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서 “여성의 다양한 모습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

2017.07.14
영화 ‘박열’을 본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가네코 후미코를, 두 번째로 갑자기 튀어나온 최희서라는 배우를 궁금해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후미코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다가도 온몸으로 분노하며, 한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여준다. 100년 전에 존재했던 인물의 생각과 행동이, 그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했던 배우에 의해 고스란히 복원됐다. 이 과정을 통해 최희서는 무엇을 얻었을까.


자신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최희서: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9년 차 무명 배우(웃음). 2005년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2009년에 영화 ‘킹콩을 들다’로 데뷔했다. 그동안 독립영화, 단편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서 쉬지 않고 활동했다. 그런데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보니 많은 분들이 신인 배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인 배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과거 작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보다는 ‘뇌섹녀’, ‘엄친딸’이라는 타이틀로 자주 소개되더라.

최희서: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를 소개할 때, 아무래도 그 사람의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경우 이러지 않았을까. “어디 보자, 예뻐? 으음…. 키가 큰가? 아니네…. 아! 이 사람은 학력이 좀 특이하군.”(웃음) 학창시절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보냈고,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공연예술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외국어를 익혔는데, 배우를 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다. 사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승부욕이 강한 편이다. 점수나 등수가 떨어지는 걸 엄마보다도 내가 못 견뎠으니까. 그렇지만 모범생 시절은 18살 때 완벽히 끝났다(웃음).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동아리에 들어가 그 후로 쭉 연기만 했다.

‘동주’에 이어 ‘박열’까지, 이준익 감독과의 인연이 특별한 것 같다.
최희서: ‘동주’의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신연식 감독님을 우연히 만나 후카다 쿠미를 연기하게 됐다. 그리고 ‘동주’ 후시 녹음 자리에서 이준익 감독님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 길로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을 사서 읽었고, 감독님께 전화를 걸어 이 영화가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시나리오 회의에 와보라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후미코를 연기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카카오 브런치에 ‘박열’ 제작기를 연재할 만큼 제작 초기 단계부터 깊이 관여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가네코 후미코라는 배역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최희서: 정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지도도 없고, 주연을 한 경험도 없는 내 입장에서는 차마 욕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원하는 역을 했던 경우보다는 못 했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런 일을 계속 겪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거절을 당하다 보면 어떤 배우라도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 그게 거절이 아니라,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감독님의 결정을 존중하고 싶었다. 내가 후미코를 하고 싶다고 어필하면, 선택을 할 때 아무래도 영향을 받으실 거고 그건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하고 싶다는 말을 너무 안 했나’ 싶었다(웃음). 그래서 조감독님께만 “정말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어필이었다.

캐스팅이 결정되고 이준익 감독의 사무실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던데, 가서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최희서: 매일 가지는 않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웃음) ‘동주’ 때부터 나는 한국어 대사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었고, ‘박열’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이건 집에서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빨리 번역을 끝내고 사무실에 가서 감독님과 후미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가면 감독님은 꼭 뭔가를 물어보셨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후미코는 박열을 사랑한 것 같아?”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떤 점을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이 날아온다. 뭘 좀 모르는 눈치면 바로 “공부 좀 더 하고 와야겠다.”라고 하셨다. 이런 과정을 통해 후미코에 대해 점차 깨닫게 된 것이 많았다. 하루에 10을 가져가려고 했는데 30-40씩 얻어가는 기분이라 신나게 다녔다.

경북 문경에 있는 가네코 후미코 묘지에도 다녀왔다고 들었다.
최희서: 진짜 본인이 흙 아래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어쩐지 금방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오랫동안 머물다 갔다. 총 세 번 찾아갔는데 첫 번째는 부모님과 함께 가서 인사를 드렸고 두 번째는 촬영 전 찾아가서 절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개봉 전에 갔는데 이번에는 술과 함께 절을 올렸다. 자서전에도 술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웃음).

