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앤 모티’를 보며 얻는 위안

2017.10.13
‘릭 앤 모티’는 알콜중독에 성격파탄자면서 천재 과학자인 릭 산체스와 그의 어수룩한 외손자 모티 스미스가 우주를 모험하며 겪는 난장판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미국의 성인채널 어덜트 스윔에서 제작된 이 작품은 카툰 네트워크 ‘어드벤처 타임’의 명품 조연 ‘레몬 그랩’의 성우로도 유명한 저스틴 로일랜드와 시트콤 NBC ‘커뮤니티’를 제작한 댄 하몬의 지휘 아래 전 세계의 SF 및 블랙코미디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주인공 콤비들은 대놓고 영화 ‘백 투 더 퓨쳐’의 인물 구도를 차용한 것으로도 모자라 영화 ‘인셉션’이나 ‘쥬라기 공원’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 같은 SF 걸작들을 자기 식으로 재구성한다. 수학교사의 무의식에서 난교를 즐기다 노숙자의 시체 안에 세워진 테마파크로 가서 병균들과 싸우며 옹졸하고 겉멋만 든 슈퍼 히어로 단체의 위선을 폭로하는 식으로, 더 엉망이고 지저분하고 부조리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릭 앤 모티’의 인물들은 언제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 꿈이 사실은 악몽이었음을 깨닫는다. SF적 클리셰가 영웅이 아닌 소시민의 세계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릭의 딸인 베스와 그의 남편 제리는 다른 차원을 보는 기계로 둘이 결혼을 하지 않은 덕분에 꿈을 이룬 차원을 훔쳐보며 현실도피를 하려 하지만, 그 시공간에서 베스는 애니멀 호더(사육 능력을 넘어서 지나치게 많은 수의 동물을 키우는 사람)가 되었고 제리는 마약중독자가 되어 고통받고 있었다. 모티는 단점을 없애는 기계로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하지만 인간성과 공감능력을 잃고 만다. 릭은 배변 장소를 가릴 수 있도록 강아지에게 머리가 좋아지는 기계를 주지만 강아지들은 머리가 너무 좋아진 나머지 인간에게 받은 차별과 학대를 깨닫고 빼앗긴 삶과 불알을 되찾기 위한 혁명을 일으킨다.

이 변주에 ‘발칙하다’는 수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인류는 20세기의 SF 작가들이 예언했던 기술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이 경고한 재앙도 피하지 못했다. 우리는 SNS로 24시간 자본의 직간접적인 간섭을 받고 있으며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방독 마스크를 쓴 채로 다니고 휴식을 위해 전뇌공간에 빠져 뇌를 세탁한다. 기계를 주렁주렁 매달고는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제계를 지배하는 기업 대표 밑에서 말이다.

한 세기 전에 이런 설정의 작품을 만들었다면, 소재가 너무 과잉으로 들어간 사이퍼 펑크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이 디스토피아의 주민들은 태생적으로 해피엔딩을 소화할 수 없는 불내증 환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비참하고 엉망진창이라 어릴 적 보았던 영웅담에 나올 법한 극적 성공이나 발명 정도로는 계급의 한계처럼 지난한 삶의 관성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혹독하리만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불내증 환자들에게 있어 ‘릭 앤 모티’ 속 SF 걸작들의 염세적 변주는 경이적이라기보다는 논리적이다.

하지만 ‘릭 앤 모티’는 세상을 잿빛으로 바라볼지는 몰라도 냉소는 하지 않는다. 다른 차원을 관음하며 도피하던 베스와 제리 부부는 그들이 가장 바라던 것이 서로였음을 깨닫고, 나약한 자신을 분리했던 모티는 그 약점을 받아들이면서 짝사랑하던 아이와 조금 더 가까워진다. 우주적 모험이나 세기의 발명에 성공하더라도 피곤하고 질척거리는 일상으로 귀환하게 된다는 결론은 실망과 좌절을 주지만, 곧 그렇기에 우리의 현실과 이웃을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는 필연적인 깨달음으로도 이어진다.

‘릭 앤 모티’는 가학적으로 현실을 재현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위악이나 성질 더러운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을 정서적으로 핍박하다 가끔 베푸는 친절로 지배력을 확인하는 쾌감에 휘둘리지 않는다. 무책임한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이 진절머리가 나는 현실을 버릴 수도 없다는 결론을 냉철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이 작품이 비추는 세상은 어둡고 씁쓸하지만 그럴수록 위안을 받게 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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