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독과점│② 한국 천만 영화의 일곱 가지 법칙

2017.08.08
한국 영화 중 천만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총 12개다. 각각 다른 주제와 배우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 영화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우연이라고만 말하기엔 꽤 많이 겹칠 정도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군함도’를 포함해, 지금 영화산업이 가장 많은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시하는 어떤 요소들.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인물을 재해석한다.

한국 천만 영화 12편 중 약 1761만 관객으로 1위를 기록한 ‘명량’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스크린에 옮겼다. 그 밖에 ‘국제시장’, ‘암살’,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왕의 남자’도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인물을 재해석했다. 실재하는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면 별다른 부연설명이 없어도 스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캐릭터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다. 최근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개봉 전에 큰 화제를 모을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한다.

결정적 위기를 극복하는 평범한 백성 혹은 시민들이 자주 등장한다. ‘명량’에서 회오리에 끌려 들어가는 대장선을 구해낸 것은 보잘 것 없는 나룻배에 의지한 백성들이었다. ‘부산행’에서는 상화(마동석)와 석우(공유), 영국(최우식)은 물론, 기장과 노숙인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다른 사람들을 지켰다. ‘해운대’에서는 해체됐던 가족들이 한 마음으로 쓰나미에 맞서는 모습을 그렸고, ‘괴물’에서는 평범한 가족들이 괴물을 처단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들을 감정이입하게 만들며, 평범한 사람들도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또한 ‘가족이자 시민으로서의 정의로운 행동’은 한국 천만 영화가 주는 가장 직관적인 교훈이다.

아버지가 희생한다.

한국의 천만 영화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아버지의 희생과 고독은 가족의 행복과 연결된다. ‘국제시장’에서는 어두운 방에서 혼자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덕수(황정민)와 바로 옆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한 화면에 담아내기도 했다. 또한 ‘베테랑’에서는 배기사(정웅인)가 밀린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 아들이 보는 앞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류승룡)가 딸의 미래를 위해 억울한 죄를 뒤집어썼다. ‘부산행’에서는 딸에 대한 석우(공유)의 사랑이, ‘괴물’에서는 희봉(변희봉)이 괴물에게 당하기 전까지 가족에게 도망치라고 하는 모습이 클라이막스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반면 여성 가족 구성원들은 이들의 보호를 받거나 전형적인 역할에 그친다. ‘암살’과 ‘베테랑’에서 진경이 연기한 캐릭터들이 그나마 이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 다만 이 캐릭터들 역시 분량은 적었다.

권선징악이 뚜렷하다.

‘명량’에서 조선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구루지마(류승룡)는 이순신의 칼에 목이 베이고 효시까지 당한다. 반면 이순신의 능력을 잘 알고, 실제 장수로서 그를 존경하기도 했던 와키자카(조진웅)가 패배하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베테랑’에서는 재벌 2세 조태오(유아인)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다 불굴의 의지로 그를 쫓아온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맨주먹에 무너지고, ‘암살’의 친일파 염석진(이정재) 역시 무죄를 선고받고 뻔뻔하게 좋아하다 옛 동지들의 손에 사살 당한다. ‘부산행’에서 끊임없이 악행을 저질렀던 용석(김의성)의 결말 또한 예외 없이 비참했다. 악인들의 행적을 길고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관객들의 긴장감과 분노를 자아내고, 마지막에는 확실하게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다.

화려한 액션이 필요하다.

‘명량’에서는 한 시간여 동안 박진감 넘치는 해상전투를 그려냈고, ‘암살’에는 강인국(이경영)의 자동차를 쫓는 추격전과 캐릭터 플레이가 돋보이는 미쓰코시 백화점 전투 등 다양한 액션이 등장했다. 재난 상황을 다룬 ‘해운대’와 ‘부산행’에는 각각 물과 좀비라는 대적할 수 없는 상대에 맞선 스펙타클한 액션이 펼쳐졌다. 또한 ‘베테랑’에서는 서도철(황정민)과 조태오(유아인)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난투극을 벌였고, ‘도둑들’에서는 와이어 액션이 화제가 됐다. ‘괴물’의 액션씬은 가족들 간의 연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가족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낸다면, 액션씬은 오락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천만배우’가 출연한다.

배우 오달수는 한국 천만 영화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이다. 특히 ‘국제시장’과 ‘베테랑’에서는 모두 황정민과 페어를 이루어, 주인공을 특유의 유머나 융통성으로 보완해주는 동료를 연기했다. 유해진, 조진웅, 김의성, 김해숙 등의 배우들 역시 자주 천만 영화에 얼굴을 비춘다. 주연은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등 검증을 거친 배우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여러 작품들을 통해 쌓아온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관객들에게는 당연히 연기를 잘하리라는 기대와 믿음을 준다.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드는,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대형 배급사가 배급한다. 그러나….

한국 천만 영화 12편 중 CJ 엔터테인먼트는 5편을 쇼박스, NEW는 각각 3편씩을 배급했다. 이들은 롯데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한국 4대 배급사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CJ 엔터테인먼트는 한국 멀티플렉스 체인 중 가장 점유율이 높은 CJ CGV와 같은 계열사다. 얼핏 대기업 배급사가 자사 멀티플렉스 체인을 통해 스크린을 독점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과 무관한 쇼박스, NEW의 흥행까지는 설명이 되지 않을 뿐더러 CJ CGV에 이어 두 번째로 점유율이 높은 롯데시네마와 같은 계열인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아직 천만 영화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군함도’ 사태 역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 6일 정윤철 감독이 SNS를 통해 “돈 앞엔 같은 패밀리라도 팔을 아예 꺾어버린다. ‘택시운전사’를 최대한 깔기 위해 같은 그룹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한 대작 ‘군함도’를 개봉 2주차에 과감히 교차 상영하는 CGV 극장들의 쏘 쿨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듯, 배급사와 극장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영화가 벌어들일 수익이다. 수익을 위해 개봉 첫 주에 스크린을 천개 이상 확보하고, 흥행이 안 되면 어떤 영화라도 조속히 끌어내린다. 그 결과 관객들은 ‘누군가 천만 영화로 점찍은 작품’만을 볼 수 있고, 검증된 흥행의 요소를 갖춘 영화들이 주기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국 천만 영화들이 서로 비슷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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