영화에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게 만드는 자서전의 내용은 거의 후반부에나 드러난다. 그 전까지 관객들은 “후미코가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최희서: 아마 중반까지는 후미코를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설명이 부족해서라기보다 후미코가 진짜 감정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쉽게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걸 입 밖에 내는 순간 무너지니까. 후미코는 끝까지 버텨야 했고, 그래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출 거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왜 조선으로 갔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후미코는 “부모에게 버림받아서”라는 대답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할머니가 나를 때리고, 나는 길바닥의 밥을 주워 먹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 장면에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레로 씩씩하게 바닥을 닦는다.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건데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후미코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더 상처받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후미코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 장면에서만큼은 그의 본모습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창밖을 내다보며 초월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에 내레이션을 녹음할 때, 특히 “그와 동지로서 함께했던 3년만이 나의 진정한 삶이었다.”라는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슬픈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마지막 대사는 직접 쓴 것이라고 들었다.
최희서: 후미코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혹이 많다. 원래 그 부분의 대사는 “죽음을 감추려는 저자들을” 같은 느낌으로 시작하는 문장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이건 너무 타살을 암시하는 것 같다며 내게 다른 대사를 써보라고 하셨다. “그와 동지로서 함께했던 3년만이 나의 진정한 삶이었다.”라는 문장을 쓴 건, 후미코가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박열과 후미코는 결국 떨어지게 되는데, 함께했던 것이 삶이라면 떨어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개인적으로 후미코의 기록들을 읽으며 그는 충분히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영화에서 불령사 동지들이 후미코의 시신을 수습하며 원통하게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사실 감독님이 빼려던 장면이다. 후미코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를 남기신 것 같다.

브런치에 마지막 법정 장면은 아무런 계획 없이 연기하고 싶었다는 글을 썼더라. 배우가 아무런 계획 없이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최희서: 첫 주연작이었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지나치게 연습을 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어느 정도 버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몇몇 장면들 같은 경우 ‘내가 너무 과하게 연기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마지막엔 그런 것들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그 법정 씬은 박열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고, 후미코로서 연기하는 마지막 회차였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다면 무언가를 더 만들지 않아도 그 순간에 집중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힘이 완전히 빠져 있는 상태에서 연기했다. 나중에 스크린으로 그 장면을 보니 내가 봐도 나 같지가 않았다.

후미코의 마지막 법정 장면은 “나는 박열의 본질을 알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본질을 알고 있다고 말할 만큼, 누군가를 깊이 이해해본 적 있나?

최희서: 내 생각에는 아주 가까운 친구나 나이를 좀 먹은 후 사귄 이성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몇 년을 봐도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애초에 통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본질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비슷한 사람들만이 서로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거다. 결국, 그의 본질을 알고 있다는 것은 너와 나는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후미코는 박열의 결점과 과실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박열’은 그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젊고 새로운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최희서: 불령사 동지 역을 맡은 배우들은 거의 80년대 중후반 생이라 또래 친구처럼 거리낌 없이 지냈다. 다들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서로 적어도 한 번씩은 만났던 사이거나 처음 보더라도 친구의 친구인 경우가 많았다. 캐스팅 소식을 듣고 서로 전화로 축하해주기도 했다. 특히 백수장 씨의 경우 같은 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각각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경쟁했던 사이다(웃음). 그 친구들이 모니터 뒤에 앉아 있기만 해도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절로 힘이 났다. ‘불령사 단톡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준익 감독의 두 작품에서 연속으로 일본인 배역을 맡았다. 이미지가 고정될까 고민되지는 않는지.
최희서: 사실 가네코 후미코를 맡을 때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이 인물 자체가 너무나 멋있기 때문에 일본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 같다(웃음). 만약 내가 일본말을 아예 못하는데 이 인물을 접했다면 진작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이미지는 최근에야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차기작이 거의 결정되었는데, 이번에는 다행이도 한국인이다(웃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해서 그런지, 유독 ‘말’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후미코의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했나?
최희서: 후미코는 언어적으로 상당히 발달한 사람이다. 그게 아니라면 20대 초반에 쓴 자서전이 그 정도로 논리적이고 문학적일 수 없다. 법정에서 후미코는 재판관과 청중들을 대상으로 황태자를 없애야 할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완결된 연설에 가깝다. 아마 평소에 동지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박열과 함께 잡지를 펴내며 말과 글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평소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고, 그런 면에서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블로그에 ‘배우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 다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기도 했다.
최희서: 이게 설명하기 쉽진 않은데, 어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소리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연두색’과 ‘녹색’이라는 단어를 비교하면 옅거나 짙다는 이미지 차이도 있지만, 연두색에는 ㅇ과 ㄷ에서 나오는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이것을 인지하고 대사를 하는 것과 모르고 대사를 하는 건 꽤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면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운문인데, 말하자면 라임이 다 맞춰져 있는 랩 같은 거다. 외국에서 이걸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연극을 다시 했을 때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냥 언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학교 때 선택 과목으로 라틴어를 들었는데 엄청 재밌었다.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까지 어원을 알 수 있어서 엄청 효율적이다. 그런데 지금 나 너무 신나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웃음)

