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이상해│① 주말드라마에 들이부은 ‘사이다’

2017.07.18
“나는 내 물건에 자기 결정권이 있다고요!”, “나도 가족의 한 사람으로 명백한 유권자다. 대통령 선거도 후보자들이 투표한다. 후보자인 동시에 유권자니까!”, “(시어머니에게) 저희가 분가를 할까요? 아니면 합가 계약서대로 이행을 하시겠습니까?” KBS 주말드라마 (이하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의 맏딸 변혜영(이유리)이 했던 말들이다. 그의 ‘사이다 어록’이 인터넷상에 떠돌고, 관련 기사가 여러 차례 나올 만큼 변혜영은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속 시원한 말로 상황을 정리한다. 기자가 강압적으로 가족을 취재하려 하거나, 건물주가 이른바 ‘갑질’을 하는 상황 등 가족이 외부적인 위험 요소에 노출됐을 때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부부생활이나 시댁과의 합가 등 가족 내부의 규범에 대해서도 그는 늘 할 말을 한다. 그가 집안의 첫째 딸이자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로 아버지 변한수(김영철)의 자랑이고, 가부장적인 시아버지 차규택(강석우)의 마음에 드는 지적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많은 주말 드라마에서 큰딸, 또는 며느리는 작품 속에서 부모에게 가장 순종적인, 또는 이타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 거기서 벗어나는 캐릭터는 악녀이거나, 가정의 규범을 깨는 문제적 인물로 취급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가부장제의 질서를 따르곤 했다. 반면 변혜영은 스스로 “우리나라 인구 중에 직업이 변호사인 사람은 0.004%. 그중에서 여자 변호사인 사람은 0.00056%. 그 0.00056%의 주인공”에 “그중에서도 예쁘고, 매력 쩔고, 뇌는 아주 섹시하고, 인성은 아주 벨벳인 여자”라고 말할 만큼 ‘스웨그’가 넘친다. 동네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부모에게서 자란 이른바 ‘개룡녀’(개천에서 난 용)이면서, 부모 말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주체적인 자아를 외친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그가 가족의 문제를 정이나 가부장제 문화를 그대로 따르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는 가족의 일에 대해서도 법에 의거하고, 그에 따라 최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는다.

가족의 일상다반사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주말 드라마들은 가족의 일을 사적인 영역으로만 취급했다. 가족의 일은 전통이라는 이유로, 또는 정을 이유로 불합리한 것일지라도 가족끼리 해결하면 그만인 것처럼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족은 온전히 사적 영역일 수만은 없다. 이미 노인을 책임지는 주체가 개인인지 정부인지에 대한 법적 논쟁이 활발하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2017)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10만 7300쌍이고, 그중 30.4%가 결혼 20년 차 이상인 부부다. 부부라도 언제든지 서로 각자의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고, 은퇴 후 생활은 많은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장밋빛만은 아니다. 변혜영은 이 지점을 파고드는 주말드라마의 새로운 주인공이다. 그는 가족 분쟁을 법적으로 해석하며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결혼할 때는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혼전계약서를 써서 공증을 받고, 시부모와 같이 살 때는 합가계약서를 쓰기도 한다.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도 서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조율한다. 이제 막 결혼해 새로운 가족이 된 남편, 또는 남편 부모와의 관계는 더욱 그럴 것이다. 변혜영은 이를 위해 상대방과 대화하고, 합의한다. 차정환(류수영)이 변혜영과 결혼하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며느리, 사위 노릇을 한다”는 요구 조건을 걸었을 때, 그는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며 서로가 생각하는 상식의 수준을 맞춘다. 또한 최규택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졸혼을 요구했을 때, “상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졸혼은 엄연히 별거다”라고 법적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변혜영은 가족제도 역시 법과 제도 안에 있고, 그것을 지켜야 개인과 가족 사이의 관계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변혜영의 발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이다’로 느껴진다면, 많은 시청자들이 이미 이 변화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름다운 정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사실은 개인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변혜영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들 역시 사적 영역이 존중받기를 원한다. 변한수의 장남 변준영(민진웅)은 여자친구를 사귄 뒤 가족이 몰래 자신의 핸드폰을 보려 하자 “아무리 동생이라도 이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이건 법적으로 명백한 위반이고, 인간의 존엄성 말살이야”라고 부당함을 주장한다. 또한 변한수가 처남댁 이보미(장소연)에게 아르바이트를 요청하자 이보미의 남편 나영식(이준혁)은 미안한 마음에 “매형한테는 알바비 받지 말라니까?”라고 말하지만, 나영식의 어머니 김말분(박혜숙)은 “공은 공이고 사는 사여”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모든 캐릭터들이 근대적 자아를 갖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변혜영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개인주의,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을 외치지만 막상 공무원 시험을 5년째 준비 중인 오빠 변준영이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죄 없는 부모님 등골 뽑아가면서 살지 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양가적인 태도는 변혜영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의 태도이기도 하고, 이렇게 자신과 타인에 대해 다른 잣대를 가진 이들이 매회 서로 갈등하며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면서 가족을 이뤄나가는 것이 ‘아버지가 이상해’다. 물론 졸혼, 동거 등 수많은 문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각각의 문제들을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변혜영의 ‘사이다’ 위주로 해결되는 것은 아쉽다. 그럼에도, ‘이버지가 이상해’는 지금 가족의 변화, 이로 인한 세대 간의 갈등을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표현한다. 게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가족 내에서 말과 법으로 영향력을 갖게 된 여성이다. 여성의 말이 가진 힘으로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드라마란, 정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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