 남자 PD와 출연자들이 주축이 된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어떤 사람도 모든 입장의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배려할 수는 없다. 민감한 이슈에 대해 최대한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는 있어도, 부주의하면 ‘여류시인’ 같은 자막을 달게 될 수도 있다. 누가 프로그램의 주체냐에 따라 다루는 소재와 이야기의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영석 PD가 여성들로 구성된 ‘알쓸신잡’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청률을 목표로 하는 연출자들은 타겟 시청자층에 적합한 작품을 기획할 뿐이다. 나영석 PD는 다양한 시청자들이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도 한다. 문제는 ‘알쓸신잡’ 바깥의 세상이다. 나영석 PD는 ‘1박 2일’로부터 ‘알쓸신잡’까지 왔다. 그런데, 그 사이 왜 그와 다른 방식의 음식, 여행, 지식, 삶에 관한 프로그램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알쓸신잡’이 말하는 ‘사전’은 이 지점에서 나영석 PD의 의도와 별개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성 또는 중년이 아닌 다른 세대가 그들의 방식으로 음식, 여행, 지식, 삶에 대해 말하는 프로그램들이 더 있었다면 ‘알쓸신잡’은 그 ‘사전’ 중 하나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TV에는 ‘알쓸신잡’만이 있다. 여성 출연자가 자신의 지식과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TV 프로그램은 EBS ‘까칠남녀’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은 대부분 중년 남자들로 채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중년 남자의 여행법과 관심 있는 분야, 그들의 관점은 유일한 ‘사전’이 된다. ‘알쓸신잡’에서 다룬 ‘토지’, ‘태백산맥’, ‘항고사유서’ 등은 읽어두면 좋을 작품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중년 남자들의 독서 리스트 바깥에 있는 작품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는 ‘태백산맥’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적인 관점은 누구에게 들을 수 있나. 그것은 애초에 팟캐스트나 수많은 분야의 유튜버들이 왜 생겼는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TV가 가장 주류의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시청자들을 붙잡는 사이, 주변이 아닌 주체로서 원하는 지식을 찾는 사람들은 TV 바깥에서 지식을 찾는다.

나영석 PD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기도록 만드는 것은 하나의 철칙이자 의무”(네이버 지식Q&A)라고 말했다. 하지만 ‘1박 2일’을 통해 30% 이상의 시청자들이 보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던 그는, tvN에서는 시청자층을 세분화한 프로그램들을 만든다. 미디어와 시청자의 변화에 따라 다른 형식을 생각하고 새로운 출연자와 관점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그는 업데이트를 게을리하지 않는 연출자다. 다만 나영석 PD 개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그리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시장, 또는 세상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TV는 그것을 좀처럼 다루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나영석 PD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채 시청자의 변화를 맞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윤식당’과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조차 기획되지 않는다. 중년 남성들이 출연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른바 ‘아재’들의 ‘배워봅시다’가 된 MBC ‘무한도전’, 교복을 입은 중년 남자들이 주로 젊은 여자 게스트를 불러 짝꿍이 되려고 하는 JTBC ‘아는 형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과연 TV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기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나영석 PD가 ‘알쓸신잡’을 통해 보여주는 변화, 그리고 TV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이제 TV가 이 질문에 정말 답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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