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의 영수증│① 김생민의 보통인간론

2017.10.17
팟캐스트 방송 내내 배경음악처럼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와 몇 안 되는 스태프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김생민 스스로 “웃음으로 포장된 교훈”이라고 설명하는 이 팟캐스트 겸 KBS TV 프로그램의 제목은, 알다시피 ‘김생민의 영수증’이다. 애초에 그가 제목에 불만을 표하며 “외국을 겨냥해 ‘김생민의 블라블라’ 같은 것”을 이야기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누가 뭐래도 한국인을 위한 자기계발 강좌다. 가능한 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결혼하고, 부부가 힘을 합쳐 집을 장만한 뒤에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삶. 자식 이름으로 소액의 적금까지 들어주면 그야말로 ‘퍼펙트’다. 커피값 아끼기, 택시 타지 않기 등 지금 당장 개인이 실천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집을 사고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한국인이 ‘안정된 삶’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모습을 눈앞에 그려준다.

예능인 김구라는 MBC ‘라디오스타’에 부유하다고 알려진 출연자가 나오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돈을 의미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에게는 돈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게스트의 가치로 환산된다. 반면 김생민은 사연을 보낸 사람의 집안 환경이나 당장의 액수보다는 그가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긴다. “거북이처럼 가는 것 같지만, 이 느린 것에 정말 엄청난 힘을 실어드리고 싶다”며 박수를 보낸 사연 또한 꾸준히 저금해 돈을 모은 청년의 것이었다. 그는 영수증을 보내 자신의 경제문제를 상담해오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노력하면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말하고, 그런 노력을 한 사람들을 칭찬한다. 눈앞의 작은 목표를 실천하면서 큰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설득은 공감과 희망을 동시에 품게 만든다. ‘김생민의 영수증’이 일종의 위안을 주는 자기계발 강좌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그는 타인의 사생활을 들어보고 평가할 때의 조심스러움을 알고 있다. 나이가 많은 신청자의 사연에는 ‘두 손 공손 스튜핏’이라고 하거나, 개인의 취미 활동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무턱대고 돈을 아끼라고 하기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지만 나름의 명분이 있고, 불쾌해질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으며, 공감과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김생민의 영수증’은 요즘 시청자들이 원하는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게 되는 이유는, 동시에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이 갖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물가 수준을 반영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의미하는 실질소득은 1년 전보다 1.0% 감소했고, 지난해 9~12월부터 3분기 연속 1%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파이낸셜뉴스). 그만큼 살기는 어려워졌고, 요즘 청년들이 노력만으로 자신의 집을 마련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은행권에 근무하면서 또래 직장인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밝힌 29세 여성 A씨는 “‘영수증’은 불가능한 해결책이라고 본다”며 “돈과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적금을 들고, 커피값을 아낀다고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숨만 쉬고 살아도 집을 살 수 없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김생민도, 시청자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끼며 내 집 마련의 가능성을 높이자고 독려하는 것이 김생민의 역할이다. 시청자들 역시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며 정신을 다잡을 수 있다. 김생민은 대출을 일종의 적금이라 생각하고 받아서 집을 사라고 권한다. 그에게 내 집 마련은 안정된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대출을 받아서 갚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이전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종잣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렵다. 월급 400만 원 이상에 10년간 회사 기숙사에서 살며 2억을 모은 39세의 남성처럼 ‘그뤠잇’하다며 한 예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아끼기 위해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고 희망도 얻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결국 내 집 마련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이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김생민의 영수증’은 프로그램의 의도와 다르게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캣우먼의 미스터리 영수증’ 에피소드에서 김생민은 보이그룹 젝스키스 팬인 사연 신청자에 대해 “한 번도 (아이돌 그룹을) 좋아해본 적 없”어 그의 팬 활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취한다. 물론 모르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는 사연 신청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표를 내 집 마련으로 둘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그 이외의 삶은 모두 효율성을 따지게 된다.

그는 월 4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여성이 다른 취미 생활 대신 팬덤 활동을 하는 데에 돈을 쓴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고양이 병원비를 쓰는 일에 ‘그레잇’을 주지만, 고양이 치약에는 썩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리 구강관리를 해줘야 추후 병원비가 덜 나간다는 점이 ‘캣우먼(캣맘)’ 사이의 상식이다. 김생민이 추구하는 삶 외에도 그가 모르는 삶의 방식이 있다. 물론 사연 신청자들은 자신의 현재에 대해 걱정하기 때문에 영수증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이야말로 지금 한국, 특히 내 집 마련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각자의 취향과 생활 방식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유지하면서 내 집 마련을 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자신의 집을 마련해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바람도 포기하기는 어렵다. 김생민이 영수증을 보며 제안하는 합리적인 경제생활은 이 딜레마를 잠시 멈출 수 있는 절충점처럼 보인다. 하고 싶은 건 하되, 그래도 아낄 방법이 없느냐는 것. 양립하기 쉽지 않은 두 가지 삶의 방식을 어떻게든 함께 가져가기 위한 ‘노력’. ‘김생민의 영수증’에 대한 반응은, 지금 한국 사회의 어떤 세대와 계층이 어떤 삶을 살고, 무엇에 대한 고민을 하는지 보여준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이 물리학보다 어렵고 사회학보다 조금 더 쉽다”고 말했다. 현실 경제는 복잡하기 때문에 일관된 실험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물리학보다 어렵다는 의미다. 그렇듯 인간의 모든 행동은 논리적인 귀결로 흐르지 않는다. 김생민이 “너무 기쁠 때 기뻐하지 않는 습관, 너무 슬플 때 슬퍼하지 않는 습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자동 이체로 다달이 빠져나가는 적금을 들라고 하면서,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기계적으로 쌓아올린 소중한 결과물을 흐트러뜨리지 말라고 한다. 그는 다이어트 한약을 사고 난 뒤에 치킨을 시켜 먹는 것을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작고 모순된 행복이다. 아마도 그의 말대로 하면 목표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그렇게 최대한 논리적이고 냉정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느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참고 아끼며 내 집을 어떻게든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의 방식대로 살 것인가. 또는 애초에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삶도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집을 사는, 많은 한국인의 목표가 더 이상 이루기 어렵게 된 시대에 그 목표를 이룬 김생민이 하나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선택을 요구받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목록

SPECIAL

image 지금, 초등학교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