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본격 가부장 스릴러

2017.09.15
OCN ‘구해줘’의 주인공들은 사이비 종교 집단 구선원과 대립한다. 영부 백정기(조성하)를 비롯해 강은실(박지영), 조완태(조재윤) 등 구선원의 핵심인물들은 구원을 앞세워 갖은 기행을 저지르고 신도들을 착취하며 시골마을 무지군을 장악한다. 한상환(옥택연)과 석동철(우도환)이 이끄는 ‘촌놈 4인방’은 백정기의 타깃이 된 임상미(서예지)를 구하기 위해 맞서 싸우지만 상대는 20살 청년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힘을 가졌다. 백발에 가까운 머리, 창백한 피부에 흰옷으로 전신을 감싼 백정기가 신도의 뱃속에 든 암 덩어리를 맨손으로 제거하거나, 비밀스러운 제단 앞에서 숨겨왔던 광기를 드러내는 모습은 악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딸을 사지로 몰아넣는 임상미의 아버지, 임주호(정해균)다.

가장인 임주호의 선택은 가족 모두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의 사업실패로 서울에서 무지로 이사 온 가족들은 그의 독단적 결정에 따라 구선원에 들어간다. 구선원은 붕괴되거나 해체된 가정을 흡수해 강력한 공동체를 구축했고, ‘영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백정기는 구선원이라는 거대한 가정의 가장이나 다름없다. 사실상 임주호가 자신의 권한을 백정기에게 넘기고 종속됨으로써, 임상미는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구해줘’의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한상환은 군수인 아버지 한용민(손병호) 덕분에 안락하게 살아가지만, 바로 이 아버지 때문에 위기에 처한 임상미를 외면하고 가장 친한 친구인 석동철을 배신했다. 또한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둔 석동철은 폭행당하는 임상미의 오빠 임상진(장유상)을 구하러갔다가 오히려 퇴학을 당하고 이와 연관된 사건으로 소년원에 갇힌다. 지역 유지의 자녀인 가해자들은 아무런 법적 처벌도 받지 않았고, 한상환은 ‘선거가 끝나면 석동철을 구제해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다 목격자 진술조차 하지 못했다. 3년 후 다시 뭉친 ‘촌놈 4인방’은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선원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형사(장혁진)에 항의하다 유치장에 갇힌 이들을 꺼내 준 것은 우정훈(이다윗)의 경찰 아버지 우춘길(김광규)과 한용민이었다.

‘구해줘’에서 가족구성원과 가장의 관계는 청년들과 사이비 종교로 대표되는 부조리한 세상과의 갈등으로 확장된다. 자유 의지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주인공들은 점차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한상환은 3년 전처럼 아버지의 약속을 믿는 대신 정치인인 그의 약점을 잡고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요구한다. 임상미는 촌놈 4인방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구선원을 빠져나오지만, 인질이나 다름없는 엄마(윤유선)를 구하기 위해 제 발로 구선원에 돌아간다. 하지만 한용민은 도지사가 되기 위해 지역 세력을 장악하고 있는 백정기와 손잡고, 임주호는 모든 신도들이 보는 앞에서 딸과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이들은 모두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물론, 모든 아버지가 그릇된 욕망으로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공동체를 강조하며 개인의 정당한 욕구를 묵살하는 것은 비단 사이비 종교 집단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쉽게 일어나는 폭력이다. 특히 “너의 믿음이 부족해서 네 엄마와 상진이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임상미를 몰아세우는 임주호와 구선원 사람들의 행동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그가 몇 번이나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가족 일에는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방관하는 경찰 역시 이러한 폭력의 방조자다.

‘구해줘’는 가정과 사회의 억압에 맞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려는 개인의 투쟁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이비 종교 구선원을 무너뜨리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내 기억 속 아빠는 우릴 사랑하는 모습뿐이야. 이렇게 변해가는 아빠 모습 볼 때마다 그 기억이 사라질까 무서워”라고 임주호에게 애원하던 임상미는 그를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싸우기로 다짐하고, “힘 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와줘야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라며 아버지를 비판하던 한상환은 그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싸운다. 이것은 무척이나 한국적인 스릴러이자, 성장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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