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독과점│① ‘천만 영화’ 만들기

2017.08.08
해묵은 논쟁이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군함도’(감독 류승완)가 개봉 첫날 스크린 2168개(교차 상영 포함,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를 싹쓸이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다시 떠올랐다. ‘괴물’(2006)을 시작으로 매년 여름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개봉할 때마다 불거지고 있는 문제라 새로울 건 없지만, 전체 스크린 수 2700여 개 중에서 2천 개가 넘는 스크린을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군함도’를 배급한 CJ 엔터테인먼트는 “제작사도, 배급사도 스크린 배정에 관여하지 못한다”며 논란의 원인과 책임을 극장 탓으로 돌렸고, CJ CGV는 “70%에 이르는 예매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관객이 원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정한 것이지, 자사 계열사 영화라고 밀어준 건 절대 아니”라고 큰 문제 될 게 있냐는 반응이다. 좋은 먹잇감을 만난 관객과 언론은 “자사 계열사 영화 몰아주기가 문제니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연일 몰아붙이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스크린 독과점은 대기업 수직계열화보다 와이드릴리즈로 인한 폐해에 더 가깝다(그렇다고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아주 관련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와이드릴리즈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전략에 꼭 필요한 배급 방식이다. ‘퇴마록’(1998, 감독 박광춘)을 기점으로 탄생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더 크게 (만들고), 더 많이 (스크린을 잡고), 더 빨리 (수익을 거둔다)’라는 전략을 가지고 지금까지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이 전략 중에서 스크린을 최대한 많이 잡는 배급이 와이드릴리즈다.

지난 몇 년간 스크린 숫자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와이드 릴리즈의 위력은 배가되었다. 그것은 흥행 공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 이슈를 등에 업고 긴 시간 동안 관객을 모았던 과거의 ‘천만 (관객이 든) 영화’와 달리 최근의 ‘천만 영화’는 많은 홍보·마케팅 비용(P&A비)을 쏟아부어 입소문을 나게 한 뒤(예매율을 올린 뒤) 스크린 1000개 이상을 확보해 단시간에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는 경향이 있다. 영화 정책 전문가인 원승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장은 “천만 영화가 아니더라도 개봉 첫 주 스크린 천 개 이상 확보한 영화들 중에서 최소한 관객 500만 명 이상 불러 모은 작품이 많다. 이 점을 고려하면 와이드릴리즈가 ‘천만 영화’의 필수적인 요소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몇 해 전 모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튜디오 중역과 마케팅 책임자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역은 “이번 주에 무조건 천만이 되게 하라”고 마케팅 책임자에게 지시했고, 그 말이 있은 뒤 그 영화는 정말 천만 명을 불러 모았다. 그걸 보면서 스튜디오의 의지가 강하면 천만 영화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천만 영화’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만들어졌다’면, 최근의 ‘천만(혹은 500만 이상 동원한 흥행) 영화’는 대기업 투자배급사와 극장이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마어마한 마케팅 물량을 쏟아부어 ‘만들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만든다고 해서 다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런 과정에서 상영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극장에서 내리는 영화들이 생긴다. 독립·예술 영화들뿐만 아니라 같은 상업영화조차도 최소한의 상영일 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갔다. 매주 많게는 열 편 이상의 개봉작들이 한정된 스크린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현재의 영화 산업 구조는, 수혜자가 있다면 그만큼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한 영화감독은 “자신이 (스크린 독과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 때마다 영화인 대부분이 함구하는 편”이라며 “누구에게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욕망이 있는 까닭에 특정 영화나 영화인이 아닌 영화인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군함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거세지면서 영화감독들 사이에서 ‘개봉 영화 스크린 상한선’을 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매년 제작비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시장 경쟁이 과열되어 있으니 극장, 배급사, 투자사 플레이어들이 모여 현실적인 스크린 한계선을 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스크린 하나에 영화 한 편만 상영되던 과거의 극장과 달리 현재 멀티플렉스는 상영관 하나에 시간대별로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어 스크린 숫자만 가지고 스크린 독과점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군함도’가 스크린 수와 상영 회차가 역대 개봉한 영화 중에서 가장 많지만, 스크린 점유율과 상영 회차 비율은 2014년 개봉했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각각 36.2%(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와 56.9%를 기록하며 역대 개봉작 중에서 가장 높다. 그리고 좌석 수는 ‘스파이더맨: 홈 커밍’이 2972만 7379개를 차지하며 가장 많다. 원승환 사무국장은 “멀티플렉스 상영 방식이 과거에 비해 복잡해지고 달라졌기 때문에 스크린 숫자뿐만 아니라 스크린 점유율, 상영 회차 비율, 좌석 수 등 다양한 각도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극장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정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준다는 점에서, 스크린 독과점은 관객의 다양한 영화 관람 기회 박탈 문제까지 제기할 필요도 없이 엄연한 불공정거래에 해당된다. 현재 정부와 국회에서 스크린 독과점을 방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의원 시절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영비법 개정안)에 따르면, 극장은 시간, 요일별 관객 수, 상영시간대 등을 고려해 상영관을 공정하게 배정해야 하고, 복합상영관의 영화상영업자는 같은 시간대에 상영하는 영화 중 동일한 영화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해서는 안 된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는 지난 6월 1일 ‘영화산업에 대한 시장 분석 용역’ 연구를 미래산업전략연구소에 의뢰한 상태다. 현재 영화시장을 연구, 점검해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에 따른 불공정 거래가 있었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영비법 개정안 상정과 표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행정명령이나 제재 조치가 먼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간 기업(멀티플렉스)의 자율적인 경영에 맡겨온 문제지만,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는 만큼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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