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요리하기

2017.08.03
셔터스톡
세상에 살림보다 더 귀찮은 게 있다면 여름에 살림하는 것이다. 청소나 빨래야 모른 척한다 쳐도 밥은 어쩔 건가. 날마다 사 먹기도 고역이지만 이 날씨에 요리라니 엄두가 안 난다. 특히 1인 가구라면 말이다. 진종일 일하고 귀가하면 최대한 빨리 누워야지, 혼자 먹자고 지지고 볶자니 생각만으로도 기진맥진이다. 기분 같아서는 여름내 복숭아나 먹고 싶지만 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힘들수록 잘 챙겨 먹어야 복숭아 살 돈이라도 벌어올 기력이 생긴다.

완벽한 가사 로봇이 언젠가는 발명되겠지만 그 전에 굶어죽지 않으려면 불 앞에 서야 한다. 하지만 쪄 죽어도 곤란하니 어떻게든 그 시간을 줄여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생야채를 많이 먹는 것이다. 여름이면 기름진 음식을 챙기던 것은 고기가 귀하던 시절 얘기다. 맛 때문이라면 모를까, 몸 생각해서 고기를 먹을 이유는 없다. 탈수에 유의해야 하는 여름에는 오히려 수분이 풍부한 야채가 필요하다.

여름 야채는 맛있다. 예쁘고, 싸고, 다양하다. 물론 생야채에는 풋내라는 것이 존재하고 세상에는 그것과 타협할 수 없는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인류는 양념이라는 것을 발명했다. 이름 모를 조상들 덕분에 우리는 생오이 대신 오이 무침을, 상추 대신 겉절이를 먹을 수 있다. 양파나 방울토마토를 식초에 절여 두면 여름내 고기나 생선에 곁들이기 좋으며, 양상추나 로메인에 얹어서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면 산뜻한 여름 샐러드가 만들어진다.

생야채는 카레와도 잘 어울린다. 카레는 더울수록 생각나는 마성의 여름 요리지만 밥만으로는 영양 균형이 맞지 않는다. 삶은 계란이나 치즈를 올려 단백질을 보충하는 한편 오이나 셀러리도 곁들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카레의 강함을 믿는 것이다. 오이 좀 올렸다고 맛없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카레가 살짝 묻으면 야채가 거짓말처럼 맛있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불 앞에서 양파를 볶을 자신이 없다면 눈 딱 감고 레토르트 제품을 산다. 직접 끓인 것만은 못하겠지만 돈가스나 고로케 같은 화려한 토핑으로 어느 정도 얼버무릴 수 있다.

또 하나 마성의 여름 요리인 비빔국수에도 생야채를 듬뿍 곁들인다. 가늘게 채를 썬 오이나 굵게 다진 상추가 매콤한 양념장과 얼마나 어울리는지 모른다. 비빔면 한 봉지로는 부족하고 두 봉지는 남는 딜레마도 덩달아 해결된다.

센 불에 빠르게 볶아내는 여름 야채 볶음도 불 앞에 서는 시간을 줄인다. 웍에 기름을 두르고 먼저 마늘이나 건고추를 볶은 후 다진 고기, 새우, 소시지처럼 금세 익는 단백질류를 넣는다. 간장이나 굴소스 등으로 양념해 간이 배면 야채를 넣어 순식간에 볶아낸다. 다른 계절보다 살짝 더 맵고 짜고 달게 간하는 것이 요령이다. 공심채나 근대, 호박과 가지, 하다못해 셀러리까지, 야채라면 뭐든 좋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스팸 여주 볶음이다. 먼저 마늘을 볶은 후 깍둑썰기한 스팸을 넣고 노릇노릇해지면 여주를 더한다. 쓴맛이 강한 여주와 기름진 스팸이 근사하게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여름다운 요리가 된다. 얌전히 밥에 얹어 먹으면 좋겠지만 역시 여름이니 슬금슬금 차가운 맥주를 곁들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제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집집마다 간장까지 담그던 시대가 끝난 것과 마찬가지로 한 상 가득 떡하니 차린 밥상의 시대도 슬슬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여전히 메주를 띄우는 사람도 있지만 날이면 날마다 편의점 도시락인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날씨가 덥거나 몸이 피곤하거나 기분이 들뜰 때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정말이지 너무한 여름을 맞아 시판 제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다만 야채와 과일을 곁들이는 것을 잊지 말자. 사실 김치찌개와 밑반찬만으로 밥을 먹는 것보다는 배달 치킨에 양배추를 채 썰어 곁들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나의 비장의 무기는 시리얼을 아침 대신 저녁으로 먹는 것이다. 온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고 몸도 마음도 상쾌하게 식탁에 앉는다. 곡물은 조금, 우유는 가득 붓고 천천히 떠먹으면 더위에 시달린 몸에 서늘하게 스며든다. 복숭아나 자두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삶은 계란이라도 곁들이면 영양 균형도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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