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생리대 쓰기

2017.09.04
셔터스톡

나의 첫 생리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무렵. 팬티에 피가 검붉게 묻었으나 그게 생리인지 알지 못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엄마에게 말도 못 한 채 휴지만 몇 장 팬티 속에 개어 학교에 갔다. 점심시간이었던가, 엄마가 찾아왔다. “뒤돌아봐.” 엉덩이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엄마는 내 손에 생리대를 쥐여 주며 당장 화장실에 가 이걸 팬티에 붙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상했다는 듯, 집에서 챙겨온 새 바지도 건네며 갈아입으라고 했다.

고통의 시작이었다. 생리는 불규칙적이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생리는 피부 트러블과 우울감(생리전 증후군)으로 일종의 예고는 하나, 그것이 정확히 ‘몇 날 몇 시 몇 분’에 터진다는 것까지 친절히 알려주진 않았다. ‘할 것 같은’ 기운이 올라오면 늘 생리대를 차고 다녔는데, 한여름엔 다리 사이에 늘 땀이 찼다. 생리가 터지지 않으면 ‘그냥 버려야 하는’ 생리대가 돈 때문에 너무 아까워 짜증이 났다. 할 수 있다면 쥐어짜서라도 생리를 하고 싶었다. 생리대가 아까워서 화장지를 댄 적도 많다. 그러나 화장지는 땀에 절어 쉽게 너덜너덜해졌고 무엇보다 고정되지 않았다.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한 달을 기다려 생리를 하면 ‘해치웠다’는 안도감에 기쁨이 일었다. ‘앞으로 최소 3주는 평안하겠군.’

부모님과 같이 살던 나는 엄마가 사 온 생리대를 썼다. 언젠가부터 생리대는 릴리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드럭스토어에서 싸게 파는 걸 봤다. 저렴하니까, 엄마도 사 왔으리라. 나는 여느 때처럼 집에 있는 그것들을 사용했다. 생리통이 극심해졌다. 누가 내장을 파먹는 것 같았다.

탐폰도 무서워 사용하지 못했던 내가 생리컵을 쓰게 된 건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생리통 때문이었다. 지난해 8월, 정확히 아랫배를 중심으로 신체가 절단될 것 같은 고통이 덮쳐왔다. 한여름에 오한을 느끼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던 그날 아침, 나는 서랍장으로 기어가 몇 해 전 샀으나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면생리대를 꺼내 릴리안을 떼어낸 자리에 부착했다. 30분 후, 거짓말처럼 생리통이 사라졌다. 생리대와 생리통의 상관관계는? 희미했던 의심이 진해졌다.

이후 생리컵을 쓰니 생리통이 사라졌다. 그러나 생리대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건 아니었다. 양이 많은 첫째, 둘째 날엔 생리혈이 새서 생리대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릴리안이 있으니 필요할 땐 릴리안을 썼다. 찝찝하긴 했지만 면생리대를 쓰기엔 번거로웠다. 생리 중에 쭈그려 앉아 그 핏덩이들을 빠는 경험은 지난 한 번으로 족했다. 물론 생리혈이 새는 이유를 부지런히 찾아보면 됐지만, 모든 게 귀찮았던 나는 생리컵을 쓰면서 생리대를 겸했다. 그리고 올해 8월 중순, ‘릴리안 사태’가 터졌다. 각종 기사와 SNS에서 여성들이 쏟아내는 글들을 읽으며 최근 몇 년간 내 몸을 긁었던 생리통을 떠올렸다. 정말, 관련이 있는 걸까.

생리컵을 쓴 뒤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나는 생리컵 찬양론자가 되어 주변에 이를 권했다. 그러나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작 내 주변만 해도 장애여성들은 생리컵 사용이 어려웠다. 릴리안 사태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이 생리컵을 쓴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전쟁터에서 홀로 도망쳐 나온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독성물질이란 걸 알면서도 써야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정보조차 차단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생리대는 여러 개의 선택지(생리대, 면생리대, 탐폰, 생리컵 등) 중 하나지만 어떤 이에게 선택지란 고작 ‘릴리안을 쓸지, 화이트를 쓸지, 좋은느낌을 쓸지’인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대체재가 발명되어도 여전히 생리용품의 기본값은 일회용 생리대다.

여성이라면 40~50년을, 생리전 증후군까지 포함하면 한 달 중 열흘간 생리를 경험한다. 생리 전 올라오는 우울감과 자해충동, 생리 기간 내 지속되는 설사, 버스와 지하철에서 ‘냄새날까’ 어디 서야 할지 몰라 서성였던 발걸음들. 이 경험들은 왜 발화되지 못한 걸까. 생리를 정확히 ‘생.리.’라고조차 발음하지 못한 날들이었다. 물음표를 잘라내고 사회가 근거 없이 퍼뜨린 편견들을 집어삼켰다. 내 몸에서, 여성의 생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이 경험들을 꿰어낼 사회적 언어가 지금 우리 사회엔 터무니없이 부재하다.

집엔 몇 개 남지 않은 릴리안 생리대가 있다. 물증 없이 심증만 확실하다. 릴리안 생리대를 환불해준다지. 손바닥보다 작은 이것에 온 생의 수치심이 끌려 올라온다. 지금 난 자궁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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