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당한 사람들’,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쓴 영화

2017.09.21
지난 6일 개봉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 시대에 남부 버지니아주 여자 학교에 남은 2명의 교사와 5명의 학생들 사이에 북부군인 존(콜린 파렐)이 부상을 당해 학교에 머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학교 안에서 유일한 남성인 존은 여성들에게 둘러 싸여 관심의 대상이 되고, 교장인 미스 마사(니콜 키드먼), 뉴욕으로 유학을 다녀온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 학생 알리시아(엘르 패닝) 등이 존과 성적으로 미묘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 결과 상호우호적이었던 존과 학교 사람들은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포털사이트에서 이 작품을 검색했을 때 이 작품이 ‘스릴러, 드라마’로 분류되는 것이 납득될만 한 내용이다. 예고편에서도 긴박함을 강조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남녀간의 미묘한 눈빛이 오가고, 남성이 여성의 옷을 찢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매혹당한 사람들’은 스릴러라기 보다 코미디에 가깝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이 작품을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만들고 싶다고 말한 1971년작 영화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1966년 토머스 컬리넌 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던 1971년 작품은 원작과 달리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다뤘다. 미스 마사(제라르딘 페이지)는 젊은 남성 육체에 눈이 먼 늙은 여성이고, 에드위나(엘리자베스 하트먼)와 존과 셋이서 섹스를 하는 꿈을 꾸기도 하며, 존과 성관계를 하게 된 캐롤(조 앤 헤리스)은 “작은 악마”라고 부를 만큼 교활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여성들의 관심은 계속 남자에게 쏠려 있고, 그들은 존을 두고 싸움을 반복한다. 여성들의 싸움과 남성이 보고 싶은 여성의 섹시한 모습을 계속 전시한 것이다.

반면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매혹당한 사람들’을 보며 “원작 소설이 여성으로만 이뤄진 집단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점에 끌렸”고, “여자들이 모인 집단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 남자들의 관계가 단순하고 명료해서 이해하기 쉬운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설에서 교장 마사 판즈워스와 교사 해리엇 판스워스는 자매고, 해리엇은 과거의 남자에게 사기를 당해 집안의 재산을 탕진한 바 있다. 얼리샤 심스는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지만 어머니가 매춘부고 가난해서 발언권이 없다. 에드위나 모로는 수업료를 다른 사람의 몇 배를 내서 발언권이 가장 높지만 그의 피부는 유독 다른 사람들 보다 검다. 그만큼 이들의 역학관계는 미묘하고, 모든 캐릭터에게는 각자 다른 입장이 있다. 이를테면 마사 판즈워즈는 당시 정치적 상황과 상관 없이 “돈! 단단한 돈이야 말로 유일한 답”이라고 말할 만큼 현명한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과거부터 아픈 노예를 돌보고 경영하는 일을 하기도 했던 복합적인 인물이다.

소피아 코폴라는 이런 소설의 매력을 되살리면서 여성의 시각을 좀 더 부각시킨다.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입장에서 존(콜린 파렐)의 몸을 부각시키기도 하고, 마사는 소설처럼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현명한 여성으로, 에드위나는 신여성으로, 알리시아는 “작은 악마”가 아니라 무료한 일상에 심심해져 버린 사춘기 소녀로 그려진다. 또한 소설과 영화에서 주목했던 여성들 간의 위계는 좀 더 미약해지는 대신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져 그들끼리 우아하지만 무료한 일상을 버텨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는데 더 집중한다. 그래서 이런 심심한 일상에 들어온 존은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되거나, 관심을 빼앗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는 단지 흥밋거리일 뿐이다. 존은 학교의 여성들에게 마구잡이로 지분거리지만, 여성들은 그에게 이렇다할 애정이 생기지 못한다. 소설과 과거의 영화 모두 핵심인 존의 부상과 그에 따른 극적인 사건 역시 그가 얼마나 하찮고 우스운 인간인지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사건으로 바뀐다. 무엇보다 그 결과는 여성들간의 분노와 연대로 이어진다. ‘매혹당한 사람들’의 옛 버젼에서 모든 여성이 존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싸우고, 유혹하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면 2017년의 ‘매혹당한 사람들’의 여성들은 시종일관 우아하다. 그리고 존을 처분하는 순간마저“오! 그건 너무 잔인하다”며 자신의 존엄과 윤리의식에 한 톨의 더러움마저 묻히지 않으려 한다. 그 순간에도 존이 보는 여성들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차려입고 잘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존은 모든 것을 잃고, 여성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 과거의 모든 설정을 우아하게 뒤틀어서 그것이 여성에 대한 얼마나 기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진정 통쾌한 코미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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