한 번도 연기를 쉰 적이 없다던데, 슬럼프는 없었나?
최희서: 슬럼프라기보다는 심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 2014년에 연극이 너무 하고 싶은데, 지원을 못 받아서 나를 포함한 배우들이 사비를 걷어 대관을 했던 적이 있다. 대학로에 있는 극장은 비싸서 빌리지도 못하고 한성대 입구까지 가서 연극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려고 이러나’ 싶어 막막했다. 그러다 연기라도 잘해야지 싶어서 지하철에서도 미친 사람처럼 대본을 중얼거렸는데, 그걸 보고 ‘동주’의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김연식 감독님이 명함을 주셨다. 그렇게 이준익 감독님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올해 여성의 날, 블로그에 가네코 후미코 자서전을 발췌해서 올리며 ‘1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아도, 당시 그의 고뇌와 회의에 공감이 간다’고 썼다. 30대 여성이자 배우로서 최희서를 고민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희서: 나를 통해 표현되는 여성의 모습이다. 후미코는 일본 여성이지만 많은 한국 관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앞으로도 여성의 다양한 모습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 솔직히 나의 일과 생활은 거의 구분이 안 된다. 쉴 때도 대본이나 영화를 보고, 배역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일은 곧 삶이다. 여성 배우로서 내게 어떤 과제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준익 감독이 여성 배우들이 나오는 시나리오를 써서 가져오면 제작을 고려해보겠다고 했다던데. 생각해둔 이야기가 있다면?
최희서: ‘박열’의 VIP 시사회 때 한예리 선배를 만났는데 ‘나중에 작품 같이 하자’는 말씀을 해주셨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네가 여자들만 나오는 시나리오를 써봐”라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예전부터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이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약물중독 엄마와 그 엄마를 만나러 온 딸들의 이야기인데 판권 문제 때문에 결국 하지 못했다. 이런 모녀나 자매들 간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 계속 배우로 활동할 텐데, 후미코를 연기한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될까?
최희서: 아마 내가 방향을 잃었을 때 후미코가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줄 것 같다. ‘야! 너 이런 거 했던 애잖아. 지금 뭐하는 거야?’ 물론 하고 싶은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 커리어가 나의 발자취라면 가끔씩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그때마다 내 뒤에 후미코가 서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할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나다운 나’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훌륭한 배우나 사람이 아닌, 최희서가 되고 싶은 ‘나’는 누구인가?
최희서: 항상 질문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준익 감독님이 ‘호기심을 잃으면 늙게 된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얼마 전 아빠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이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겠고, 영화를 찍으면서는 “이걸로 나는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 걸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겠지. 그냥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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