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구찌’가 된 아이돌

2017.09.01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의 별명은 ‘인간 구찌’다. 명품 브랜드인 구찌의 의상을 찰떡같이 소화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블랙핑크가 지난 6월 ‘마지막처럼’으로 컴백할 때 각종 음악방송에서 입었던 의상은 방송 직후 “심지어 니삭스까지 구찌”라며 큰 화제가 됐다. 레드벨벳은 한 달 뒤 ‘빨간 맛’ 뮤직비디오에서 미우미우, 돌체앤가바나 등의 제품을 착용했고, 소녀시대도 지난달 4일 공개한 ‘Holiday’ 뮤직비디오에서 발렌시아가, 알렉산더왕, 마크제이콥스, MSGM 등을 망라했다.

아이돌이 공항 패션, 인스타그램 속 사복 패션, 매거진 화보를 넘어 음악방송·뮤직비디오에서도 명품을 입고 있는 것은 명품 브랜드에 대한 아이돌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데뷔한 지 1년밖에 안 된 블랙핑크는 유튜브 조회 수 1억 건 이상인 뮤직비디오만 네 개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5월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지드래곤은 북미 8개 도시, 유럽 5개 도시 등 전 세계 29개 도시에서의 솔로 투어를 기획할 정도로 글로벌 인지도가 높다. 명품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 역할을 해줄 아이돌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이돌 입장에서도 명품 브랜드는 다른 아이돌과의 차별화·고급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된다. 이를테면 명품 브랜드를 입은 아이돌의 음악 프로그램 영상 댓글에는 “오늘 무대의상 ㅎㄷㄷㄷ” 같은 것들이 무더기로 달리기도 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여성 팬들의 눈에 띄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러나 기획사와 명품 브랜드의 관계는 종종 파열음을 내기도 한다. 2013년 샤이니의 ‘Everybody’처럼 멤버 모두 톰브라운의 컬렉션을 맞춰 입지 않는 이상, 다양한 명품 브랜드의 각기 다른 의상은 “각각의 옷은 예쁜데 콘셉트가 생각 안 난다”는 불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를테면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지난 7월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지나치게 짧게 리폼한 3.1필립림의 원피스 때문에 ‘빨간 맛’ 안무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팬들이 “예쁘게 입히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제대로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옷을 입혀달라”며 유튜브에 항의성 동영상을 올릴 정도였다. 그저 입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격렬한 안무를 소화해야 하는 아이돌의 입장에서 명품 브랜드 의상은 자칫하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아이린이 지난 2월 3일 KBS ‘뮤직뱅크’에서 ‘루키’를 부르며 입었던 MSGM의 원피스는 같은 달 26일 러블리즈의 ‘WOW!’ 뮤직비디오, 역시 같은 달 28일 구구단의 ‘나 같은 애’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다. 직접 제작한 의상이 아닌 만큼 의상이 쉽게 겹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MSGM 외에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로 인해 화려하게 부활한 구찌 제품에 대한 쏠림 현상은 심각할 정도다. 아이유가 지난 4월 발매한 ‘Palette’ 앨범 표지 속 구찌 원피스는 5월 싸이의 ‘New Face’ 뮤직비디오 속 손나은의 원피스로 재등장하기도 했다. 한 아티스트의 이미지와 작품의 콘셉트를 결정해줄 뮤직비디오 및 무대의상이 중복되는 현상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빅뱅처럼 지난 2015년 ‘Bae Bae’ 뮤직비디오에서 10여 년 전 빈티지 명품 브랜드를 걸치지라도 않으면 의상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처럼, 요즘은 팬이 멤버들의 조합까지 결정하려는 시대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아이돌 패션도 팬들에게는 이른바 ‘DIY’ 욕구에 불을 지핀다. 단순히 예쁘고 안 예쁘고를 넘어, 안무 동작이나 입는 옷들의 브랜드 간 매치는 물론 안무와의 적합성, 계절과의 관련성까지 모두 따진다. 아무리 명품 브랜드의 제품이어도 콘셉트와 맞지 않거나 아티스트의 표현력을 제한하면 철저하게 비판한다. 난해한 패션이 이른바 ‘입덕’ 방해 요소로 꼽힐 정도로 착장에 예민하다. 그만큼 팬덤의 요구는 점점 정교하고 세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명품 브랜드의 활용은 처음에는 시선을 모으는 데 유리하지만, 자칫 그 브랜드를 입었다는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된다. 안정적으로 예쁘게 보이느냐, 아니면 보다 적극적인 시도를 할 것이냐. 아이돌의 패션에 한 번 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오고 있다.




목록

SPECIAL

image 방탄소년단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