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있는 그녀’, 파국의 결말이 남긴 인간의 품위

2017.08.21
JTBC ‘품위있는 그녀’는 하나의 입성기와 하나의 탈주극이 교차하는 드라마다. 처절한 가난 속에서 태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류사회에 입성하려는 박복자(김선아)와 화려한 상류사회에 안주하다가 그 허상을 깨닫고 자유를 찾아 탈주하려는 우아진(김희선)의 두 이야기가 종종 대립하고 때로 겹쳐진다. 양극단 계층에 속한 두 여성의 이야기가 흔히 서로 뺏고 빼앗기는 생존게임 구도로 전개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각자가 선택한 방향으로 충실히 걸어가다가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먼저 속도를 낸 쪽은 박복자의 입성기다. 대성펄프 안태동(김용건) 회장의 간병인으로 처음 등장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집안과 회사를 장악해가는 그의 모습은 거의 폭주에 가까울 정도다. 이러한 장악은 기업의 사유화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한국적 현실과 박복자의 남다른 생존력이 맞물렸기에 가능하다. 고아 출신의 박복자는, 입양과 파양의 아픔을 겪었고, 투옥생활과 유흥업소까지 극한의 환경에서 혈혈단신으로 생존력을 단련해왔다. 특히 삶의 최저선을 경험한 자 특유의 통찰력은 큰 힘이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 신은 본능적으로 사방을 통찰할 수 있는 놀라운 생존 능력을 주시기도 한다”는 내레이션처럼 상류사회의 속성을 꿰뚫어보는 시선은 단순히 박복자의 처세법만이 아니라 이 작품을 날카로운 세태보고서로도 읽게 하는 힘이다.

박복자의 통찰이 담긴 내레이션을 통해 강남의 다양한 인간 군상 이야기가 교차 전개되는 것은 이 작품의 백미다. ‘부자들의 허세와 특권의식을 이용해 돈을 버는 머리 좋은 중간계급’인 반찬집 풍숙정과 지하경제를 주름잡는 ‘7공주 모임’을 묘사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박복자는 계층사다리의 여러 단계를 이동하면서 ‘밑바닥 것들이든, 돈 있는 것들이든’ 부를 향한 탐욕에 지배된 표정은 똑같이 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박복자와 우아진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과거, ‘원하는 게 뭐냐’는 우아진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던 박복자는 올라갈 수 있는 상류의 정점을 체험한 뒤에야 그 허상을 실감하게 된다. 그는 우아진의 질문으로 돌아가 진정한 욕망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우아진에게도 이 질문이 스스로를 향하는 계기가 찾아온다. 그의 삶은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그 역시 실은 박복자 못지않게 치밀한 전략과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아침 7시부터 헬스, 요가, 갤러리 미팅을 거쳐 딸 뒷바라지까지, 그의 일정은 이른바 부유층의 ‘사모님’이 되기 위한 매뉴얼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 내심 ‘브런치 모임’의 다른 속물 멤버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나, 우아진의 실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50만원 들여 1000만 원짜리 명품 옷을 똑같이” 복제해 입으면서도 “카피가 아닌 레퍼런스”라고 합리화하는 말은 우아진의 삶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준다. 박복자와의 만남은 그 삶의 균열을 발견하는 계기였을 뿐이다. 그토록 자신했던 안목으로 선택한 박복자의 모습이 실은 연기라는 것이 드러나고, 설상가상으로 강력 추천했던 신인 화가 윤성희(이태임)마저 남편과 외도하자 우아진의 세계는 급격히 흔들린다. 그렇게 박복자에게 던진 질문은 아진에게도 돌아온다. 그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아등바등 살아왔을까.

주목할 것은 같은 전환점에서 우아진과 박복자의 결말이 다른 길로 간다는 데 있다. 우아진은 남편의 부가 안겨주는 안락함에 의존해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을 포기해왔음을 깨닫고 결혼과 함께 접어둔 꿈을 다시 펼친다. 우아진은 무사히 그 폐쇄적 특권사회로부터 탈주하는 데 성공한다. 반면 박복자는 파국의 결말을 피하지 못한다. 이 비극은 단지 박복자의 폭주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그 죽음에는 시대의 그늘이 반영되어 있다. 박복자는 우리사회의 속물주의가 배제하고 차별해온 요소들로 뭉쳐진 존재였다. 가난, 출신, 학력, 성별, 외모 등 극 초반부터 박복자를 향했던 온갖 차별의 언어는 이 시대의 거의 모든 혐오를 압축하고 있다. 박복자는 모두가 죽이고 싶어 하는 존재였고, 죽은 뒤에도 애도 받지 못하고 유령으로 떠돈다. 그가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안회장 집에 불러일으킨 파국은 다른 상류사회 집안에 공포와 불안요소로 남아 있다. 박복자가 우아진을 동경하게 된 계기가 그가 보낸 존중의 태도였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약자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우아진만은 박복자에게 예의를 지켰다. 그 존중의 자세가, 바로 인간의 품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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