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계절성 우울증에 대하여

2017.09.11
셔터스톡

“Winter is coming.” 겨울이 다가온다. 겨울에는 동물들의 활동량이 줄어든다. 일조량이 줄고, 기온이 떨어져 생존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먹을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존에 가혹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동물들은 겨울잠을 택하기도 한다. 문명 이전의 인간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겨울이 되면 활동량이 줄고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줄어든 식량에 맞추어 칼로리 소모를 줄이려는 환경 적응의 일환일 수 있다. 감정 변화에 따른 정신 에너지 소모, 그리고 육체 활동에 따른 신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여 겨울을 버텨내려는 것이다. 문제는, 21세기 초반을 살아가는 중위도 지방의 일부 도시인에게도, 계절에 따른 기분 및 활력 저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겨울이 왔다고 챙겨야 할 일상의 무게가 가벼워지거나, 직장에서의 업무 할당량이 75%로 줄어드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데도.

계절성 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은 우울 증상의 시작과 회복이 특정 계절과 맞물리는 현상이 2년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봄, 여름의 에피소드도 일부 보고되지만, 계절성 우울증의 가장 흔한 패턴은 ‘winter blues’, 즉 겨울 시기의 우울증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하면, 이 겨울 우울증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겨울 우울증은 일조량이 부족한 고위도 지방에 사는 사람의 1~10%에서 발생하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

계절성 우울증에서도 우울한 기분, 흥미 및 의욕 저하, 집중력 또는 결정 능력 저하, 죽음에 대한 생각 등 일반적인 주요 우울증의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계절성 우울증에서 주로 많이 보고되는, 특징적인 증상들이 있다. 겨울에 대한 동물적 반응, 즉 활력 저하와 무기력감, 답답함과 음식에 대한 집착 등이 그것이다. 굉장히 피곤하고 나른하다. 몸이 무겁고 손가락을 까딱할 에너지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을 만큼 힘들고, 낮이 되면 졸리고 정신이 맑지 못하다. 막상 밤에는 잠들기 어렵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하루 10시간 이상 너무 많이 자기도 한다. 집중력이 유난히 떨어져 업무나 일상생활에 몰두하기가 힘들고, 머리에 구름이 낀 듯한 흐리멍덩한 느낌이 자주 든다.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많이 나고 참기가 힘들다. 외롭고, 타인의 말이나 평가에 민감해진다. 때로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면, 빵, 과자 등 단것과 탄수화물 섭취에 전보다 더 집착하게 되며, 평소보다 많이 먹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체중이 느는 경우가 많다. 매사에 흥미가 떨어지며, 특히 성에 대한 관심과 활력이 매우 저하된다.

여기서 잠깐!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혹시 생리전 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 증상과 비슷하지 않나요? 라고 물어보는 분이 계시다면, 빙고! 생리전 증후군 또한 일종의 비정형적인 우울증으로서, 계절성 우울증과 증상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여성들도 꽤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생리전 증후군이 생리 주기에 따른 에스트로겐 변화에, 계절성 우울증은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기분과 컨디션이 영향을 받는 증상이라는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태라고, 원인을 알아야 이에 대비하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계절성 우울증의 원인은 다른 우울증의 원인이 그렇듯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일조량의 감소가 우울감과 활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와 작용을 저해하는 것이 주된 기전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일조량 감소와 활동 감소는 숙면을 취하게 해주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에도 영향을 주어, 몸의 일상적 리듬을 망가뜨리고 컨디션을 저하시킨다. 그러므로 계절성 우울증은 겨울을 이겨내는 방향, 즉 빛과 외부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낮이 짧아졌지만 늦지 않게 일어나려 노력하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좋은 치료법이다. 자연광과 신체활동 두 가지가 모두 뇌혈류를 증가시키고, 기분과 컨디션에 도움이 되는 신경전달물질을 적절히 조율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외부활동을 할 여건이 안 된다면 인공적인 광치료가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라이트박스, 라이트바이저(light visor), 돈 시뮬레이터(dawn simulator) 등 다양한 양식의 광치료 기기도 판매되고 있다. 광치료가 효과가 없거나 증상이 심각하다면, 프로작처럼 세로토닌 대사를 조율하는 우울증 치료제가 도움이 된다. 왜곡된 인지와 습관을 개선하는 인지행동치료도 효과가 있다. 비타민D 보충제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으나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기분 저하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면, 이 모든 것에 앞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찾아 체크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계절성 우울증에 적응하고 맞서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들지 않는 외부 세계의 변화에 맞서 나의 루틴과 리듬을 지키는 일이다. 이번 겨울에는 햇살 좋은 날마다 운동화 끈을 매고, 가볍게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안주연(정신 건강의학과 전문의)
삶, 사랑, 가족 등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우울, 불안, 중독을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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