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는 남자만 쓸까?

2017.09.11
제 전작들을 보면 알겠지만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번 논란을 겪으며 이해도가 떨어지는 게 아닌, 여성에 대해 내가 아예 무지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의 말이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비슷한 발언을 한 남자 예술가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여성을 모르는 것이 딱히 문제가 되는 것 같진 않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차기작이 준비되어 있으며, 그 차기작 속엔 상상으로 빚어낸 여성, 즉 냄새나 성기 등으로 치환된 여성이나 습속의 틀 안에서 평면적으로 작동하는 여성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얼마 전 공개된 카카오페이의 광고에서도 이런 식으로 기능하는 여자들을 볼 수 있었다. 거래수수료 없이 간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송금서비스를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상황들을 보자. ‘청첩장’ 편에서는 생전 연락을 하지 않던 여자가 불쑥 친구에게 카톡으로 안부를 묻더니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다. 축의금 달란 소리다. ‘단톡방’ 편은 전날 밤 술자리에서 친구들의 ‘굴욕샷’을 찍은 여자가 즉시 ‘n빵’을 보내지 않으면 사진들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고, ‘소개팅’ 편에서는 방금 끝난 소개팅에서 밥을 샀던 남자가 여자에게 카톡을 보내 밥값을 더치페이 하자고 한다. 여자는 비호감이 될 만한 사건을 일으키거나, 한 방 먹는 ‘얻어먹는’ 존재인 셈이다.

각 에피소드는 한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해묵은 정설을 보여준다. 여자의 우정은 얕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여자는 데이트 비용을 쓰지 않는다. 이 광고들이 문제가 되자 카카오 커뮤니케이션팀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돈을 주고받는 관계나 상황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재미있게, 위트 있게 만들려다 보니” 이런 설정을 했고, 여성 비하의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세 편의 광고를 위트 있다고 웃어넘길 사람들은 주로 누구일까? 만든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물이 한 방향, 부정적인 여성 이미지로 쏠려 있다면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여성혐오나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의도를 갖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런 지적들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이번 카카오페이 같은 광고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생각해볼 만하다. 한국 광고 산업의 현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광고대행사는 여성 구성원 숫자가 다른 기업에 비해 많은 편에 속했다. TV의 영향력과 함께 트렌디한 직종으로 분류돼 실력 있는 여성 인력이 몰렸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신입사원 채용이 급감하면서 과거와 달리 광고대행사도 과거보다 더욱 남성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50명 뽑던 신입사원을 10명 뽑는 것은 여성 신입사원 수가 10-13명에서 2-3명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어렵사리 취업 문턱을 넘었다고 해도 결혼, 출산 등의 허들을 넘다 보면 팀 전체에 여성이 한두 명 있거나 아예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성 팀원과 함께 여성 팀장이 줄어드는 건 물론이다. 이런 ‘호모소셜’한 구조 안에선 아이디어의 성차별성을 감지하거나 이의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간과되기 쉽다. 문제가 발생하고 광고가 내려져도 정작 만든 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넘어가게 된다.

카카오페이 광고를 만든 팀도 인턴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팀에서도 여성혐오적 광고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VIP’나 카카오뱅크 광고와 관련된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영화, 드리마, 광고 등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성비 균형은 기울어진 아이디어의 균형을 잡기 위한 시작이자 필요조건이다. 이제는 ‘쉽게, 재미로’ 내는 아이디어의 화살촉이 왜 유독 여성을 찌르는지, 내면화된 여성비하적 사고의 침출물은 아닌지 제작팀 내에서 성찰과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남자가 절대 다수이자 최종 결정권자인 업무 환경에서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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