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탈출’, 빈 둥지가 된 TV

2017.07.31
tvN ‘둥지탈출’은 MBC ‘일밤’ ‘아빠! 어디가?’ 출연진들의 10년 후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다. 김유곤 PD는 ‘아빠! 어디가?’에서 아동기의 연예인 2세들을 시골로 데려갔고, 이번에는 ‘둥지탈출’을 통해 평균나이 21세의 연예인 2세들을 네팔에 데려다 놓았다. 달라진 점은 전작에서 아빠와의 동행을 그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오지에서 좌충우돌한다는 것이다. ‘둥지탈출’에서 아이들이 여행을 떠나는 명분 역시 독립이다. 아이들은 여행 전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라는 내용의 독립 선언서를 읽는다.

그러나 이들의 여행이 끝난 후 부모들은 스튜디오에 모여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청춘들에게만 허락된 한정판 탈출’이라는 프로그램 설명은 중의적인 의미로 정확하다. 그들은 부모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 한정된 탈출이자 독립을 한다. 연예인 자녀 6명으로 꾸려진 ‘청년독립단’은 네팔에서 식비를 비롯한 각종 경비를 스스로 해결하며 11일 동안 여행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머무는 숙소에 갖춰진 집기는 물론 염소와 고양이가 있는 집에서 머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다. 근처 학교에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 프로그램 촬영을 위한 설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이것을 자녀들의 독립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독립은 정확히는 ‘부모가 허락한 독립’에 가깝다. 경제력과 사회적인 명예를 모두 갖춘 부모들이 마련한 틀 안에서, 이 연예인 2세들은 부모에게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준다.

“지금 다들 자기 아이만 보고 있는 것 맞죠?” 출연하는 부모 중 한 사람인 박미선의 말은 ‘둥지탈출’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청춘들의 독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감정이입이다. 제작진은 비교적 고른 비율로 아이들 각자의 특징을 찾아내 부각하고, ‘단장은 돌아가며 모두가 맡는다’라는 수칙까지 만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고르게 활약할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첫날에는 카트만두 숙소를 잡은 김혜선의 아들 최원석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둘째 날에는 잘못된 판단으로 모두를 고생시킨 기동민의 아들 기대명이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이 부각됐다. 품디붐디 숙소에 도착한 후 첫 단장을 맡은 박미선의 딸 이유리는 씩씩하고 리더십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부모들이 학예회에서 자기 아이의 활약을 보며 흐뭇해하는 시선이 ‘둥지탈출’에서 반복된다. 물론 자식의 대견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둥지탈출’은 청춘의 독립을 내걸었고, 출연자들은 초등학생이 아니라 20대라는 점이다.

SBS ‘미운 우리 새끼’ 이후, 부모가 자식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은 하나의 유행이 됐다. ‘미운 우리 새끼’는 어머니들이 미혼인 아들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고, E채널 ‘내 딸의 남자들: 아빠가 보고 있다’는 아버지가 딸의 연애를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 ‘미운 우리 새끼’는 어머니들이 중년을 넘긴 아들들을 철부지로 바라보고, 결혼을 하라고 채근한다. ‘내 딸의 남자들: 아빠가 보고 있다’에서는 아버지가 ‘딸의 남자’라는 존재만으로도 과민 반응을 보이면서 딸의 일상에 관여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둥지탈출’은 부모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자녀들의 독립을 보여준다. 자식들은 부모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어설프고 좌충우돌하지만, 그것은 결국 부모가 바라는 선 안에서의 독립이다. ‘미운 우리 새끼’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아들의 일상에 관여하고 싶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 아들들이 이미 경제적인 자립을 한 상태에서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돼 있다. 반면 ‘둥지탈출’의 부모는 자식이 독립을 하겠다고 떠나는 공항까지 가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부모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 독립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들에는 부모와 자식이 모두 등장하지만 소통의 방향은 부모에서 자식으로만 흐르고, ‘둥지탈출’에 이르러 자식이 부모가 바라는 만큼의 독립을 하는 데 이른다. 자립도 가능하지만 부모의 시야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는 자식. 부모가 자식을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점점 더 부모의 판타지를 보다 완벽하게 충족시키려 한다.

부모들이 자녀의 사소한 모습까지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 방식에 대한 고민이나 자식이 자유 의지를 가졌다는 점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둥지탈출’에서 부모들은 저녁밥을 만드는 것보다 고양이와 염소의 이름을 지어주는 데 몰두한 아이들의 모습에 기막혀 했고, 성냥을 사용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신기해했다. 부모 세대의 관점에서, 그들이 흥미로워하는 부분까지만 보여주는 것. 또는 부모 입장에서 본 요즘 아이들의 생활. TV 시청자층이 점점 고령화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 요즘의 TV야말로 젊은 세대들이 떠나고 남은 빈 둥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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