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오버워치'에서 벌어지는 전투

2017.08.28
어렸을 때부터 내 주변에 있는 여자 친구들은 항상 게임을 했다. ‘같이 하면 더 재미있다’라는 친구들의 말에 어렸을 때부터 ‘마비노기’, ‘카트라이더’, ‘크레이지 아케이드’, ‘그랜드체이스’, ‘메이플스토리’ 등등의 게임을 하면서 자라왔다. 그러던 내가 ‘오버워치’를 처음 접한 것은 ‘오버워치’가 나오기도 전인 메이 캐릭터가 개발될 때부터였다. 친구가 메이의 빙벽 기술을 보여주면서 “이거 너무 재밌어 보이지 않냐, 벽을 세우고 이걸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신기할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 당시 ‘사이퍼즈’를 하고 있었던 나에게 ‘오버워치’의 빠른 진행, 미래적인 배경, 1인칭 시점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고 ‘FPS? 내가 이런 걸 어떻게 해’라는 생각은 낮은 진입장벽에 금방 사라졌다. 게다가 (황보, 흑누나로 소비되는) 어두운 피부색에 상관없이 잡지 전면에 얼굴이 실릴 정도로 성공한 광축가인 시메트라, (‘엉덩이 못잃어’ 핀업걸 포즈로 포즈가 변경된) FPS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오버워치의 주인공 캐릭터인 공식 레즈비언 트레이서, (실제 비만인을 표현했다고는 볼 수 없는, S라인에 보기 좋을 정도로만 처비한) 아시안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난 뚱뚱한 여성 과학자 캐릭터 메이와 같은 멋진 여성 캐릭터들은 어떤가!

별다른 선택지 없이 친구들과 함께 여성 청소년을 성상품화하는 국내 게임만 주구장창 해 온 나에게 ( ) 안의 사항들은 오버워치 입문에 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단순하고 작은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임 내에서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그 시선은 곧바로 게임 밖에서 일어나는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게임 내에 있는 보이스 채팅 기능을 깜빡하고 끄지 않은 채로 숨소리를 내었다가 “숨소리가 여자다”, “뚱뚱한 년아 살이나 빼”라는 말을 들어봤고(참고로, 이 정도는 매우 귀여운 수준이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심지어 복무신조를 외웠다. “너 보지년이지?”라는 악의에 “그러는 너는 군대 갔다 왔냐?”로 맞받아치기 위해서.

이런 일들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시대에 상관없이 여성 게이머에게 세이프존은 없었다. 게임의 종류와 상관없이 이런 일들은 계속 반복됐고, 나는 내가 운이 없어서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이것이 공론화되더라도 “어느 길드의 누가 그랬다더라” 하는 가십거리로만 존재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예민한 년’이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고, 다 해결했다 해도 나중에 가서 “걔 사실 그거 거짓말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곤 했다. 결국 나는 작년 촛불 집회 페미존에서 ‘(2070년 기준 19세) 디바가 게임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인 전국디바협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디바에 메갈 묻히지 마라’라는 류의 온갖 악성 댓글과 게시글들(현재 아카이빙한 PDF 자료는 약 400건이 넘는다)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버워치의 디렉터인 제프 카플란은 다이스 서밋(D.I.C.E. summit) 행사에서 전국디바협회가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가능성을 봐야 한다(Never accept the world as it appears to be. Dare to see it for what it could be)”라는 게임 안의 신념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언급했다. 그에 이어 미국의 디바 성우인 샬럿 청은 “한국에서 디바가 페미니스트의 심볼로 쓰이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며, 디바가 젊고, 섹시하고, 최고인 동시에 다정하고 귀엽고 똑똑하고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맘에 든다”라고 언급했다.

나는 그래서 ‘오버워치’의 신념대로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가능성을 봤” 다. 하지만 세상은, 하다못해 블리자드도 그리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 발언 이후 블리자드는 여성 게이머들이 겪고 있는 폭력들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했는가? 메르시를 ‘보르시’(캐릭터 이름인 메르시에 보지를 합성한 단어)라고 칭하며 송하나를 ‘송폭행’(캐릭터 이름인 송하나에 성폭행을 합성한 단어)했다고 낄낄대는 유저들, 남성 캐릭터들과 비교해 확연히 다른 여성 캐릭터들의 비현실적인 몸매. 시즌마다 빼놓지 않고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의 성적대상화, 성상품화 스킨과 포즈들.  ‘No boys allowed’가 ‘미안해요, 오빠들’로 바뀌는 블리자드 코리아의 독보적인 번역까지. 게임 내 여성혐오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말로 블리자드는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에게 가능성을 보여주었는가? 과연 블리자드가 꿈꾸는 미래의 “가능성”은 어떤 모습일까? 2017년. 블리자드와 오버워치는 아직, 대답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에 상관없이, 나를 비롯한 여성 게이머들은 계속 전투를 벌이고 있다. ‘오버워치’ 안에서도, 밖에서도.



목록

SPECIAL

image 지금, 초등학교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