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어떤 여성 뮤지션들

2017.08.30
2017년은 아이돌이거나 아이돌이었던 여성 뮤지션들에게 상징적인 해로 남을 듯하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태연과 원더걸스 멤버였던 선미가 솔로로 컴백해 음원차트에서 둘 다 좋은 성적을 거뒀고, 2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한 아이유는 차트를 휩쓸었으며 4년 만에 컴백한 이효리와 JTBC ‘효리네 민박’에 출연 중이다. 그리고 지난 29일 컴백한 현아는 지난주 인스타그램에 과거 원더걸스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미의 신곡 ‘가시나’를 듣고 있음을 인증했다. 이효리가 핑클로 활동하던 1998년, 또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데뷔해 함께 활동하던 2007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걸그룹 멤버는 아니었지만, 아이유는 회사의 기획을 통해 다듬은 ‘여동생’ 캐릭터가 되어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고 노래하며 최고의 인기 아이돌이 됐다. 그런데 그 아이유가 올해 앨범 ‘Palette’의 타이틀곡 ‘팔레트’에서 그 시절을 ‘긴 머리보다 반듯이 자른 단발이 좋아 / 하긴 그래도 좋은 날 부를 땐 참 예뻤더라’라고 회상한다. 이어 타이틀곡 내내 자신의, 또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호불호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선미가 ‘24시간이 모자라’ 시절과 지금이 무언가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선미는 ‘가시나’에서도 ‘24시간이 모자라’처럼 섹시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시나’ 뮤직비디오에서 입가에 우유를 묻힌 채 섹시한 분위기를 보여주던 선미는 이내 자신의 공간을 뛰어다니고, 마치 손가락으로 욕설을 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24시간이 모자라’의 퍼포먼스를 대표했던 엎드려 추는 춤은 ‘가시나’의 퍼포먼스 도입부에서도 반복된다. 하지만 선미는 이내 일어나 관객을 향해 총을 쏘는 손짓을 한다. 섹시한 판타지를 일으켰던 동작이 이번에는 ‘가시나’로 이름 붙인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남자 아이돌이 자아를 내세운 솔로 활동을 통해 이른바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것은 이제 하나의 공식처럼 여겨진다. 지드래곤, 지코, 랩몬스터 등 롤모델로 삼을 사례도 많다. 반면 여자 아이돌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모험적인 시도로 여겨졌다. 가인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섹슈얼리티와 결합해 보여주며 꾸준히 대중적인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속한 브라운아이드걸스는 걸그룹 중 가장 독특한 영역에 있었고, 솔로로 발표한 신곡들은 얼마나 더 파격적인 콘셉트를 보여줄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곤 했다. 이효리가 앨범 ‘Monochrome’의 ‘미스코리아’와 ‘Bad Girl’ 등으로 타인의 시선을 받는 여성이자 스타로서의 자신에 대해 노래한 것은 아이돌에서 완전히 거리가 멀어진 뒤다. 반면 아이유는 ‘밤편지’처럼 대중이 기존의 자신에게 기대하는 곡들과 함께 ‘Palette’를 발표했다. ‘Palette’ 역시 심심해 보일 만큼 듣기 편안한 팝의 형식을 띠었다. 선미는 곡의 하이라이트에 트렌디한 비트를 내세우면서, 섹시한 가수로서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한다. 현아 역시 여전히 섹시하고, 때로는 신체 노출로 논란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제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대놓고 ‘내가 잘나가서 그래’라며 맞받아치게 됐다. 현아의 노래 ‘어때’의 가사는 ‘같잖은 편견 속에 날 맞추지 마 재미없어’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데뷔 10년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이 시간 동안 아이유, 선미, 현아, 태연은 모두 재계약을 했거나, 소속사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 제작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올라가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또한 선미는 원더걸스에서 탈퇴한 뒤 솔로로 극적인 재기를 했고, 원더걸스에 재합류하며 이전과 전혀 달라진 음악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중은 ‘Tell Me’를 부르던 시절의 선미와 ‘가시나’ 사이에서 선미가 보여준 변화의 맥락을 알고 있다. 태연의 ‘Fine’은 ‘머릴 질끈 묶은 채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며 실연을 되새김질하는 여성을 묘사한다. 소녀시대의 타이틀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하지만 소녀시대의 멤버들은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일상, 때로는 사랑에 대해 말했다. 그 결과 ‘Fine’처럼 소녀시대의 멤버가 실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한국에서 여자이자 아이돌이며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음악에 반영할 수 있게 된 첫 세대다. 그들의 앞 세대는 이효리를 제외하면 아이돌의 스타성과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동시에 이어나갈 수 없었다. 보통의 경우 팀은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해체됐다. 시장은 이소라 같은 일부 아티스트에게만 여성이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에 상업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세대에 이르러, 여성 아이돌은 스스로 대중의 한가운데서 ‘나’를 표현하는 것을 그들의 기준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들이 인스타그램을 그들의 중요한 홍보 창구로 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현아는 자신의 신곡 퍼포먼스를 인스타그램에서 미리 선보였고, 선미가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는 자신을 찍은 사진들은 솔로 활동의 비주얼 스타일과 연결돼 있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에 대해 말하고, 선호하는 사진과 이슈를 전달하며, 그것을 결과물에 반영한다. ‘Fine’의 뮤직비디오에서 태연의 집으로 설정된 공간은 현실의 여성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약간 연출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걸그룹의 멤버가 아닌, 현실의 여성이 겪을 법한 이별에 어울리는 공간. 걸그룹도, 힙합도 아닌 어떤 세계의 감성과 취향이 음악산업의 주류에 들어온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새로운 일들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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