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AKB48의 꿈을 꾸는가

2017.07.12
일본의 ‘국민 아이돌’이라 불리는 AKB48은 초동 판매량만 100만 장을 넘기고 30개의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다. 최근 하락세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AKB48을 위시한 AKB 사단을 넘어설 만한 아이돌 그룹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극장 공연·선발 총선거·가위바위보 대회·리퀘스트 아워 등 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문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멤버들의 인기를 기반으로 한 복잡한 시스템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그렇게 AKB 사단의 시스템은 영원히 외부 문물로 남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2016년에는 AKB48의 총선거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 Mnet의 ‘프로듀스 101 시즌 1’이, 2017년에는 ‘프로듀스 101 시즌 2’가 방영됐다. ‘프로듀스 101 시즌 1‘에서 1위를 했던 전소미는 85만 8333표를 얻었고,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1위를 한 강다니엘의 득표수는 157만 8837표로 전소미의 약 두 배다. 그리고 Mnet은 오는 13일에 투표제에 기반을 둔 또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돌학교’를 방영할 예정이다. 절대 들어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AKB 사단의 시스템이 ‘프로듀스 101’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이다.

팬이 행사한 표가 센터를 정한다는 점에 있어 총선거와 ‘프로듀스 101’의 투표 시스템은 같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모든 부분이 다르다. AKB48의 총선거는 한시적인 이벤트로, 총선거 순위에 따른 포지션은 총선거 싱글에만 적용된다. 올해 순위가 낮아도 내년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질 수 있고, 1년의 준비 기간 동안 멤버들은 SNS나 극장 공연, 악수회 등을 통해 자신을 어필한다. 그러나 한국의 투표제는 다르다. 그룹 내 포지션이 아닌 데뷔가 포상으로 주어진다. 최종 순위에 따라서 데뷔 멤버를 선발하기 때문에 그 순위가 고정된다. 팬들이 포지션이나 리더 같은 직위에 민감한 이유다. 프로듀스 101 시즌 1’이 끝난 뒤 결성된 걸그룹 I.O.I의 ‘Crush’ 뮤직비디오 공개 후 멤버들의 비중 등으로 인해 특정 멤버가 비난을 받거나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데뷔 그룹 워너원의 임시 리더로 윤지성이 결정된 뒤 몇몇 팬들이 반발한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AKB48의 총선거는 1년마다 팬과 멤버가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라는 느낌이 강하다. 총선거 일정이 발표되면 멤버들은 출마 선언을 하고 선거 포스터를 촬영한다. 팬들은 각 멤버의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린다. 중간 순위를 체크하는 속보 발표도, 최종 순위 발표도, 소감 스피치까지 모든 이벤트가 팬들과 함께 이루어진다. 2017년 6월에 열렸던 제9회 선발 총선거 ‘우선 싸우자! 대화는 그다음이다’가 비판을 받은 가장 큰 이유도, 운영진이 기상 악화를 예상하지 못해 처음으로 팬들이 없는 자리에서 순위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투표제는 팬과 멤버 모두에게 스트레스다. 멤버들은 단기간에 객관적이지 않은 방송으로만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 게다가 순위가 높으 데뷔하지만 낮으면 방출된다.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워너원이 광고 모델인 이니스프리는 ‘컬러마스크 101’이라는 투표 이벤트를 열었다가 ‘지긋지긋한 투표제에서 탈출한 멤버들을 두고 왜 또다시 투표를 하냐’는 팬들의 항의를 받고 이벤트를 잠시 중단했다. 투표권 자격 역시 다르다. AKB48의 총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사람은 투표권이 들어 있는 싱글 구매자, 공식 팬클럽 회원, AKB48 관련 모바일·인터넷 유료 회원 등이다. 즉 어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고 꾸준히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을 비롯한 한국의 투표제 프로그램은 대국민 투표를 표방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유권자가 된다. 때문에 투표가 열리는 날이면 웹사이트와 SNS 등지에는 ‘우리 ○○이 좀 뽑아달라’고 읍소하는 글이 넘쳐난다. 아무나 표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어그로’도 쉽게 가능하다. 안 그래도 단점이 많은 제도인 총선거가 경쟁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만나 기묘하게 변질된 것이다.

기존 한국 아이돌 그룹은 결속력이 강했다. 한 번 정해진 멤버는 계속 함께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팬들 역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멤버와 별개로 그룹 그 자체를 좋아했다. 그러나 투표제가 도입되면서 팀워크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그룹은 개인 단위로 해체되었다. 팬들은 인기도로 멤버를 줄 세우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됐다. 다양한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투표제를 도입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 견해와 별개로 화제몰이는 톡톡히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방식을 차용한 투표제가 등장하지 않을까. 다만 투표제에 참여했던, 참여하고 있는, 앞으로 참여할 이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재능을 펼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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